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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Mar 03. 2019

실리콘 밸리를 그리다

#108 김혜진, 박정리, 송창걸, 유호현, 이종호 [우린 이렇게 왔다]

p.23

   실리콘밸리에서는 직원을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션을 함께 이루어가는 프로페셔널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언제든 직원을 해고할 수 있지만, 직원들이 잘릴까 걱정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경우도 거의 없다. 많은 비용을 들여 힘들게 검증하고 데려온 프로페셔널 파트너를 해고하고 싶어 하는 회사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나긴 면접을 거쳐 뽑은 경우, 이를 통과할 다른 인재를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해고된다 해도 큰 걱정은 없다. 이미 다른 회사들이 스카우트하려고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해고된 사람을 무능하다거나 적응을 잘 못한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실력이 검증된 사람으로 여긴다.

   반면 직원을 프로페셔널 파트너로 보지 않고 시키는 일을 잘하는 일꾼이라고 생각하는 회사는 안전 욕구를 위협하여 일을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직원 행복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잘리고 싶어?",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 "영원히 휴가 가고 싶어?" 같은 메시지로 안전 욕구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이런 회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p.27

행복한 직장인을 만드는 욕구 단계

1. 생리 욕구: 잘 먹고 잘 쉰다.

2. 안전 욕구: 협박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3. 애정ㆍ소속 욕구: 팀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갖는다.

4. 존경 욕구: 회사로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기대받는다.

5. 자아실현 욕구: 자신의 장점과 전문성을 살려 자발적으로 기여한다.


   즉 회사가 직원을 일꾼이 아닌 프로페셔널 파트너로 대하고, 회사 미션에 직원이 기여한 바를 회사와 직원이 함께 기뻐하면 된다.

   반면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회사에 있는 것이 불행해진다.


불행한 직장인을 만드는 욕구 단계

1. 생리 욕구: 늘 피곤하고 힘들다.

2. 안전 욕구: 일 못하면 잘린다고 협박당하거나 폭언을 듣는다.

3. 애정ㆍ소속 욕구: 팀원들끼리 경쟁한다.

4. 존경 욕구: 다른 사람들과 늘 비교당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5. 자아실현 욕구: 싫어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즉 회사가 직원을 프로페셔널 파트너가 아닌 미덥지 못한 일꾼으로 대하면서 온갖 협박으로 직원에게 일을 강요하면 된다. 협박이나 강요 속에서 일하면 좋아하는 일도 싫어지게 마련이다.


p.33

   그런데 실제로 실리콘밸리 회사가 시작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뛰어난 기술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구글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고안한 검색 기술로 회사를 세웠다.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PHP 웹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장난 같은 웹사이트에 불과했다. 트위터는 많은 프로그래밍 교육 과정에서 연습 문제로 쓸 만큼 만들기 쉬운 앱이다. 에어비앤비, 우버에도 특별한 기술은 없다.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기술을 쓰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앱으로 시작했다.

   그들은 어떻게 별것 아닌 기술로 IT 및 관련 업계에서 세계를 제패했을까? 역시 아이디어가 답일까? 사실, 그것도 정답은 아니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을 만든 회사가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는 바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고객에게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한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을 시작으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테슬라, 에어비엔비, 우버 같은 회사들은 그때까지 불강능했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물론 새로운 기술들이 큰 역할을 했지만, 실리콘밸리 회사들에게 기술은 도구일 뿐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p.41

2000년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기업 채용 담당자들도 더 이상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을 뽑을 수 없게 되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뽑기 시작했다. 기존 임직원이 신입 사원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이러한 변화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위에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정보를 제한했다. 신입 사원은 아는 것이 가장 적다. 임원은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다른 직원들에게 전달해 각자가 결정을 내리기 쉽게 해주는 대신 정보를 독점하고 그 흐름을 제한해 비교 우위의 지위를 유지한다. 그런데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한 회사에서 사장이 오라클과 데이터베이스 독점 계약을 체결하면서 직원들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치자. 뛰어난 엔지니어가 새로 들어와서 마이에스큐엘MySQL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수행했어도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큰 실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위에서 이야기해준 대로만 일하게 된다. 사내에서 표준화된 방식으로만 일하고, 그 결과 그의 전문성이 크게 낭비된다. 결국 정보를 다 공개하고 전방위로 소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을 뽑아도 그저 그런 결과물밖에 얻지 못한다.

   냉장고, 반도체, TV 등을 만드는 제조업에서는 정보 공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설계자는 따로 있고, 만드는 사람들은 설계를 그대로 따르면 된다. 설계도는 아주 세밀해 모든 부품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서는 좋은 제품이 나오기 어렵다. 소프트웨어 최적화는 기획자가 미처 다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기획자가 아무리 잘 설계해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알고리즘과 데이터 구조를 활용하여 더 빠르고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UX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가 각각 전문가로서 제품 최적화를 꾀하다 보면 제품이 끊임없이 변해 애초의 설계와는 다르게 만들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기업에는 기획자라는 직업이 아예 없다.

   엔지니어 문화에서 출발한 실리콘밸리에서는 맨 처음의 설계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진화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품을 가정하고 시작한다. 위에서 설계하고 아래에서 구현하는 방식으로는 실리콘밸리식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또한 실리콘밸리에서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아웃소싱ㅇ르 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웃소싱 구조에서는 설계를 바꾸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 문화는 기술 집약 제조업에 최적화되어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제품이 설계의 산물이 아닌, 계속 변해가며 만드는 과정인 애자일 프로세스Agile Process에 충실한 결과물인 경우, 제조업에 최적화된 기업 문화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p.43

   하지만 제조 분야 대기업이 실리콘밸리 문화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한다.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쓰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딜레마 삼각형'을 보면, 설계를 먼저 하는 제조업 문화가 왜 품질 낮은 소프트웨어와 야근이 잦은 업무 형태를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속도', '품질', '기능'의 세 점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에서 중심에 있는 점을 속도 쪽으로 옮기는 품질과 기능에서 점점 멀어진다. 중심에 있는 점을 품질 쪽으로 옮기면 속도와 기능에서 점점 멀어진다.

   제조 분야 기업에서는 설계가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능과 품질이 고정되어 있다. 때문에 속도를 높이면 제조가 빨라지고 속도를 낮추면 제조가 늦어지는 단순한 공식이 생긴다. 기업 입장에서는 속도를 줄일 이유가 없다. 또한 아웃소싱을 하든, 엔지니어를 추가로 고용하든 결과에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는 효과적이지 않다. 가령 에어비앤비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웹페이지를 바꾼다. 엔지니어들이 각자의 코드를 완성하면 바로 웹페이지를 업데이트한다. 설계하고 그에 따라 제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몇 주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는 회사와는 개발 속도도, 피드백을 수집하여 적용하는 속도도 완전히 다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제품을 만들 때 계속 설계를 바꾸면서 품질을 향상시키고 기능에 변화를 준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끊임없이 세 가지 요인을 생각한다. 설계를 바꾸어 품질을 좋게 할지, 기능을 추가하거나 바꾸어 사용자를 만족시킬지, 시간을 단축하여 개발을 완료할지를 늘 저울질한다. 자연스레 생각을 많이 하고, 코디을 하지 않는 생각도 업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과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엔지니어가 곧 개발자이고 설계자이고 제품 품질까지 책임지기에, 충분히 쉬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하지 않으면 오히려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급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품질과 기능이 부족한 제품이 나오면 모두에게 손해다.


p.48

   모든 테크 기업들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역할'innovator과 '혁신을 빠르게 확산하는 역할'fast follower이 그것이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사람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혁실을 확산하는 기업은 이미 이루어진 혁신을 모방하여 더 싸고 품질을 좋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한 기업이 혁신의 시작과 확산을 모두 이룰 수도 있다. 하지만 혁신을 만들어내는 데 적합한 스타트업형 조직과 혁신을 확산하는 데 적합한 대기업형 구조는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한 기업이 둘 다 잘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디어와 혁신을 중요시하는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문제를 찾아내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션을 세우고, 그 미션에 맞는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제로 투 원Zero to One, 즉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어 블루오션을 개척한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구글의 검색 기능, 테슬라의 전기 차는 물론이고 페이스북, 트위터, 에어비앤비, 우버 등은 사람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제조업 위주인 기업들에서는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즉 고객이 최대한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를 증진시키려고 노력한다. 삼성은 애플의 혁신으로 만들어낸 스마트폰을 더 싸고 좋게 만들어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 지금은 중국의 수많은 기업이 기존의 혁신 제품들을 모방하여 더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무한 경쟁의 레드오션 시장을 만들지만, 소비자들이 더 싼 값에 혁신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모든 회사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지, 즉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명확히 하는 미션 스테이트먼트를 가지고 있다. 반면 혁신을 빠르게 확산하는 기업은 '어떻게'를 강조하는 미션 스테이트먼트를 가진다. 또한 세계 시장에서의 위치와 고객 만족 등을 중요시한다.


p.56

   상하 관계를 중시하는 회사에서는 '우리'의 과장님, 부장님, 팀장님, 사장님이 의사 결정을 한다. 엔지니어는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윗사람'의 절대적 권한이다. 그래서 덜 권위적인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스티브 잡스처럼 식견이 뛰어난 사람은 혼자서 그린 비전을 향해 전 조직이 달려가게 만든다. 애플과 전통적인 미국 기업들, 그리고 삼성을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이 선택한 기업 모델로, 이를 '위계 조직'Rank-driven organization이라고 하자.

   위계 조직의 장점은 윗사람의 결정에 따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때 활용된다. 위계 조직의 단점은 한 방향으로 달려가던 차의 방향을 바꿀 때 많은 마찰이 발생하는 것처럼 변화에 약하다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에어비앤비 등 비교적 최근에 생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선택한 것은 '역할 조직'Role-driven organization이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따라 책임감을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하고, 업무를 수행한다. 최고경영자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체를 경영한다. 엔지니어는 코드를 작성하며 시스템을 설계한다.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엔지니어는 코드를 작성하며 시스템을 설계한다.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엔지니어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다른 팀과 문제는 없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조율한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자신이 맡은 프로덕트가 사용자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프로덕트를 개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사 결정을 한다.

   역할 조직의 장점은 모두에게 의사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며, 혁신하고 변화하는 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반면 권한과 책임이 분산된 만큼 크게 주의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각자가 추구하는 비전이 맞지 않으면 팀 간, 개인 간 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래서 이러한 회사에서는 핵심 가치Core value와 미션 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가 매우 중요하다. 둘째, 모든 구성원이 뛰어나야 한다. 직우너 모두에게 결정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다.


p.79

위계 조직은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비슷한 일을 하면서 경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정보력'이다. 그래서 위계 조직에서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한한다. 회장, 사장이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상무, 부장, 과장으로 내려가면서 그 양이 줄어든다. 실무를 보는 말단 직원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팀장이 팀원에게 "네가 뭘 안다고 결정을 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래?"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매너 있는 팀장은 "당신이 이 위치에 올라와보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할 수도 있다.


p.91

"과도한 의사소통이 적은 의사소통보다 항상 낫다."

Over communication is always better than less communication.


p.181

기: 스토리의 탄생

"당신의 스타트업은 어떤 스토리를 이루어가고자 합니까?"

이는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들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훌륭한 스토리는 스타트업의 시작이자 끝이다.

모든 스타트업 창업자가 처음부터 분명한 비전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애자일 프로세스를 통해 성장하는 린(Lean) 스타트업의 초기 스토리는 자주 바뀐다. 많은 스타트업들의 꿈인 기업 공개 상장 준비를 시작하는 순간까지 기업의 정확한 스토리를 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의 중요 전환점마다 무의식중에 내렸던 많은 결정들이 이후에 만들어진 스토리 라인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포장될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의 "어디서나 우리 집처럼(Belong Anywhere)"이라는 미션도 그 한 예다. 창업자들이 처음부터 미션을 설정해놓고, 그 미션을 이루기 위해 에어비앤비라는 회사를 창업한 것이 아니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방을 내놓은 것이 사업 아이템이 되었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스토리는 그 회사의 존재 목적과 정체성이 되었다.

스토리가 중요한 것은 기업이 지향하는 방향을 통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틀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자신이 만들어낸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은 그 스토리 전개와 결말에 마음이 이끌려 투자를 결정한다.


p.215

외발자전거로 피자를 배달하다 떨어뜨린 배달원은 잘못이 없다. (중략)

   사고나 실수가 반복되는 환경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마치 사고가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 실리콘밸리에서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다 같이 공유하는 문화가 마련된 바탕에는 경험으로 얻은 다음과 같은 통찰이 깔려 있다. '누군가 사고를 냈더라도 그는 어쩌다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 뿐 그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았다면, 그 관리자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다.' 훌륭한 관리자일수록 빨리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람들에게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모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이 사고 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효과적임을 알아야 한다.


p.218

   이러한 프로젝트 우선순위 전략은 워터폴Waterfall 전략과 애자일Agile 전략의 차이를 보여준다. 한 번에 계획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워터폴 전략의 경우에는 경쟁이 있더라도 이미 검증되어 있고 많이 팔리는 시장, 즉 레드오션을 저렴한 가격으로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 이때 세일즈와 고객 지원 등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작은 기업들은 워터폴 전략으로 시작에 진입하기가 어렵다.

   반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진화해나가는 애자일의 경우, 최소한의 투자로 시장에 파고들 수 있는 제품을 먼저 만든다. 세일즈와 고객 지원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 소수의 마니에게만 최소로 판매하며 기초를 다져나간다.


p.232

애자일 선언문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또 다른 사람의 개발을 도와주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더 나은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다음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되었다.


공정과 도구보다 개인과 상호 작용을 

포괄적인 문서보다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계약 협상보다 고객과의 협력을

계획을 따르기보다 변화에 대응하기를


가치 있게 여긴다. 이 말은, 인쪽에 있는 것들도 가치가 있지만, 우리는 오른쪽에 있는 것들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p.234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 소개된 일화가 재미있다. 스티브 잡스의 지인 중에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 프로젝트를 자랑했다. 그것이 못마땅했던 잡스는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주마.'라는 생각에 아이패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가 아이폰을 먼저 내놓았다고 한다. 반은 농담이라 치더라도 잡스는 기존 가젯gadget들이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폰은 사용자가 손에 쥐는 순간 본능적으로 거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이때부터 스마트 기기라고 하는 것이 일부 얼리어댑터 집단이 아닌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기능만 보자면 이미 얼리어댑터들이 사용하던 몇몇 기기들이 더 훌륭했음에도 아이폰이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대부분의 잠재적 고객들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먼저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정전식 터치 기술에 화면에 적용한 최초의 완성품이다. 아이폰 10주년을 기념한 아이폰 X에 비하면 최초의 아이폰은 기능과 성능 면에서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벼운 터치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기술만은 초기 제품부터 완성도가 높았다. 아이폰에 있는 모든 기능은 사용자가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었으며, 그런 경험 자체의 만족도가 높았다. 이후 많은 제품이나 소프트웨어의 디자인에 '사용성'Usability이라는 요구 사항이 추가되었다.


p.238

조직 문화와 개발 프로세스

워터폴과 애자일 프로세스는 각각 위계 조직과 역할 조직 중 어떤 조직 문화에 더 적합할까?

   워터폴 모델이 적용되는 프로젝트를 먼저 보면, 요구 사항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만족시키는 경쟁사 간 입찰을 통해 프로젝트 주관사가 결정된다. 이렇다 보니 요구 사항, 가격, 기한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남은 변수는 품질이 된다.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기한 내에 납품해야 하는데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 품질을 높이려면 체계적인 관리 기법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예상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도 들여야 한다. 관리자는 각 직원이 중복 작업을 하지 않도록 효율적인 업무 배부을 하며,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나누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이러한 프로세스를 수행하는 데는 모든 직원이 회사 미션을 이해하고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결정을 각자가 내리는 역할 조직보다 체계적으로 일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위계 조직이 적합할 것이다.

   애자일 프로세스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탐색하는 과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 그리고 요구 사항이 묶여 있는 경우에 쓰기 어렵다. 비용과 시간이 묶여 있는 경우라도,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MVP가 인도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정해진 기한 내에 자동차 B를 만들어 인도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고객은 이미 조향 성능이 훌륭하고 신뢰도가 높은 모터사이클 B를 만족스럽게 운용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자일 프로세스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은 고객 만족을 위한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팀원들이 협업과 잦은 반복iteration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을 것이다. 명령 체계가 분명하지만 방향을 유연하게 바꾸기 어려운 위계 조직보다는, 각 팀원이 전체의 방향을 이해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해결책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역할 조직이 적합하다.


p.245

애자일에서 태스크(Tash)의 단위: 테마(Theme)>에픽(Epic)>스토리(Story)

Theme: "태블릿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한 레스토랑 주문 시스템."

Epic: "고객으로서, 테이블의 태블릿을 통해 음식과 관련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Story: "고객으로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메뉴를 볼 수 있다."

Task: "음식 사진이 배열된 메뉴 화면을 구현한다."


p.321

미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여느 기업들과 다른 점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미션'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저마다 미션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한다. 일론 머스크는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우버는 교통 문제를 해결하고, 에어비앤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기 집처럼 느낄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 구글은 정보를 조직해서 누구나 접근하기 쉽도록 하는 데,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 집중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미션은 특정 시장이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한다. 전 세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한국인들끼리만, 중국인들끼리만, 독일인들끼리만, 남성끼리만 또는 여성끼리만 있어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 외에 다른 많은 나라 사람들의 문제를 고민해볼 일이 별로 없었다. 제조업을 키우듯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면 전 세계인의 문제도 해결되리라고 믿어왔다. 냉장고와 세탁기, 자동차는 그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개인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직접 반영되는 소프트웨어에서는 기존의 문제 해결 방식이 잘 맞지 않는다. 이는 제조업을 키우는 한편으로 실리콘밸리 모델을 모방하는 중국 또한 머잖아 경제성장에 한계에 이르러 맞닥뜨릴 문제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야 한다.


인재

전 세계에서 실리콘밸리로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켜나간다. 각자가 자신의 종교와 신념과 성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공동의 미션에 기여한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편하게 일할 수 없다면 그곳을 떠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 세계적 인재들이 모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을 어느 정도 버리고 그 문화에 동화되어야만 지내기 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인재들을 모으려면 각자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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