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p.12
유니스 : (마침내) 무슨 일이죠? 길을 잃었나요?
블랑스 : (약간 신경질적으로)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서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유니스 : 여기가 거기예요.
블랑시 : 극락이라고요?
유니스 :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블랑시 : 그 사람들이, 내가 찾는 주소를 잘못 안 게 분명해요…….
유니스 : 찾는 주소가 어딘데요?
p.37
스탠리 : 여자 외모를 두고 칭찬하는 거 말예요. 내가 만난 여자 중 말 안 해 줘도 자기가 잘났는지 못났는지 모르는 여자는 없었어요. 생긴 것보다 잘난 줄 아는 여자도 몇 있었지요. 전에 사귀었던 여자가 "나 섹시하죠, 나 섹시하죠!" 그러기에 말해 줬죠.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블랑시 : 그 여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스탠리 : 아무 말도 안합디다.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더군요.
블랑시 : 그렇게 연애는 끝났나요?
스탠리 : 대화가 끝난 거죠. 그게 다예요. 어떤 남자들은 할리우드 육체파에 끌리지만 안 그런 남자도 있죠.
블랑시 : 당신은 후자에 속하겠군요.
스탠리 : 맞아요.
블랑시 : 어떤 요부도 당신을 매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네요.
스탠리 : 그, 그래요.
블랑시 : 당신에겐 단순하고 직선적이고 정직하면서, 야성적인 면이 약간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여자가 아마도……. (막연한 몸짓을 하면서 머뭇거린다.)
스탠리 : (천천히) 솔직하게……. 다 드러내 놓아야겠죠.
p.39
블랑시 : (분무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좋아요. 다 털어놓을게요. 그게 내 방식이에요. (스탠리를 향한다.) 난 거짓말을 많이 해요. 여자의 매력이란 결국, 절반은 신기루 같은 거 아닌가요. 하지만 사안이 중대할 때 나는 진실을 말해요. 그리고 이건 진실이에요. 살아오면서 내 동생이든 당신이든 그 누구도 속인 적이 없다는 거죠.
p.102
블랑시 : 소년이었어요, 그저 소년이었어요,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죠. 열여섯에 발견했어요 사랑을 말이죠……. 갑자기 너무 완벽하게요. 반쯤 그늘에 잠겨 있던 뭔가에 갑자기 눈부신 불을 켜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내 세계를 치고 들어왔어요. 하지만 운이 없었죠. 잘못 봤어요. 소년에게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어요, 남자답지 않게 불안해하고 여리고 다정다감하고. 비록 외모는 전혀 여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기 있었던 거죠……. 내게 도움을 구하러 온 거예요. 나는 몰랐죠. 둘이 도망쳤다 돌아와 결혼하기까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뭔가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원하는 걸 내가 해 주지 못 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차마 말은 못했지만 필요로 하던 도움을 주지 못했따는 것, 그것만 알 수 있었어요! 그는 모래 구덩이에 빠져서 저를 꽉 잡았던 거죠……. 하지만 나는 그를 구하지 못했고 그와 함께 빠져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걸 몰랐던 거죠. 돕지도 못하고, 나 자신도 구하지 못하면서, 그저 그를 못 견디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어요. 그러다 알게 된 거죠. 있을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말이에요. 비어 있다고 생각한 방에 갑자기 들어갔는데 빈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있었어요……. 내가 결혼한 소년과 몇 년간 그의 친구였던 나이 든 남자가…….
p.131
미치 : 내 말은 당신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뜻이오, 블랑시. 여기 불 좀 켭시다.
블랑시 : (겁에 질려서) 불이요? 무슨 불이요? 뭣 때문에요?
미치 : 종이를 씌워 놓은 이거 말이요. (미치가 전구에서 종이 갓을 뜯어낸다. 블랑시가 놀라서 숨을 헐떡인다.)
블랑시 :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죠?
미치 : 당신 얼굴을 확실하고 똑똑히 보려는 거요!
블랑시 : 물론 나를 모욕하려는 뜻은 아니겠죠!
미치 : 아니요, 그냥 사실 그대로를 보자는 거요.
블랑시 : 사실주의는 싫어요. 나는 마법을 원해요! (미치가 웃는다.) 그래요, 그래, 마법이요! 난 사람들에게 그걸 전해 주려고 했어요. 나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아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그게 죄라면 달게 벌을 받겠어요! 불 켜지 말아요!
p.134
미치 : 블랑시, 당신은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블랑시 :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미치 : 거짓말, 거짓말, 겉과 속이 모두 거짓말투성이예요.
블랑시 : 속으로는 절대 안 했어요, 마음속으로는 거짓말한 적 없어요…….
p.144
스탠리 : 백만장자는 없었다고! 그리고 미치는 장미를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어. 그 친구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고 있거든…….
블랑시 : 아!
스탠리 : 당신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 말곤 아무것도 없어!
블랑시 : 아!
스탠리 : 거짓말과 공상과 속임수뿐이야!
블랑시 : 아!
스탠리 : 자신을 좀 봐! 넝마주이한테서 50센트 주고 빌린 낡아빠진 축제 의상이나 걸치고 있는 꼴을 보라고! 그리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왕관을 쓰고! 어디 여왕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블랑시 : 아, 하느님…….
스탠리 : 난 처음부터 당신을 알아봤어! 단 한 번도 당신은 이 사나이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고! 당신은 여기 와서 집 안에다 분가루랑 향수를 뿌려 대고 전구에다 종이 등을 씌웠지. 자, 보시라, 집은 이집트로 변했고 당신은 나일 강의 여왕이 되셨다 이거지! 왕좌에 앉아서 내 술이나 마셔 대고! 이보셔, 하! 하! 내 말 들리쇼? 하 하 하! (스탠리는 침실로 들어간다.)
블랑시 : 이리로 들어오지 말아요!
p.164
블랑시 : (의사의 말에 바짝 붙어서)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p.170
(중략) 그의 연극은 사실주의에 기초하면서도 풍부한 상징과 시적 이미지가 넘친다. 언어에서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소품, 인물의 의상, 조명 등을 통해서 작가는 관객의 공감각에 호소하는 무대를 만들어 냈다. 그 세계는 냉정하고 경쟁적이고 낙오자를 짓밟는 곳이며, 예민한 인물들을 억압하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여러 방면을 모색한다. 그 도피는 종종 환상을 향한 것이기에 그의 극은 현실을 넘어선 세계에 대한 추구가 함께한다.
p.174
블랑시가 섬세함, 과거나 환상에의 도피를 나타낸다면 스탠리 코왈스키는 강인하고 육적이며, 현실적인 힘의 논리를 드러낸다. 스탠리의 의상은 원색이며 그의 친구들의 의상 또한 그렇다. 이들은 현실에 기초한다. 현실은 포커와 볼링 게임과 같이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스탠리의 삶의 원천은 여성과의 관계다. 인물 묘사에서부터 스탠리의 중심은 육체적 쾌락임이 강조된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 또한 성에서 온다. 아내 스텔라와의 관계도 이에 기초한다. 극의 마지막에서 정신이 혼란한 상태의 블랑시를 겁탈함으로써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것도, 경쟁에서의 승리와 성적 욕구를 삶의 축으로 삼는 스탠리를 생각할 때 이해할 만한 행동이다.
p.175
위 인물들의 애증과 갈등을 통해서 기본적인 주제는 다 드러났다. 현실과 과거의 대립, 환상과 현실의 대립, 남부 전원 사회와 도시에서의 삶 사이의 대조와 대립, 건강한 성과 왜곡된 성의 대립, 스텔라를 둘러싼 스탠리와 블랑시의 애정 대결 등이 이 극에서 찾을 수 있는 주제들이다.
p.176
블랑시가 사다가 전구에 씌운 '종이 등'도 상징성을 지닌다. 종이 등은 알전구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보이고 싶지 않은, 감추고 꾸미고 싶은 블랑시의 마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극의 종반부에 이르러 미치와 스탠리에 의해서 종이 등은 찢기고, 블랑시는 자신의 몸이 찢긴 듯 비명을 지른다. 냉혹한 현실주의자들 앞에서 블랑시의 호나상을 찢겨 나가고 타락한 여자라는 정체는 알전구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