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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Jan 13. 2017

현실과 꿈 사이 한가운데, 양화

#02 딥플로우 [양화] 리뷰


  시대가 흐르면서 인간이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LP로 음악을 기록하였고, 이후에는 CD에 음악을 담았다. 허나 디지털 음원의 등장으로 CD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음악 시장에서 음원들은 싱글, EP 단위로 발매된다. 사람들은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마음에 드는 곡을 뽑아 자신의 재생목록에 담는다. 음원들을 담아내는 음반의 단위는 작아지고 있다. 


  그럼 CD로 정규 앨범을 내는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일까? 아니다. 음반째로 들을 때 단순한 트랙들의 합이 아닌 그 이상의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명반들은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 나는 딥플로우의 [양화]를 그 예로 들고 싶다. 이번 리뷰로 [양화]를 앨범 단위로 감상하여 딥플로우의 음악성과 예술을 충분히 접해보고 앨범의 매력을 느껴보자.


  [양화]에 들어가기 앞서 싱글, EP, 정규 앨범이 무엇인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 한번 짚고 넘어가 보자. 사실 명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 간단하게는 음반에 수록된 트랙의 수로 나눈다. 싱글은 보통 1곡에서 3곡이 들어가며 가장 작은 단위의 음반이다. 전자 음원으로 발매할 때는 디지털 싱글이라고 부른다. EP (Extend Play)는 음반이 LP로 발매되던 시대, LP보다 작은 지름의 레코드판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정규 앨범보다 규모가 작은 앨범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5~6 트랙이 들어가고 한국에서는 흔히 '미니앨범'이라 불린다. 정규 앨범은 보통 8 트랙 이상으로 트랙 수가 많고 아티스트의 음악 씬에서의 커리어를 보통 정규 앨범으로 평가한다. 그럼 앨범 [양화]에는 곡들이 총 몇 트랙이 수록되어 있을까?





< Track List>


1. 열반

2. 불구경

3. 낡은 신발 (Feat. 태완, Sean2 slow)

4. 잘 어울려

5. 당산대형 (Feat. DJ Soulscape, Don Mills, Vasco)

6. 작두 (Feat. 넉살, Hucheberry P)

7. 빌어먹을 안도감 (Feat. ODEE)

8. 나 먼저 갈게

9. 양화 (Feat. Soulman)

10. 역마

11. Cliche (Feat. Kayon, 차붐)

12. Dead Line (Feat. VEN)

13. 개로 (開路) (Feat. Dragon A. T, 샛별)

14. Bucket List (Feat. 우혜미)

15. 가족의 탄생 (Feat. Don Mills, 우탄)




[양화]는 총 15개의 트랙으로 딥플로우의 정규 3집 앨범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양화]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읽는이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여 [양화]를 들어보자.





1. 서사성 - 마치 한편의 영화


앨범 [양화]는 어떤 앨범일까? 1번 트랙 [열반]의 첫 4줄의 가사에 요약이 되어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xTtvLyeD9Y




난 계속 떠도네 역마살 낀 내 삶의 여로 
늘 정착하지 못해 난 곧 죽어도 여기 서울로 
내 현실과 꿈 사일 갈라놓은 한강 
난 아직 그 한가운데 서 있지 양화 





  여기서 현실은 '인간으로서의 딥플로우'이고 꿈은 '래퍼로서의 딥플로우'를 뜻한다. 딥플로우는 각각의 자신의 모습을 공간적 배경에 대응시켜 가사로 풀어나간다. 래퍼 딥플로우의 이야기는 홍대(작업실)에서 , 인간 딥플로우의 이야기는 영등포(집)에서 펼쳐진다. 9번 트랙 [양화]를 기준으로 앞의 트랙들은 홍대의 이야기이고 뒤의 트랙들은 영등포의 이야기이다. 



양화대교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 사이를 잇는 왕복 8차선 다리.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딥플로우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택시 운전기사와의 대화가 등장한다. 3번 트랙 [낡은 신발]의 뒷부분과 8번 트랙 [나 먼저 갈게]의 뒷부분에 딥플로우가 택시를 타고 가고자 하는 장소를 말함으로써 청자들과 함께 그 장소로 이동한다.


  앨범 구성에 있어서 새로운 테마로 넘어갈 때 아티스트들은 skit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보통 skit을 하나의 트랙으로 빼놓지만 [양화]에서는 15개의 곡들 모두 3분 이상의 개별적인 하나의 곡으로서 skit으로만 구성된 곡은 단 하나도 없다. [양화]의 skit들은 모두 대화 녹취록이고 [낡은 신발], [나 먼저 갈게], [개로], [Bucket List] 4개의 트랙의 뒷부분에 skit이 삽입되어 있다. 이는 skit의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이거나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을 각각 하나의 곡으로 완성하고 싶은 딥플로우의 바람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양화대교의 어원은 과거 이 다리 인근에 있었던 한강의 주요 나루터인 양화진에서 따왔다.



   15개의 곡들은 각각 독립된 하나의 주제의 가사로 담겨있다. 딥플로우는 이 곡들을 치밀하게 배치시켜 서사에 있어 하나의 방향성을 만들어간다. 앨범 [양화]는 마치 딥플로우의 나날들이 담긴 영화 한편 같기도 하다.



Part1. 홍대


   홍대에는 딥플로우의 작업실이 있다. [열반], [불구경], [낡은 신발] 처음 3곡 에서 래퍼로서의 열망을 다짐하고 현 대한민국 힙합씬에 대하여 질타를 가한다. 그 후 택시를 타고 홍대로 이동한다. 택시 운전기사와의 대화를 통해 4번째 트랙 [잘 어울려]로 이어간다. [당산대형]에서 레이블 수장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며, [작두]에서 자신의 공연장에서 열광하는 팬들과 그 무대에서 랩을 뱉어내는 자신의 모습을 무속에 빗대어 표현한다. 홍대의 하루는 [빌어먹을 안도감], [나 먼저 갈게]를 거치며 점점 저물어 간다. 그 후 영등포를 향하는 택시에 탑승한다. 검푸른 새벽하늘을 가르면서 [양화]를 건너 영등포로 귀가를 마친다.



Part2. 영등포


   영등포는 딥플로우가 거주하는 집이 있는 곳이다. 영등포에서는 딥플로우의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있다. 10번째 트랙 [역마]에서는 영등포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늘 이리저리 떠도는 자신을 역마살이 끼었다고 표현한다. 처음으로 가사에서 가족 구성원이 등장한다. 그 후 진부한 자신의 인생을 [Cliche]에 비유하며 불공평함과 무력감을 외친다. 홍대에서의 패기로운 모습과는 달리 지나간 과거에 푸념이 쏟아지며 무상감이 고조된다. 허나 [Dead Line]와 [개로]를 통하여 삶에 대한 회의를 딛고 재기하기 시작한다. [Bucket List]와 [가족의 탄생]에서 각각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레이블 소속 멤버들과의 회합을 통해서 앨범을 마무리한다.


   Part1, Part2  모두 딥플로우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사뭇 다르다. 청자들은 Part1에서 한 래퍼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고, Part2에서는 인생에 대하여 공감과 위로를 구할 수 있다. 감정과 메시지의 대조적인 양면이 트랙들의 연속적인 서사를 통하여 절묘하게 아우러진다.




넉살 : 상구형(딥플로우)은 엄청나게 디테일 변태이다. 음악적인 내러티브, 드라마를 만들 때 하나의 개연성없이 진행이 되는 부분이 없었다.  

                                                                                                     <힙플라디오! 황치와 넉치 제5화 中>





2. 가사와 플로우


   더 콰이엇, 비프리, 딥플로우, 기리 보이 이 래퍼들의 공통점은 '랩 잘하냐?'라는 의문이 한때 수식어와 같이 붙은 적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화려한 랩 스킬을 선호하는 대중들과 달리 이들의 플로우는 다소 단조롭다. 허나 나는 일정한 틀 속에서 라임들이 비트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고 청자들에게 감정과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을 한다면 훌륭한 랩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화 속에서 가사들도 본연 돋보인다. 몇 가지 가사 구절을 소개해보겠다. 




마음대로 된 적은 없지만 난 마음대로 해 
새 신은 안 사도 돼 난 신처럼 Scene을 만들어내 
We made us 믿어 내 방식과 태도, 사고 
내 자랑은 새로 산 것이 아냐. 날 제대로 산 것 

<낡은 신발 中>



난 꽤 늦게 알아챘어 현실은 무거워서
쉽게 올라가지 못했던 우리 집 층수

 <개로 中>







3. 피처링들과의 조화


   보컬에 비하여 랩은 음조의 높낮이가 간단하여 청자들은 쉽게 지루할 수 있다. 이를 다른 아티스트들의 피처링으로 보완하여 곡에 대한 흥미를 높인다. 자칫 자신과 피처링과의 분량 사이에서 균형이 무너져 곡의 주도권을 놓칠 때가 간혹 있다. 허나 딥플로우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피처링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여 꿋꿋하게 [양화]를 밀고 나간다. 



-딥플로우 Hook-

머리가 아픈 건 내려놔 오늘은 어디가?
오늘 밤도 결국 발 닿는 곳은 여기야
빌어먹을 이 안도감 '홍대로 가'
빌어먹을 이 안도감 '홍대로 가'

 (중략)

-오디 Verse-

주말엔 뭐하냐고? 뭐 저번 주에 하던 거
다음 주말에는 뭐하냐고? 씨* 이번 주에 하는 거

<빌어먹을 안도감 中> 



('빌어먹을 안도감'에 대해서 딥플로우는 홍대라는 '공간'을 통하여 이야기를 하고 오디는 반복되는 행위를 '시간'을 통하여 '빌어먹을 안도감'을 나타낸다. 같은 주제를 각자 다른 소재로 풀어나간다.)






4. 한국 힙합의 클래식으로


   앨범[양화]는 매우 한국적이다. 일단 가사의 한영 혼용의 비율이 낮다. 영어 가사는 단어 단위의 표현에만 가끔 나타나고 문장 이상의 단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트랙들의 제목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오직 한국 문화에서만 통용되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열반은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한 최고의 경지'의 의미를 가진 불교 용어이고, 작두는 길흉을 점치는 굿판에 쓰이는 물건이다. 역마살은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으로 토착적인 한국인의 의식세계에서만 접할 수 있는 소재이다. 교포 출신 래퍼들의 출현과 미국 힙합의 트렌드에 맞춰가는 유행과는 달리 힙합이란 장르를 한국적으로 소화한 것만으로도 [양화]는 독보적이다.


한국인의 과거 민속적인 문화와 토속적인 삶을 접해보고 싶다면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을 한번 읽어보자.



끝으로


   급박하게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약 1시간 가량의 재생 시간을 소화하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바쁘다면 한곡 한곡의 퀄리티도 상당하니 하나씩 나누어 듣는 것도 괜찮다. 허나 여유를 가지고 앨범 전체를 한번 돌려보기를 추천한다. 최근 음악 시장에 발매되는 중독적인 멜로디의 일부의 신곡들은 반복하여 들으면 쉽게 질리기 십상이다. 허나 앨범으로서의 [양화]는 단순한 즉흥적인 중독성 이상의 여운과 감동이 있으며, 이는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역시 음반을 앨범 째로 들어야 하는 이유를 직접 귀로 체험하여 알기를 바란다.


[양화] 앨범을 통해 '제 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노래, 올해의 음악인 부문을 수상하였다. 참고로 올해의 음반 부문에서는 이센스의 [Anedote]가 선정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fZrIT9RZ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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