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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재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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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Jun 23. 2020

지적자본론

#128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자본론]


p.12

    고객의 입장에 서 보면 즉시 알 수 있다. 물론, 새로운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보다 일찍 신상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고객이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세계 최초인가, 하는 점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쾌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계 최초'이지만 주변에 그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사용 방법을 친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스스로 두꺼운 매뉴얼을 살펴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고객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가. 그런 것을 고객 가치가 높은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 최초의 서비스'라는 판촉 문구의 배후에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라는 변명이 감춰져 있는 경우가 적잖다.

    돌이켜 보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라져 버린 '세계 최초'는 정말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CCC의 사원들에게 "'세계 최초'를 지향하지 말고 '고객 가치 최대화'를 지향하라."라고 말한다. '가장 우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그것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

    '세계 최초'는 대부분 회의실에서 탄생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사건은 회의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주인공 아오시마 슌사쿠가 뱉은 명대사이지만, 기획 세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회의실 의자에 앉아 "뭔가 새로운 것은 없을까?"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그곳에서 탄생하는 기획은 형해화하고 생명력을 잃는다. 현장, 즉 고객이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에서, 고객의 입장에서 정말로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힘 있는 기획을 만들어 낼 수 있다.



p.26

    독일의 철학자 칸트도, 자유는 의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칸트는 우선,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이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물은 본능에 지배를 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눈앞에 바나나가 있으면 무조건 먹으려 한다. '먹지 않는다.'라는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갖추면서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바나나가 눈앞에 있어도 '먹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나나를 정물화의 모티프로 삼기도 한다. 선택의 여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본능이나 욕구에 현혹되지 않고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즉 무엇이 '의무'인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 깨달음을 따르는 것이 자유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자유가 냉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의미에서다. 하지만 자신의 꿈에 다가가려면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반드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p.45

기획의 가치란 '그 기획이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p.46

    기획 회사 CCC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TSUTAYA를 예로 들어 보자.

그 특징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심야까지 운영하는 영업 실태다. 편의점이 흔한 요즘에는 이것이 특별한 영업 실태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TSUTAYA가 일반인에게 인지되는 과정에 놓여 있던 창업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상당히 참신한 시도로 비쳤다. 사실 '심야까지 영업을 하면 사람들의 눈에 띌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이런 영업 실태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영업시간을 늘리면 그만큼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아니고, '심야까지 상점 문을 열고 노력하는 모습을 어필하고 싶다.'라는 계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심야에도 영상이나 음악 소프트웨어, 또는 서적 등을 구입하거나 빌릴 수 있으면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에서 시도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고객의 입장에서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영업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증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고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 TSUTAYA다. 오사카 부 히라카타시에 TSUTAYA의 1호점인 '츠타야서점 히라카타점'을 개점한 때가 1983년이니 벌써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기획이란 고객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신념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p.47

    그런 '고객 가치'의 관점에서 소비 사회의 변화를 생각해 본다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

우선 소비 사회의 첫 단계, '퍼스트 스테이지’는 물건이 부족한 시대다. 이 경우, 고객의 입장에서는 상품 자체가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상품이든 용도만 충족하면 팔 수 있다. 일본을 예로 든다면 전후의 혼란기에서 고도성장기까지가 이 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프라가 정비되고 생산력이 신장되면 상품이 넘쳐 나는 시대가 찾아온다. 세컨드 스테이지'다. 이 시대는 용도만 갖춘 상품이면 무엇이든 팔 수 있는 목가적인 시대가 아니다. 가치의 축은 상품이지만 그것을 선택하기 위한 장소, 즉 플랫폼이 필요하다. 따라서 고객의 입장에서 볼 때, 보다 효과적인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가 높은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된다. TSUTAYA 역시 그중 하나에 해당하는 플랫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오늘날의 소비 사회는 더욱 진보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금세 알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플랫폼이 넘친다. 인터넷상에도 수많은 플랫폼이 존재해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소비 활동을 전개한다. 이것이 '서드 스테이지’, 우리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시대다. 이미 수많은 플랫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히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고객의 가치를 높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67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플랫폼이 넘쳐 나는 서드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은 '제안'을 원한다. 서적이나 잡지는 그 한 권, 한 권이 그야말로 제안 덩어리다. 그것을 팔 수 없다면 판매하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문제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한 가지 해답을 얻게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서적이 제안 덩어리라면, 그것을 판매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그리고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는 상점인데 만약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것이라면 서점 사업은 역시 사양 산업이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고객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서적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제안이다. 따라서 그 서적에 쓰여 있는 제안을 판매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깡그리 무시하고 서적 그 자체를 판매하려 하기 때문에 '서점의 위기'라는 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p.73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의 이노베이션 과정에서는 어떤 장애가 있었을까. 우선 제안 내용을 바탕으로 구역을 새롭게 설정하려면, 직원들에게 일반 서점의 점원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능력이 요구된다. 물건에 해당하는 서적을 책장에 정리하는 작업을 예로 들어 보자. 기존의 서점이라면 문고본은 문고본용 책장에 진열하면 된다. 출판사별로 분류된 책장 안에 저자의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책을 배치하는 것이다. 정말 간단하다. 수납해야 할 서적이 몇 권이든 해당하는 장소에 기계적으로 진열만 하면 되니까 특별한 능력이나 소질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제안 내용을 바탕으로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면?

    일단 어떤 제안이 고객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지, 어떤 제안이라면 고객의 욕구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요리 구역이라면 '의식동원의 역사와 실천에 관한 서적끼리 모아 놓자.' 라거나 여행 구역이라면 '예술적 측면에서 마법의 도시 프라하를 안내하자.' 라는 식으로 고객의 가슴을 파고들 수 있는 제안을 몇 가지 정도 생각해 내고 그 주제에 맞는 서적이나 잡지를 진열해야 한다. 이것은 고도의 편집 작업이다. 서점 직원은 말이 아니라 매장의 진열대를 특수한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자신이 제안하고 싶은 내용을 표현해야 한다.

    또한 각 구역의 테마를 결정한 뒤에는 새롭게 출간된 서적 하나하나를 어떤 내용인지 음미해 보아야 한다. 이 서적을 이 공간에 진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그럴 필요가 있다면 어디에 배치해야 할 것인지. 기계적으로 움직여 온, 기존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작업 태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시간과 공력이 엄청나게 소비되는, 아니 그 이상으로 견식과 교양도 요구되는 공정의 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자본론'이다. '서적 자체가 아니라 서적 안에 표현되어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서점을 만든다.'라는 서점의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지적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안 능력이 회사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척도가 된다.

    


p.75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의 경우에는, 그런 지적자본 역할을 하는 접객 담당자(Concierge)가 존재한다. 각 장르에 정통한 직원이 상품 매입부터 매장 구성까지 결정하고 방문한 고객을 대상으로 나름대로의 제안을 직접 실행에 옮긴다. (중략)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딱히 확립된 절대적인 방법론은 없다. '만남'은 로맨틱한 말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그런 우연이나 행운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고도의 접객 담당자들)은 보수나 대우라는 외적 조건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외적 조건은 당연히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전제 위에 그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 라고 느낄 수 있는, 구심력을 갖춘 이념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열쇠다. 

    내가 사장이고 그들이 사원이라고 해서, 나는 자본가이고 그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그런 도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확실한 '지적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들과 나는 직렬 관계가 아니라 병렬로 놓인 관계다. 그런 인식 없이 우수한 전문가와 협업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 지적자본 시대란 병렬형 조직의 시대다. 그리고 병렬로 늘어선 (나를 포함한) 하나하나의 장치를 연결해 주는 것이 구심력을 갖춘 이념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클라우드 도식이 성립한다. 



p.105

    그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현실 세계가 인터넷에 우위에 설 수 있는 여지를 아직 확실히 지니고 있다는 여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즉시성이다. 현재 주문한 사프을 당일 배송하는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의 경우, 클릭한 상품을 그 자리에서 바로 입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기 시간이 발생한다. 가전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는 사람은 다수 있지만, 지금 당장 조리하고 싶은 신선한 식품을 그때마다 주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즉시 입수하지 못할 경우 가치가 줄어드는 상품은 인터넷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p.112

    애당초 TSUTAYA는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포함하여 서적이나 영화, 음악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해 왔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반대로 물건이라는 '하드웨어'를 통해서도 제안을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계기도 있었다. 바로 iPhone이다.

    세계를 송두리째 바꾼 이 엄청난 도구를 만들어 냈을 때 스티브 잡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좀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자.”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야말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 것이다. 그 제안을 구현하는 존재로서 iPhone이 탄생했다. 잡스는 iPhone이라는 물건을 판매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iPhone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건 자체는 본질적으로 국지적(local)이고 선택적(selective)이다. 그래서 마케팅이 존재한다. 타깃을 정하고 매력을 어필하는 수법을 통해 판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것' 이 단순한 물건을 초월해 그 안에 일종의 철학, 바꾸어 말하면 라이프 스타일의 제안이라는 의미가 들어간다면 그 물건은 국경, 인종, 세대, 성별을 초월할 수 있는 날개를 얻을 수 있다. 



p.115

    그래서 CCC는 매장을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해 주는 형식으로 재편했다. 영화를 즐긴다.', '집에서 생활의 여유를 맛본다.', '소통을 창출한다.' ...... 이렇게 주제별로 구분된 구역 안에서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실행하고 그 제안을 가능하게 하는 가전제품을 상품 분류 기준을 초월해 진열한다. 즉,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필요한 상품만 진열하는 것이다. 애플스토어를 보아도 그곳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iPhone과 iPad와 Mac이다. 기껏해야 세 종류 정도에 불과한데도 늘 혼잡하다. 애플이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고객이 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라이프 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것과 이것과 이것입니다.”라고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p.124

    마스다 무네아키가 생각하기에 회사는 그 자체로 미디어다. 가령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CCC 사원의 이야기와 다른 회사 명함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고객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브랜드가 정보의 전달 방식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결국, 회사 그 자체가 미디어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사의 형태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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