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의 두려움

새 마음을 갖기 위한 첫걸음

by 바람

아내가 사준 가방은 내 등을 꽉 채울 정도로 크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배달의 민족열사들이 등에 업은 가방과 사이즈가 엇비슷하다. 새로운 일터로 나가는 요즘 항상 메고 다니는 가방의 무게는 다만 내 마음처럼 가볍다. 열세 달을 쉼 없이 쉬다가 나라에서 인정하는 근로자가 되어서일까. 가방은 가볍고 그 공간은 텅하니 비어있다. 사실 뭔가 들고 다니는 것 없는 직장인이 어색해 몸에 들처맨 노트북 가방이다. 한결같이 14년을 일궈온 경작지를 떠나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출근한 지 이제 3주. 문득 출근길에 가볍게 비어있는 가방 안 빈 공간에 대한 위화감을 감지한다. 이 공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간간히 책 한 두권, 서류파일을 들고 다녀도 꼬맹이 하나 넣을 만큼의 큰 공간이 더 남아있다. 어쩌면 전직을 감행하고 품었던 내 초심이 이러한가 싶었다. 부푼 꿈처럼 부피는 크지만 현재는 아무것, 아무 내용도 들어있지 않는 헛헛한 기분. 무엇을 채워나가야 하는데 처음 들어선 길이 낯설고, 영영 길을 잃는 것이 어닌가 하는 두려움도 한 움큼. 적막하고 고요한 우주의 서늘한 공간을 상상하듯 내 등 뒤로 존재하는 빈 공간에도 어떤 가능성과 함께 공포와 불안이 담겨있다.

가볍지만 무거운 이 가방 안에 무엇을 더 채워 넣을까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했다. [거대한 용은 "너는 해야 한다"라고 불린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지금껏 '해야 한다'로 살아온 내가 '하려고 한다'의 새 마음을 갖기 위한 첫걸음이 어쩌면 그 가방 속 빈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시도와 상상이 요즘 꿈으로 연출된다. 지진으로 아파트가 무너지고, 붕괴되는 그 생생한 현장에서 공포스럽지만 살아남는다. 전신거울 앞에서 나를 바라보다 어깨너머 갑작스럽게 내 모습을 한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 그는 사납고 흥분해 있다. '데미안'의 아프락시스가 탄생하는 과정이 공포와 불안으로 점철되었듯 내 변화의 여정도 아직은 설렘보다 두려움 속에 존재한다.


다만 나는 믿고 있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여름의 열기에 서늘함과 두려움은 저만치 가시고 땀과 열정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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