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손무 [손자병법]
중원에서는 전차가 주력 무기였지만, 오나라에서 전차는 보조무기에 머물렀다. 그 첫번째 이유는 오나라가 '오랑캐' 출신이라는 점에 있다. 두번째 이유는 오나라가 양자단 하류의 호수와 늪이 많은 지대에 위치하였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그 결과 그때까지 적과 아군이 전열을 정비해서 대적한 다음에 정식으로 싸움을 시작하는 양식은 퇴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전투자체가 완전히 속이는 계략인 궤계에 의해서 진행되는 새로운 전투 형태가 나타났다. 따라서 적을 기만하는 속임수나 권모술수는 한 번의 전투 안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전쟁 시작 시기의 선택에서부터 각 부대의 출력이나 이동, 적군의 포착과 공격, 군대의 철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군사 행동에 걸쳐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야말로 전쟁 전체를 계략에 따라 처음으로 실천한 획기적인 사례이다. 이미 중원의 전차전에 있어서도, 무엇보다도 이겨야 한다는 강렬한 희망은 전투에서 전사의 윤리를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로부터 고대적인 전쟁의 미학은 사라지고, 정해진 규칙 없이 서로 속이는 적나라한 전쟁관으로 크게 바뀌어 나갔다. 손무가 "전쟁이란 속임수다" 라고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처음에 말한 것 처럼 전쟁이란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존재해 왔으며, 더구나 승패의 결과가 나라나 민족의 흥망에 곧바로 연결하는 중대사였다. 그렇게 때문에 이미 고대에 숱한 민족이 엄청난 전쟁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들은 어느 것이나 그들이 보고 들은 특적한 전쟁의 과정을 서술한 데 그치고, 형식으로서의 전쟁 자체가 가지는 복잡한 구조를 분석하고 해명하여, 거기에 숨겨져있는 보편 원칙을 추구하는 단계에 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단순한 전쟁사의 한계를 넘어, 참으로 군사사상 이라고 부를만한 분야를 창조해 낸 것은 전근대에서는 오로지 중국문명 뿐이었다. 손자나 오자 등 '병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일찍이 기원 전 수세기에 장대한 군사사상의 이론체계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구에서 군사사상의 발전을 되돌아볼 때, 그 본격적인 발걸음은 프랑스의 찰스 8세의 이태리 침입을 계기로 15, 16세기에 촉발되어 마키아벨리에서 겨우 시작되어 있다. 더구나 서구 근대 병학은 봉건시대 기사 군대 이래의 중세적 잔재나, 화폐 경제의 발달에서 지탱된 절대왕제 아래의 용병제도 등의 시대적 제약 사이에서 그 후 수백 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욱이 독자적인 군사사상이 창조되는 것은 18, 19세기의 나폴레옹 전쟁 이후이다.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새겨볼 때에 고대 중국의 병법사상은 그 자체가 이미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전쟁 준비에 다소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속전속결을 추구하여 승리한 경우는 들어 보았지만, 전쟁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장기전을 치르며 승리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전쟁을 하면서 나라의 재정이 가난해지는 이유는 병사와 보급물자를 먼 거리로 수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송로가 길어지면 백성의 부담이 커져서 가난해진다. 군대가 주둔한 지역은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면 백성들이 쓸 물자가 모자라게 된다. 나라의 물자가 다 말라버리면 이를 채워야 할 부역의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적을 모르고 나를 알기만 한다면 이기고 질 확률은 절반이 되며, 적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른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험에 빠지게 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옛날에 전투에 뛰어난 장수는 먼저 적이 아군을 이기지 못할 태세를 갖추고, 적이 허점을 드러내 아군이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니 적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조건은 아군 쪽에 달려 있으며, 아군이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은 적군 쪽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쟁에 뛰어난 자라도 적군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아군의 대비 태세에 만절을 기할 수는 있어도, 아군이 반드시 적군을 이길 수 있도록 적군의 허점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리란 미리 알 수는 있으나, 그것을 원한다고 마음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언제나 패배하지 않는 '불패'의 자리에 서서, 적이 패배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 놓고 적과 싸우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승리를 축구한다.
피실격허- 아군은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적의 취약점을 만들어서 적의 '실'을 피하여 그 '허를' 찔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승리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수의 자질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약점 있을 수 있다. 첫째, 장수가 용맹이 지나쳐 죽기를 다해서 싸우기만 한다면, 죽음을 당할 수가 있다. 둘째, 반대로 장수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목숨만 지키려고 한다면, 적에게 사로잡힐 수가 있다. 셋째, 장수의 성격이 조급하고 화를 잘 내면 적의 도발을 참지 못하여 경거망동할 수가 있다. 넷째, 장수의 결벽증이 지나치고 명예욕이 강하면 적의 계략에 빠져 모욕을 당할 수가 있다. 다섯째, 장수가 이해를 따지지 않고 부하를 지나치게 아끼면 부하를 보호하려다가 번거러운 곤경에 빠질 수 있다.
병사들이 장수와 미처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사들의 작은 잘못을 처벌하면, 병사들은 그 장수에게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적과 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장수와 이미 친숙해진 뒤에 병사들의 잘못을 처벌하지 않으면, 역시 이들을 이끌고 적과 싸울 수 없다.
그러므로 장수는 승리하면서도 명예를 좇지 않으며, 패배할 때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부하에게 임무를 맡길 때에 어째서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어서는 안된다. 유리한 점을 들어 격려하되, 그들 앞에 닥쳐올 위험이나 불리한 점을 미리 알려주어서는 안된다.
군대란 멸망하는 땅에 던져져야 비로소 보존하는 방법을 개닫게 되고,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땅에 빠져야 비로소 살아남은 방법을 찾게 된다. 군대는 위험에 빠져야만 승부를 생각하게 된다.
노여움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기쁨으로 바뀔 수 있고, 분노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하면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적대한 두 나라가 몇년 동안을 서로 버티며 준비한 것은 오로지 하루 아침의 승리를 얻기 위함이다.
적의 정황은 오직 그 정황을 아는 첩자를 통하여서만이 얻어질 수 있다.
벌은 지휘관으로부터, 상은 말단에서부터 시작하라.
명령이 병사들에게 빈틈없이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지도자인 군주와 장수의 죄이다.
바로 지도자가 언제나 확실하게 원리원칙이 정해진 명령에 주의하면, 자연스럽게 병사들이 교육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고, 장수의 본래 임무입니다.
그러자 오나라왕이 말하였다. "좋소, (패도가 아닌) 왕도를 걷는 왕의 길이란 백성을 첫째로 생각하고, 백성들에게 널리 사랑을 쏟으며 백성을 존중한다는 것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