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적인 세계임을 어림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작가는 이슬아 작가이다.
문해력이 뛰어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을 자아낸다. 그들의 표현 하나에 매료되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충동과 욕구가 샘솟는다.
"혹시 혁명이라는 게 일어나고 있다면 나는 겨우 뒷줄에서 까치발을 든 사람일 것 같다. '이상하고 뛰어난 친구들아, 이번엔 또 뭘 해낸 거니?' 선구자가 쳐놓은 사고와 이뤄놓은 업적을 종종 대며 따라가는 동안 혁명의 끄트머리에서 내 삶도 변해간다."
[이슬아의 갈등하는 눈동자, 두 엄마 밑에서 자랄 아이에게 편]
1차원적인 세상을 촉감으로만 더듬더듬거리던 나에게 이 세상이 다면적인 세계임을 어림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작가는 이슬아 작가이다. 내가 살아가는 단순한 세상과 그가 살아가는 세계는 같으면서 확연히 달랐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는 잠자리의 눈으로 이 시공간을 감각하며 날아다닌다. 3만 개의 겹눈으로 360도 가까운 각도로 세상을 인지할 수 있으니 표현이 위와 같이 남다르다.
비록 달팽이와 같은 속도로 더듬거리며 천천히 세상을 인지하는 나에게 광각렌즈처럼 그의 넓은 시야는 내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다. 다만 그보다 걸어온 물리적 시간의 거리가 더 길다는 사실은(나는 중년) 분명했기에 협각렌즈로 내밀하게 담은 내 세상의 의미를 비로소 넓혀가는 중이다. 그 덕분에.
나는 현재 진로 설정으로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만나 그들을 컨설팅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역사와 현재를 재정의 하고, 나아가야 할 앞 날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열차의 선로를 개설하는 일과 같다. 이 컨설팅은 무엇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뤄질 때 효과적이라 믿는다. 특히 오랜 실의와 좌절에 잠겨있는 학생들에게 설파한다. 1차원의 지점을 벗어나 3차원을 넘나드는 다면적인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읽고 쓰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경험한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행할 수 있는 삶의 법칙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 문해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실천하기 위해 이렇게 몇 자 끄적이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나의 소임이다.
이 열렬한 더위지만, 진득하니 키보드 앞에 앉을 수 있도록 도운 것 또한 상상력이다. 나는 한적한 남미의 시골마을의 중년 작가를 그리고 있다. 무더운 여름, 짧은 카고 반바지를 입고 상의는 탈의했다. 가슴에 꼬불거리는 털이 나있고 수염은 덥수룩하다. 스토리 전개가 쉽지 않아 책상위 재떨이의 꽁초가 늘어간다. 갈색 목조로 된 2층의 서재, 열린 창으로 햇살이 강렬하게 쏟아지는 한 낮, 천장에 달린 큰 팬이 작은 소음과 함께 천천히 돌고 있다. 그의 등에는 땀이 송글 맺혀있다. 타자기 앞에 앉아 고심하는 그 작가를 상상하며 나도 에어컨은 틀지 않는다. 상의도 탈의했고 언더웨어만 입은 채 타자를 뚝딱거린다. 바람을 가르는 소음, 작은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담배는 없지만 입으로 가져가는 기름진 감자칩이 늘어간다. 그 남미의 작가 같아.. 멋있다.
슬아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와 이뤄놓은 흔적을 종종 대며 따라가는 동안 1차원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내 삶도 3차원 이상으로 변해간다. 이렇게 오늘의 글이 완성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