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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재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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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Jan 29. 2020

광고천재 이제석

#125 이제석 [광고천재 이제석]

p.5

광고쟁이는 광고 하나로 보여주면 된다. 뭐 미주알고주알 밝힐 게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도 밍기적거리다 내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판이 불리하면 뒤집어라!"

그 판에 억지로 적응하느니 판을 바꾸려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주어진 내 모습을 바꿀 수 없다면 내 생각을 바꾸자. 그러면 세상 사는 방식도, 창의력도 팍팍 터진다. 결승점을 바꿔버리면 꼴찌로 달리는 사람도 일등이 된다. 나는 그렇게 오늘을 내 방식대로 내 맘껏 한번 살아보려고 한다. 판이 더럽다고 욕할 시간에 새 판을 어떻게 짜고 그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나는 죽어라고 고민해보려고 한다.


p.151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떤 광고주가 찾아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구용품의 카피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소비자에게 뭘로 어필할 거냐고 물었다. "국산"이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선발 상품보다 질도, 디자인도, 가격도 떨어져 그 제품을 사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광고 아무리 해도 안 팔려요."

말귀를 못알아들었는지 회장이 제품을 만들기까지 고생한 이야기를 광고에 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답이 안 나왔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쯤 된다. 아마 광고쟁이에게 클라이언트의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얘기해보라면 밤새, 아니 한 달도 모자랄 것이다.

장사가 잘 되는 밥집은 맛 하나로 승부한다. 손님에게, 그러니까 클라이언트에게 아양 떨지 않는다. 손님들은 최고의 맛집에 들어가기 위해 1시간씩 줄을 선다. 며칠 전부터 예약해서 찾아가겠다고 해도 문을 일찍 닫는 맛집들을 본 적 있을 거다. 최고의 맛집은 그럴 만하다. 나도 클라이언트가 굽신거릴 만큼 최고의 광고쟁이가 되려고 한다. 갑 같은 을이 될 것이다. 광고쟁이한테 굽신거리는 클라이언트 상상이나 해봤나? 충분히 가능하다. 실력으로 승부하면 말이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게 아니라 할 만한 걸 제대로 하겠다는 거다.

나는 월급 받으며 회사 다닌ㄹ 때도 사장에게 굽신거리지 않았다. 내가 5천만 연봉을 받는다면 그 이상의 수익을 뽑아낼 건데 굽신거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한테 연봉 1억을 준다면 아마 기업에서는 1억 이상의 이윤을 내고 있을 거다. 그러지 않고서는 당신을 고용할 이유가 없다. 너무 굽신거리지 마라. 그래야 몸값도 잘 받는다. 나는 굶어 죽을지언정 '쌈마이'짓을 하고 싶지 않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일할 수는 없는 걸까?


p.155

나 같으면, 프레젠테이션까지 7일 남았다면 6일을 아이디어 짜는 데 쓴다. 기획서도 두 장으로 끝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한 장에는 문제점 쓰고, 다른 한 장에는 해결책 쓰는 식이다. 이렇게 간단명료하지 않으면 해결책을 못 찾았다는 얘기다. 솔직히 시안 발표할 때도 사인펜으로 아이디어만 정확하고 간결하게 그려 보여주면 된다. 좋은 아이디어는 설령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그려도 다 알아본다.


p.170

상업광고에 점점 정나미가 떨어져 가면서 나는 공익광고 쪽에 자꾸 눈이 갔다. 돈이 안 되는 척박한 여건이지만 공익광고의 내용과 목적이 내 유전자와 맞았다. 전쟁으로, 환경오염으로, 기아로 당장 사람이 죽게 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케아 가구를 사라, 나이키를 신어라, 오레오를 먹어라, 이야기하는 것보다 배짱에 맞았다. 돌이켜 보니 즐겁게 작업한 것도, 좋은 성과를 가져다 준 것도 모두 공익광고였다.


p.173

2008년 11월 19일 광고가 나가자 '미친 놈이 나타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내용과 형식이 파격적이라는 평가였다.

"생활고의 심각함을 마치 흑과 백으로 심플하게, 한편으로 극적으로 표현했다." "자선을 주제로 광고하면서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칼럼을 쓰는 것처럼 이성적으로 접근했다."

이 광고는 뉴욕시 전역의 공중전화 부스에도 설치됐다. 난 이 광고를 통해 시티 하베스트, 나아가 자선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관을 바꿔놓고 싶었다. 유니세프의 광고들처럼 눈이 쾡한 아프리카 아이들 사진을 등장시켜 동정심을 유발할 생각은 없었다. 할 말을 직설적으로 하자, 눈을 뚫고 뇌까지 찌르는 광고를 하자, 그게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다, 고 나는 생각했다.


p.209

나는 이런 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도록 광고쟁이가 키를 꽂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그물망 안에는 아직 연결되지 않은 여러 링크들이 있다. 그 링크를 걸어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그러자면 판을 확 바꾸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판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위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후원자를 찾아야 한다.


p.215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내 방식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창조하는 자로 남으려면 나를 끊임없이 불태우는 것 말고는 없다. 뉴욕에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학대하고 괴롭혔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스스로를 들들 볶으면서.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취직이든 성공이든 남들 하는 대로 하면, 극소수만 목적을 이룰 뿐이다. 남들이 옳다고 목에 핏대 세우며 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무엇이 옳고 틀린지 한번 따져보자. 그게 정말 맞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때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어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야 뒤집기도, 한팡승도 가능하다. 내가 타이슨과 주먹으로 싸울 수는 없다. 타이슨과 싸울 때는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찌르면 천하의 타이스도 꽥! 불리한 룰이 있다면 유리하게 룰을 바꾸거나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한다. 룰을 바꾸지 않으면 타이슨에게 맞아 죽는다.


창의력이든 상상력이든 삶의 방식이든 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만들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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