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고백

by 바람

지금까지 좋아하는 색은 바다와 하늘이 머금은 푸른색이었다. 요새는 나무와 풀들이 무성한 탄천길에서 두 눈 꽉 채워 담은 것이 초록색이라 어느새 그 색을 더 좋아라 한다. 미세먼지 없는 날, 각자의 존재가 그 선명함을 한껏 드러내는 것처럼 쨍한 초록색이 도드라지는 5월이 시작되었다. 눈처럼 흩날리는 봄날의 꽃가루가 간지럼을 태울까 이리저리 피해서 혼자 걸었다. 내리쬐는 볕에 살갗이 서로 온전하게 맞닿는 곳 모두에 땀이 흐르지만 이내 잠깐식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두 손을 힘껏 들어본다. 펑퍼짐한 셔츠 속으로 넘실대는 바람이 온몸을 한바탕 휘젓고 떠나면 그 찰나에 평온하고 생동한 봄 날을 온전하게 감각한다. 이내 바람은 저 멀리 아름드리 거목에 닿고 나도 따라서 그 큰 나무에 시선을 둔다. 브로콜리 마냥 여러 가지 촘촘한 초록색잎들이 무성한 거목, 그 존재감이 오늘따라 더 거대하게 느껴진다. 한낮의 볕 아래 큼지막한 그늘이 나무벤치에 드리워져 있다. 문득 나는 그곳에 앉아보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혼자 걷는 오랜 시간 동안 잠시 그늘에 기대어 쉬어본 적이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작지만 높은음으로 노래하는 새들의 이야기, 봄바람에 설레어 이리저리 가지를 흔들고 나뭇잎 속살이 나부끼는 소리,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사람들 대화소리, 모든 것이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비로소 멈춰야 보이는 것들의 모든 것을 나는 그 그늘아래서 감각했다. 인공적이지 않은 자극들이 충만해지면 오롯하게 평온해진다. 나는 사라지고 자연의 온전한 일부가 되어 무념무상 그 자체가 되어 그저 흐른다. 그 위대한 자연법칙 속에 어울려 정신없이 부유하다 보면 어느샌가 지금까지 닿지 않던 곳으로 시야가 확장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오늘의 확장성은 아름드리나무그늘 아래서 시작되었다.


큰 거목아래 몸 뉘어 맘 편히 쉬어본 적 없노라 불평했던 과거에는 내가 지나온 곳이 그늘하나 없는 척박한 사막이었다고 생각했다. 새삼 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곳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종종 그늘을 내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족과 친구들이 내어준 그늘에 몸을 기대어 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기대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 그늘에 쉽사리 발을 들이지 못했던 것이 아마도 내가 관계를 어려워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은 듯싶다. 기대면 안 될 것 같다는 두려움, 그 공간에 내 몸을 일자로 뉘어야 하는지, 무릎은 구부려야 하는지, 어떻게 기대야 하는지, 꼭 정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꼭 틀릴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그들이 내어준 그늘을 무시하고 지냈었나 보다.


백수의 헐렁해진 시간을 1년 넘도록 혼자 걸으니 마침내 보이는 또다른 나의 모습이다.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천천히 그 관계에 경직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시 나는 볕으로 나가 내가 만든 아주 작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걷는다. 그 공간이 너무 작아서 누구 하나 들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늘의 이 작은 공간을 내일에는 분명 어떤 이의 쉼터로 내주어야겠다는 야망이 생긴다. 고기도 씹어본 사람이 고기를 잘 먹는 것처럼 조금은 뻔뻔하게 기대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아내가 내어준 그늘에서 백수의 시간은 오늘도 뻔뻔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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