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을 하면서 점점 쓰는 일은 요원해졌다.
작문이 일전에는 큰 부담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래 들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사유하는 시간을 가진 삶을 살아가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회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느리게 걸었던 백수의 삶에서 강제로 할당한 사유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자주 읽기도 했으며 자주 걷고 외부세계를 경험하면서 오감으로 감각하는 것들을 극대화했다. 자연스럽게 사유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것들을 활자로 풀어내는 작업이 자연스러웠다. 물론 쉽게 읽을 수 있거나 혹은 여운이 남는 좋은 글을 생산해내진 못했더라도 깜박이는 커서를 지금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작업해 나가는 글이 늘어가는 것이 좋았고 외부의 자극들이 심상으로 번지고 이내 영감이 되어 브런치에 구체화되는 작업이 꽤나 흥미로웠다. 마치 원초적인 본성의 삶에서 벗어나 이성과 감수성의 세계에 흠뻑 빠져서 삶을 즐길 수 있게 된 진보된 인간의 면모를 보는 듯했다.
현재는 어떠한가? 먹고사는 중요한 문제, 미래를 계획하는 일련의 노력으로 다시 직업을 갖고 출퇴근을 하면서 점점 쓰는 일은 요원해졌다. 일과 관련되어 읽는 것들을 아직 완전히 손에서 놓지는 않았지만 쓰는 루틴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시간이 있어도 손바닥 위에서 요란하고 자극적인 유튜브 장면들이 오감을 독차지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청각 대한 일방향의 소비가 감각을 무디게 하면서 미각은 더 솔티 하거나 달콤한 것 혹은 더욱더 기름진 것들을 찾게 되었다. 삶 전방위적으로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끌려가는 듯하다. 사유와 멀어지는 삶은 마치 배부른 돼지와 같다.
중년의 남성에게 계획 없이 보내는 휴가의 시간은 지독하게도 슴슴하다. 오늘은 뜻하지 않게 day off를 얻어 사유하는 시간을 강제로 가진다. 이 한 낮, 놀아줄 친구도 없을뿐더러 찐한 유흥을 할 수 있는 자본도 없기에 내가 선택한 일은 나의 아내, 바깥양반을 위한 몇 가지 일이다. 돼지고기 500g(무항생제) 듬뿍 넣고 양파와 먹다남은 김치, 물 180g을 넣고 김치찌개를 팔팔 끓여 놓는다. 국간장 3스푼, 유기농 올리고당 2스푼과 간 마늘 작은 스푼을 넣고 간 맞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너무 맛있다. 두부와 대파 송송은 아내가 오기 십분 전에.. 이로써 저녁을 위한 찌개가 완성이다! ƪ(˘⌣˘)ʃ 다시 그가 먹고 간 아침상을 물리고, 설거지와 청소기를 돌리고 해가 정수리에서 뒤통수로 넘어가는 즈음에 집 앞 도서관에 왔다. 사유하고 또 쓰고 싶어서.
좀 억지 같긴 해도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부지런해졌던 내 모습은 오늘의 사유로 이어졌고 글로 재창조되었다. 슴슴한 하루 덕분이다. 배부른 돼지가 만든 돼지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어줄 그의 웃는 표정을 상상하며 타자를 두드리니 벌써 천자를 넘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