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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Feb 23. 2019

프로그래머

#104 공대규 - [프로그래머]

p.5

   정보통신공학에서는 '데이터'와 '정보'를 구분해서 이야기합니다. 데이터는 주변에서 측정하거나 수집한 사실을 가리키고, 정보는 이 데이터가 유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여 체계적으로 조직한 결과물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소화하기에 벅찰 정도로 데이터를 너무나 많이 접합니다. 주변에 넘쳐나는 데이터가 정보가 되려면, 데이터를 자신의 머릿속에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저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되는 겁니다. 데이터를 소화할 겨를 없이 수많은 데이터가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니 정작 쓸 만한 정보는 부족해지요.

   아이러니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는 데이터가 그렇게 많은데 정작 '정보'는 부족하니 말입니다. 제 주변 친인척이나 학원의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잘반이 넘는 학생이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서 발표한 「진로에 대한 청소년의식조사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요. '진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거나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80%가 넘었지만, 정작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몰라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이 38.3%였습니다. '진로가 너무 많아 선택하기가 어렵다'가 14.9%, '하고 싶은 것이 있으나 자신이 없다'가 20.1%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접하는 시간을 줄이고, 기존 데이터를 정보화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으로 데이터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지금까지 접한 데이터를 자신의 정보로 만드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거나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더 늘려나간다면, 꿈과 진로를 결정하는 데 더 유리해질 겁니다.

   그리고 꿈이나 진로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상, 꿈이나 진로는 심각한 게 아니라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힘든 과정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은 돈, 동료, 명예 등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느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했던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적성과 소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일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내 직업이 내 적성이나 소질에 관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연결되어 있다면, 어려움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지요.



p.34

   제 주변의 프로그래머들을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프로그래머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커리어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 40%는 프로그래머로만 커리어를 쌓다가 시기는 서로 조금 다르겠지만 40대 초중반쯤에 은퇴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커리어와 맞지 않는 다른 분야의 일로 생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우스갯소리로 공대생의 미래는 치킨닙 사장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중략)

   둘째, 또 다른 40%는 40살 전후로 커리어를 바꿉니다. 예를 들면, 연구소장 같은 관리직으로, 아니면 기술영업, 사업기획, 이런 분야로 바꾸어 조금 더 직장생활의 수명을 연장합니다. "연구소장이 왜 관리직이냐? 난 아직도 프로그래밍을 하는 연구소장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소장이라는 직책은 회사로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을 하는 순간 그 사람은 프로그래밍보다는 그 외의 것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도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를 말이죠. 그러면 프로그래머로서의 커리어 성장이 서서히 멈추게 됩니다. 외국의 소프트웨어기업에서는 흰머리가 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프로그래머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그런 프로그래머를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셋째, 나머지 20%는 회사를 나와서 프리랜서로 프로그래머로서의 사회생활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때는 본인이 영업도 하고 프로그래밍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모두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롭다 혹은 재미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고달프고 외롭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p.80

   앞서 언급한 CD-ROM 타이틀에서는 동영상이나 음악파일과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다루는 능력이 코딩만큼 중요했습니다. 스마트폰 앱을 개발한다고 가정해보면, 각 스마트폰의 모델이나, 운영체제의 버전, 어떤 데이터나 콘텐츠를 다루고, 어떤 통신환경에서 사용되는 앱이냐 하는 특성들이 코딩만큼 중요할 것입니다. 여기서 코딩이라고 하는 것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이나 알고리즘 구현 노하우까지 가리킵니다.

   프로그래밍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 위에 다양한 콘텐츠를 연결하고 다양한 입력장치로부터 입력을 받아 다른 기계장치나 다른 소프트웨어와 통신한 후, 다시 사용자에게 출력해주는 과정입니다. 앱의 종류별로 코딩 이외에 알아야 할 분야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은 3세대 혹은 4세대 프로그램래머라는 용어를 써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성공한, 숙련된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 뿐만 아니라, 관련 콘텐츠, 활용해야 하는 하드웨어 그리고 연결해야 하는 다른 소프트웨어까지도 잘 알아야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4차산업의 핵심은 '융합'입니다. 4차산업혁명에서 성공하는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는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입니다.


p.84

   제가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진급의 가능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ICT 회사들은 최근에 창업된 순수한 소프트웨어 회사이거나, 예전에 창업된 중견기업 이상의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닌 이상은 프로그래머로서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개발연구소에서 연구원의 자리에 있더라도 경력이 10년 이상 된 경력자들은 프로그래밍 이외의 관리 업무 혹은 심지어 영업 업무에도 관여할 수밖에 없는 회사구조가 보통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학위와 학벌이 도움이 됩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직장생활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뛰어난 수준의 경력은 필수적이고요. 그래서 한 회사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프로그래머로 직장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유념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인력시장의 상황에 맞게 변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력시장의 인력 공급자입니다. 회사는 수요자이고요. 수요자가 우리를 구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시장에서 구매될 수 있도록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겠지요. 프로그래머로서 프로그래밍 능력뿐만 아니라 인맥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운다거나, 회사의 다른 부서일에도 항상 관심 갖고 그쪽 부서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아둔다든가, 저처럼 공부를 더 해서 학위를 받는 일들은 유사시 매우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p.101

   합병 후 계속 진행 중이던 희망퇴직 명단에 오르게 된 저는 재취업에 대해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희망퇴직금을 받고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퇴직 후 생각보다 구직 기간이 오래 걸리고, 이번 기회에 제2의 직업을 빨리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다른 직업을 찾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혹시,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이 아니라, 현직 프로그래머로 근무하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있다면, 저와 같은 상황에 빠질 경우 제가 범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항상 플랜B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경우, 이직할 회사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감만 갖고서 회사를 퇴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30대 대리, 과장급 직원들에게도 희망퇴직을 권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드리는 조언입니다.


p.105

   프로그래머의 성공과 실패를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892년. 고등학생의 나이로 국내 최초의 한글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한 박모씨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존경하는 프로그래머라서 실명을 밝히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훌륭한 분인데 실패 케이스로 자주 회자되는 게 너무 안타깝거든요.

   89년 아래한글이 처음 출시되는데, 82년이라니. 엄청나게 빠른 시점에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든 것인데요. 이분도 타이밍이 너무 빨랐던 게 문제였지요.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 인식이 낮은 시장상황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높이 평가받지 못했을 겁니다.

   이분의 인터뷰 기사에서, 본인의 실력에 자만하여 주변에서 들어오는 사업제안이나 투자제안 등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연관 기술을 공부해 기존 기술과 확장, 융합해 나가는 데 소홀히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잘 나가고 있을 때, 자만심은 항상 금물입니다. 큰 성공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교류, 타 시스템과의 융합 같은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저도 나중에서야 후회하며 깨달았습니다.


p.132

   프로그래밍 경력이나 능력을 소개하는 이력서의 첨부문서를 '포트폴리오'라고 합니다. 포트폴리오는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창작을 하는 예술가나 IT분야의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자기가 만든 작품 리스트나 샘플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고, 프로그래머에겐 자기가 만든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문서가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프로폴리오가 지원하는 회사의 업무와 관련이 많다면 자격증보다 훨씬 더 입사에 효과가 있습니다.

   특별히 준비된 포트폴리오가 없다면, 서류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일종의 다리 역할로 자격증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입사지원자가 주의해야 할 것은, 프로그래머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격증의 가치만큼 구인회사에서는 그것을 증요한 조건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IT 관련 자격증은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발급하는 것까지 합치면 많은 종류가 있고 그중 70~80% 이상이 구인회사 입장에서는 별로 관심갖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잘 선택해서 투자해야 합니다.

   IT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한다는 것은 순수하게 프로그래밍만 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의 네트워크 관리, 서버 관리, 데이터베이스 관리, 홈페이지 관리, 이메일 서버 관리 등등 IT 관리업무를 전체적으로 맡아서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프로그래밍 능력뿐만 아니라 그런 IT인프라 관리능력도 함께 갖춘 후보자를 더 선호합니다. 물론 이런 회사에서는 프로그래머가 할 일이 많아서 고 달픈 직장생활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 점은 미리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IT 관리업무도 프로그래머로서 갖춰야 할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프로그래밍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이 사용되는 네트워크의 특성, 관련 하드웨어(다양한 단말 장치들, 웹 서버, 데이터 베이스 서버 등)들의 특성 등 전반적인 주변 환경들을 잘 알고 있어야 개발하는 업무나 디버깅이라고 하는 에러를 수정하는 업무에 있어 전문성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p.304

   인터넷이 처음 등장할 때는 개방성에 기반한 정보 공유를 통해 세상이 과거와 달리 훨씬 민주적이고 평등해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인터넷의 정보들은 그런 기대와 달리, 네이버, 카카오, KT, SKT, 쿠팡, 위메프, 이베이(지마켓, 옥션), 구글, 페이스북 같은 강력한 '디지털 대기업'들로 모였고 이들은 그렇게 저장된 무수한 데이터로 커다란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들이 정보 거래에 있어서 중앙통제컴퓨터인 서버 역할을 하면서 생긴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새로운 인터넷 통신 환경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입니다. 


p.308

# 큐레이션(Digital Curation)

큐레이션이란 사용자의 관심사, 성별, 연령, 취미, 쇼핑 기록, 신상정보, 선호하는 스타일 등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나 상품을 알맞게 추천해서 보여주고, 상품의 경우에는 구매대행, 배송까지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중략)

   시대가 발전하면서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재미있는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요.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인 '평션오브뷰티(Function of Beauty)'라는 샴푸회사 이야기입니다. 샴푸는 매우 흔한 공산품입니다. 화장품 대기업들도 성공하기 힘든 레드오션 사업입니다. 여기에서 스타트업 기업이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이야기였는데요. 2015년 말에 설립된 이 회사는 1년 반만에 137억 원을 투자받았고, 회사 가치는 1억 1천만 달러(약 1300억원)로 평가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샴푸를 일대일 맞춤형으로 제조해서 판매합니다. 모발의 특성에 대해 직모, 곱슬, 굵기 등을 선택하고, 샴푸의 기능으로 불륨감, 탈색방지, 탈모방지 등 17가지 중 5가지를 선택하며 그 외에도 색상, 향기, 크기, 세트상품 등을 선택하게 한 후, 용기에 소비자의 이름까지 새겨서 배송해줍니다.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샴푸가 12억 가지라서 그 회사는 "우리는 지금까지 똑같은 샴푸를 판 적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p.337

   제가 대학에 가서 전공과목 첫 수업을 듣던 날, 교수님께서 신입생들에게 매번 첫 수업에서 똑같은 얘기를 해준다고 하시며 했던 얘기가 앞서 언급한 적이 있는 버나드쇼라는 영국 작가의 묘비명 얘기입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똑똑하고 삶의 경험도 풍부한 유명한 교수님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에 제자들의 대학 첫 강의에서 이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그리고 저도 그분의 나이가 된 후, 후배들을 만나면 항상 같은 얘기를 합니다. "별 중요하고 대단한 노하우 없다. 그냥 직접 계획하고 해봐라.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라." 공부도 일도 사랑도 행동해보십시오. 망설이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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