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의 진부한 일상

쨍한 윤슬에 홀려 눈을 떼지 못하고 걷다가 우연히.

by 바람

출퇴근하는 직장인으로서 항상 같은 하루가 반복된 일상을 살아내는 게 특별히 진부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여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주말 다녀온 휴가의 즐거운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진하게 남아 있어서일까.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출근길에 나선다. 끓어오르는 열기의 한가운데서 지구의 모든 것들은 늘어지고 느려지는 행태가 자연의 섭리일 테니 여름은 분명 쉬어야 하는 계절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회사에서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해가 정수리에 위치하는 정오가 된다. 12시에 시침이 닿으면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입안에 침이 돌고, 혈색이 돌고, 모든 감각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잡는 느낌이다. 특히 내 일터는 자연조경이 훌륭하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목의 푸르름은 또렷해진 감각들을 한 껏 충만하도록 돕는다. 비록 강한 볕으로 눈은 실처럼 가늘게 뜨고 있지만.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 옆으로 천이 흐른다. 쨍한 윤슬에 홀려 눈을 떼지 못하고 걷다가 우연히 내 허벅지 만한 검은 잉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수위가 낮아져 몸 전체가 거의 물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미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질식사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세심하게 그를 살피지 않았다면 미세하게 가는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지난여름 집 앞의 천이 범람하여 많은 수중 생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한 볕에 말라 사망에 이르렀다. 그 안타까운 일들이 떠올라 바지를 걷어붙이고 천으로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큰 몸집에 두 손으로 그를 들어 올리길 몇 번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발로 밀기 시작했다. 비릿한 민물고기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찌르는 것을 느끼며 사력을 다해 그의 거대한 몸뚱이를 밀었다. 그가 펄떡펄떡 마지막 몸부림으로 발버둥 쳤다. 수심이 깊은 곳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더니 급기야 그가 헤엄을 칠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내 바지는 이미 저세상 물먹은 바지로 온통 검게 젖어버렸다.


허벅지만 한 검은 생명체가 생동감 있게 헤엄치고, 엉망이 돼버린 내 모습에 환호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더러워진 맨 발을 뜨겁게 달궈진 시멘트 바닥을 겅중겅중 거리며 사무실에 이르렀다. 그렇게 더러워진 발을 세면대 위에 올려 열심히 씻고 더러워진 세면대를 또 열심히 닦았다. 축축하게 달라붙은 바지를 살갗에서 떼어 내 포니테일 머리 묶듯 짜내고 보니 세상 꼬깃해진 바지에 웃음이 스민다. 이미 점심시간은 끝나버렸다.


진부 할뻔한 뜨거운 여름 위에 허우적 대는 오늘, 풍덩하고 시원한 물에 빠져준 잉어 한 마리에 무더운 여름하루가 그렇게 또 흘러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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