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희생사이

모르면 몰라도 그건 분명 물에 흥건히 젖은 흔적이었다.

by 바람

미워하는 마음이 자주 생기는 나날들에서 바라본 풍경. 유독 그런 장면들을 자주 목도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늘진 곳에서 뿌연 연기를 거침없이 뿜어내는 한 무리의 교복들, 주차장이 아닌 인도에 차를 세우고 슬쩍 한 번 둘러보고는 태연히 일 보러 가는 아주머니,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고 무심하게 담배꽁초를 엄지와 검지로 튕겨 버리는 중년의 아저씨.


좁은 인도를 걷고 있는 퇴근길, 날카롭게 멀리서 울려오는 벨소리가 신경 쓰인다. 자전거인지 킥보드인지 분간은 할 수 없지만 분명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음은 확실했다. 비켜주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눌러대는 작은 크락션에 미간이 울퉁불퉁 해졌다. 무심한 척 슬쩍 돌아보고 마지못해 한 켠을 내주었다.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듯, 쌩하고 지나가는 자전거를 쏘아보고 미워하는 마음도 같이 그의 등에 태워 보낸다.


미워하는 마음이 숨어들 수 있는 밤거리가 제법 시원해 아내와 산책을 나선다. 부들부들 꽉 잡고 있던 것들이 서서히 힘을 뺄 수 있는 시간이다. 맞잡은 아내의 손을 흔들고 만보를 걷다 보면 미워하는 마음도 하나씩 털려 나간다. 조금씩 말랑해진 근육들 사이로 혈류가 돌고 뇌를 자극하면서 포용 감수성이 높아지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들야들한 사고의 흐름 위에 깨달음 하나 스쳐 지나간다. 어둑해진 밤거리에서 마주한 어느 50대 중반의 여성으로부터 통찰은 시작되었다. 그이의 옷은 짖은 초록색이었다. 티셔츠에는 검은 자국이 선명했다. 모르면 몰라도 그건 분명 물에 흥건히 젖은 흔적이었다. 자녀와 남편의 식사를 책임졌고 또 전투적으로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온 전사의 모습이었다.


희생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그 얼룩에 묻어있음을 느낀다. 어머니..

젖은 그의 티셔츠 덕분에 사람에 대한 미움이 서서히 씻겨나가고 있음을 사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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