참새의 여행 #1

백수의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한층 더 깊게

by 바람

날이 갈수록 청초록한 풍광들이 세상을 매워간다. 말로 다 표현이 쉽지 않은 이 봄의 색들. 형용이 어려운 봄의 색들이 마음에 채워지면 나는 이 초록색이 정녕 쫄깃하다고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이 계절의 자연들에게서 시작된 감각들이 영민해지고 이내 기이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첩첩산중의 연초록, 찐 초록, 청초록들을 저 먼발치에 두고 바라보면 어느새 망상에 빠져든다. 정말 엄청 큰 거인이 되어 구름을 가르고 느리게 걷다가 그 울창한 숲의 기운과 색에 반해 아파트 한 채보다 더 큰 거대한 얼굴을 초록색에 파묻는다. 유럽의 어느 인사법처럼 연신 코를 흔들고 자연과 반갑게 존재를 나누고 그들의 숨결을 내 온몸으로 들이마신다.


나는 왜 이런 영상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인가, 감각과 상상은 이전 같지 않게 더 기이하거나 더 넓은 영역으로 뻗어나가 이내 생생해지고 있는 것을 감지한다.


나는 백수다. 예전보다 더 늘어난 물리적 시간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더 넓어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경험하고 있다. 백수 이전의 직장생활은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위장에 피자 끝부분 빵꼬다리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 답답한 상태처럼 더부룩했고 무거웠다. 비대해진 나와 그 공간의 세계는 어떤 것도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작은 박스였다. 세차게 흔든 콜라가 좁은 구멍으로 터져 나오듯 좁은 직장인의 삶은 작은 박스에서 터져 나와 백수의 시간 위에서 흩뿌려졌다. 기포가 터지면서 액체가 머금은 탄산이 날아가듯 백수의 시간 안에서 덜어내고 또 덜어낸다. 그렇게 몇 번을 비우고 나니 백수인 나는 참으로 날렵하고 민첩해졌다. 이전 같지 않은 상상력과 생생한 감각은 어찌 보면 백수의 여정에서 당연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백수의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한층 더 깊게 만들어준 존재는 사실 나의 아내이다. 그는 내가 잘 보지 않던, 보고 싶지 않던, 볼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중 하나는 참새이야기이다. 그녀가 내 말과 행동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어느 날, "당신은 참새의 심장을 가진 것 같아"하며 놀렸다. '짹짹'대며 촐랑거리고 날아다니는 참새들이 어찌 보면 귀엽다. 그런 의미라면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그 작은 존재들은 겁이 많고 연약하다. 그런 이미지가 나에게 충만하다는 것을 이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에 조금 거북스럽기도 했다. 다만 지금의 헐렁하고 느린 백수의 삶에서 '참새의 심장'은 나라는 존재를 재정의하는 데 그 방점을 찍었다. 스스로를 다시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 용맹한 독수리가 되고 싶었던 작은 참새의 불안했던 서사, 이를 구성하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엘리트 군인 출신이었다. 사관학교의 칼 같은 규율이 몸에 배었고 상명하복의 세상에서 30년을 근무하셨다. (지금부터 아버지를 '찬'으로 부르겠다) 그런 배경으로 찬은 80년대 초에 처음 '아빠'를 경험했고, 직장과 비슷한 색으로 아이들을 양육했다. 다만 아이들은 규율 속에서 절대적으로 틀어지는 법이 많았고 그로 인해 나는 많은 체벌을 경험했다. 그 결과 내 어린 세계에서 찬은 무서운 존재이자 숨 막히게 답답하고 싫은 존재였다. 찬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나는 작은 새장에 갇힌 참새처럼 답답했고 도망가고 싶었다.


군인이라는 찬의 직업적 배경 때문에 초등학교를 세네 번 옮겨 다녔다. 팔도를 다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백령도라고 하는 최북단 섬에서도 몇 년을 살았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많은 친구들을 형식적으로 사귀었다. 웃긴 건 6학년 졸업을 한 달을 앞두고 전학을 해 초등학교 졸업사진 배경이 유일무이 나만 다르다. 여느 친구들의 파란 단색 배경이 아닌, 초록 풍성한 나무를 배경으로 졸업사진을 찍은 나는 지금까지 그 94년 발간된 앨범에서 이방인으로 남아있다. 인스턴트 같이 빠르며 불안정한 또래 관계를 시작으로 내 안의 불안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것 같다.


찬의 직업군인이라는 속성은 보이지 않게 은은하면서 때론 강력하게 남성다움에 대해서도 요구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의 남성다움에 대한 경험은 이런 식이었다. 3학년 경 포경수술을 군의관에게 당했는데 내 꼬치를 잘 내어주지 않자 따귀를 한대 세차게 얻어맞았다. 그 기세에 눌려 소중이를 내어주고 그의 거친 세상에서 남자다워야 함을 몸으로 설득당했다. 그 당시 찬이는 내 붉어진 뺨따귀를 모른척했다.


보이지 않게 눈물을 재빠르게 훔치며 붉어진 뺨을 몇 번을 어루만지는 동안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안정된 또래관계를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소위 왕따 혹은 아주 가벼운 학폭의 맛을 경험했다. 그것은 남성조직의 우두머리를 역임한 찬이의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는 수치스러운 경험 같아 부모님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학폭과 왕따는 단지 내가 남자답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 거칠고 서글픈 시간은 은밀하고 외롭게 내밀한 생채기를 남겼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것이 금방 지나갔으며 내 한 몸을 지키기 위한 목표의식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그 숭고하며 절실한 목표의식은 나의 진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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