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단어에 진하게 묻어있는 기억들
MBTI 공부를 하면서 나란 사람의 역사를 거슬러 부모님과의 관계, 소통방식을 사례로 열거해 보고 각 코드에 해당되는 성향의 연관성을 조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공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탓에 취지에 맞지 않은 어린 상처들을 조우하게 되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길목에서 가족이라는 단어에 진하게 묻어있는 기억들 대부분 혼나는 장면들이었다. 왜 그렇게 우리 남매를 혼내셨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엄하셨고 다소 지나치셨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나열하면 참으로 많은데 체감상 100 데시벨 정도의 큰소리로 혼이 빠지게 소리치시거나 매서운 빠따를 드셨다. 훈육이라는 개념이 엄마, 아빠를 처음 경험한 이들에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녀의 기억에서 꽤 오랜 시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셨더라면 그리 하지 않으셨을 것을 안다. 당신들조차 조부모님께 배우지 못하거나 부족했던 훈육으로 기인한 것을 나 또한 이해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무렵, 태권도를 너무도 사랑했던 나는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엄청 애착을 갖던 도복이 흰색 바탕의 파란색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장면을 목도해야만 했다. 삼십 년 그 이상의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순간의 이미지는 섬광기억이 되어 남아있다. 16살이 되던 해, 태권도 1단 심사를 마치고 국기원에서 아버지와 나오는 길에서 소지품을 빠트렸던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천둥 같은 고함을 치셨다. 또 어느 날은 성적이 떨어져 혹은 제시간에 귀가하지 않아서 진실의 방으로 들어가 빠따를 맞았다. 방문을 걸어 잠궈 피할 수 없는 그 시간들이 끔찍이도 싫었다. 뛰어난 내구성과 좋은 탄력성을 갖춘 나무재질의 구두칼은 몇 십 번이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생채기를 내었다. 어느 날은 구두칼이 미처 준비되지 않아 고무호스로 맞았는데 특유의 재질상 채찍같이 날아오는 전방위적 방향성으로 정신없이 얼굴을 감싸고 움츠려 맞았던 기억도 있다.
대부분 가정집의 엄부자모의 방식으로 양육이 이뤄졌을 테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엄부엄모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매질이 두드러졌다면 어머니는 좀 더 극적인 방식으로 훈육에 임하셨다. 두들겨 맞고 큰소리에 주늑들어 수동적이고 통제하에 컷을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숨 쉴 구멍이 있어야만 했고 일탈을 종종 보이는 어느 날 어머니는 사시미를 들고 내 방으로 성큼 들어오셨다. 당시 어머니 흰 눈 자가 평소보다 더 보였고 희번덕 거리는 눈빛으로 같이 죽자고 통곡하시며 위협을 가하셨다. 죽음의 공포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기도 했다. 친구집에 더 이상 가지 말라는 몇 번의 당부를 어기고 다녀온 벌 치고는 너무 가혹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글로 풀어서 그 당시의 장면을 떠올려 어루만지고 재해석하며 수용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부모님과의 진정한 소통은 당신들 살아생전 요원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게 일방향의 기억으로 풀어헤쳐놓고 보니 내용상 부모님을 크게 욕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밀려온다. 두 분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봐야 할 테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어린 내가 그 당시 많이 무서웠고 억울하고 두 분이 많이 미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이 부분을 드러내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자 한다. 연로한 부모님께 어떤 위로를 받을지 기대하지 않지만 중년이 넘어 칭얼대는 아들을 두 분이 싫어하지 않을 듯하다. 고인 진물이 고약하기도 하지만 상처가 난 가족이란 기억의 자리에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글로써 오늘 다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