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욤, 삐욤 우는 아저씨
새벽 7시 이전의 공기는 오롯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 이 계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작점이다. 머리 위로 피어난 무성한 초록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황금색의 햇살과 눈부시게 파란 하늘의 조화는 도무지 뭐라고 표현해야 그 아름다움을 글로 다 담을 수 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간 밤에 잠들었던 감각들은 여름의 찡한 자극들로, 특히 매미들의 소란스러운 합주와 함께 더 영민해진다.
지난 열두 달 헐렁하게 느려진 세상에서 백수라는 이름으로 지내온 덕분에 제법 많은 것들이 잘 감각되는 듯하다. 촘촘하게 또는 빽빽하게 많은 것들로 차 있던 시간 안으로 도저히 뚫고 들어올 수 없었던 것들이 하나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나와 눈을 맞춘다. 오늘은 매미와의 만남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개채수가 엄청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집 앞에 빼곡히 심어진 메타세쿼이아 거리를 거닐면 나무 한그루에 최소 3-4개의 허물과 매미 성체가 보인다. 근래 들어 까마귀와 까치들의 털에서 윤이 나는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다. 이 계절 사람 반 매미반이라는 속담이 나올 만큼 거리바닥에 그들이 많이들 누워계신다. 고된 합주와 더위에 지쳐 바닥에 엎드려 있는 분, 배를 까고 하늘을 향해 벌렁 드러누운 분 각양각색이다. 곤충과 벌레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내가 퇴근 후 산책을 꺼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 밑에서 찌잉찌잉 우는 소리를 내다가 바스슥 바스러지는 소리를 상상하면 나 또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유심히 그들을 듣다가 매미의 합주가 이중주라는 것을 감각한다. 삐욤, 삐욤 우는 아저씨가 있는 반면 츠르르르 쉼 없이 울어대는 아이들 소리도 들린다. 허물의 사이즈를 보면 삐욤 아저씨가 덩치가 큰 놈이 맞을 것인데 유독 작은 모양의 허물들이 있다. 츠르르 계속 울어대는 아이들의 허물들이 조금 더 작은놈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들에게 점진적으로 깊어진 초점은 관점의 전환을 넘어 망상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이끌었다.
ET가 되어가는 시기는 대개가 중년 언저리 즈음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배는 나오지만 팔, 다리는 샤프심 같다는 아내의 동정 어린 시선을 느끼는 요즘이니 말이다. 가까이, 유심히 바라본 매미도 나 못지않게 가녀린 팔, 다리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중력을 거슬러 그 큰 몸뚱이를 지탱해서 나무에 며칠을 악착같이 매달려있다. 살기 위해서. 꼭 나 같기도 하다.
그들을 끔찍이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아내는 본인의 손짓 한 번에 부러질 매미의 가녀림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혐오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가까이 바라보는 순간부터가 아닐까 싶다. 나는 그들을 통해 가녀린 팔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을 상상하며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매미 아저씨에게 더 가까워짐을 경험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되고 더 겸손해져야 함을 통찰한 순간이다. 문득 더위에 씩씩대며 중년의 아저씨가 빠르게 옆을 지나쳐간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망상세계에 갇혀 온전한 매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마 우측에 젖은 휴지가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붙어있었다.
작은 휴지 조각을 얼굴에 붙이는 이를 어제도 보았는데.. 웃음이 나오는 순간 매미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음을 느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