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집을 홀로 지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
관성의 법칙이란 것. 백수라는 경험을 한 번 해보니, 멈춰있으려고 한다. 계속 멈추고 싶은 마음은 내가 못나서도 게을러서도 아니고 중력이 존재하는 지구의 물리법칙이라는 것을 믿는다.
아내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을 홀로 지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 대부분이 모를 것이다. 이러다가 영영 백수로 남는 게 아닐까.., 무의미한 시간의 무한루프에서 나는 존재 자체로서 무의미인가? 자문에 이어지지 못하는 대답 없는 공백의 공간에서 나는 계속 맴돌고 있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 채워야 할 마음속의 연료통이 점점 비어 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결국 폐차장으로, 자의가 아닌 배우자의 의지로, 고철 압축프레스에 조막만 하게 쪼그라들어 지금 보다 더 하찮게 되거나.. 동남아 어디로 수출되어 버리고 말일 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단지 위안이 될 만한 생산적인 일들을 고민한다. 들고 있던 주식을 사팔사팔 해본다. 몇십만 원 익절 한 날에는 패찰을 목에 걸고 아메리카노와 전담을 양손에 번갈아 소비하는 직장인들만큼이나 당당하다. 대부분 손절하거나 잃고 있는 중이지만..
미약하게나마 염통의 연료를 태워 살아있음을, 존재하고 있음을 영위하는 시간이 있다면, 오후 5시 즈음부터 바깥양반 퇴근하는 저녁 6:30분 전까지다. 소매를 걷어올리고 침대 위 이불을 가로로, 세로로 두어 번씩 접고 두어 번 쓰다듬으면 각이 생긴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이제는 수치스럽지만 유난히 내가 누웠던 자리, 남색의 매트보 위에 흘린 어제의 흰색 살덩어리들을 처리하느라 매트 위를 세게 비틀어 꼬집는다.
바깥양반의 귀신같은 후각을 고려하여 헹굼 최고, 탈수 최고로 수건을 돌리고, 정말 비싸지만 향기 나는 휴지 한 장 꺼내어 건조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이제 바깥양반이 퇴근길 7부 능선을 주파하고 있을 시간이다.
조급하지 않지만 빠른 손으로 다이슨청소기를 든다. 오래된 청소기 엉덩이에서 쿰쿰한 먼지 곰팡이 냄새를 내뿜기 시작하고 잰걸음 150보 정도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 대략 20평의 방바닥이 조금은 깨끗해 보인다. 그럼에도 저무는 태양이 드는 거실 곳곳에 흰 먼지나 떨어진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은 나의 환상일 것이리라.
새콤달콤한 귤을 하나 까먹으며 한숨을 돌린 후 냉장실에서 어제 먹다남은 김치찌개를 꺼내 하이라이트에 올린다. 보글보글 소리가 들리면 앙다문 잇몸 언저리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현관문 도어록 소리가 들린다. 삐비비빅 삐빅, 도르륵!!!!!
"여보옹 오늘도 김치찌개 끊였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