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이 장에서 나는 대안 없음이라는 결론은 세계화를 추진하는 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에서, 역사를 이론에 맞추어 왜곡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임을 지적했다. 자유 무역은 대개 약소국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강요된 것이었으며, 선택권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의 대부분은 짧은 예외 기간을 제외하고는 자유 무역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세계화와 관련해서 불가항력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안타깝게도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이미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사용해 효과를 보았던 민족주의적인 정책들을 통해 경쟁국들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자 나라들의 클럽에 최근 합세한 나의 모국 한국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보호주의적인 나라였지만, 지금은 WTO에서 완전한 자유 무역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제조업에 대한 관세를 크게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더욱 어이없는 현실은 한국에서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이들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 어느 시기에 국가 개입주의와 보호 무역주의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겼던 장본인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도 해적판 미국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서 자유 시장 경제학을 배웠고, 여기시간에는 해적판 로큰롤 음악을 듣거나 해적판 할리우드 영화 비디오를 보았던 사람들일 것이다.
2장에서 논의한 바처럼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대개는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 발전의 취약에서 비롯된 낮은 소득 때문에 자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구사할 수 있는 자유를 크게 제약받는다. 따라서 '자유' 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발도상국들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경제 발전은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숙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한 나라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이런 기술 자급자족 전략은 곧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때문에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들의 사례에서는 하나같이 선진적인 외국의 기술을 습득하고 숙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들이 돋보인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기술을 수입하려면 개발도상국들은 (기술 특허나 기술 자문 용역 같은) 직접적인 방식으로든 (더 좋은 기계의 구입 같은) 간접적인 방식이든 해당 기술의 구매에 필요한 외화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외화는 (외국 원조 같은) 부자 나라들의 선물 형태로 제공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여야 한다. 따라서 무역이 없이는 기술 발전이 있을 수 없고, 기술 발전이 없으면 경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의 성공 비결은 새로운 유치산업이 발전하여 노련해지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보호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바꾸어가면서 보호와 개방 무역 정책을 적절하게 혼합한 데 있다.
이런 식의 자본 흐름은 변동성이 클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시점에 유입되거나 유출되는 경향이 있다. 특정 개발도상국의 경제 전망이 밝으면 지나치게 많은 외국 금융 자본이 몰려와 자산 가격은 일시적으로 실질 가격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자산 버블을 형성한다. 반면 상황이 악화되면 자산 버블이 터지고 외국 자본이 한꺼번에 철수하게 되면서 경기 침체가 악화된다. 이와 같은 '쏠림 현상'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장기적인 경제 전망이 밝았던 나라들에서마저도 외국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간 것이다.
따라서 개발도상국들이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강권에 못 이겨 자본 시장을 개방한 뒤로 금융 위기를 훨씬 자주 경험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국인 직접투자의) 파급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초국적기업이 필요한 모든 부품은 수입하고, 해당 지역 노동자들은 단순한 조립에만 참여시키는 '인클레이브 enclave' 시설을 세우는 경우이다. 이때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능을 익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파급 효과 역시 아예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한다 해도 극히 미미한 규모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투자 유치국 정부들이 파급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기술 이전, 국내 부품 조달, 또는 수출 등과 관련된 이행 요건을 부과하는 등의 방법을 채택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런 주장 ( '거리의 소멸 death of distance'으로 기업들은 더 이상 본국에 부속된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오늘날 네슬레 같은 기업은 본국(스위스)에서 전체 생산량의 5% 미만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국제화된 대규모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 미만을 생산하고, 일본 기업들은 10분의 1 미만을 해외에서 생산한다. (연구개발 등의) '핵심적인' 활동을 해외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선진국들에 배치되는 등 심한 '지역' 편향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초국적기업들이 반드시 외국인 직접투자를 규제하는 나라를 피해 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정통파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외국인 투자의 유입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규제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만일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국 같은 나라는 외국인 투자를 많이 받지 못해야 한다. 그러나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과 우수한 노동력, (도로, 항만 따위의) 우수한 사회간접자본을 제공하는 중국은 전 세계 외국인 직접투자의 약 10%를 확보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에 대해서도 똑같은 주장을 적용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첫째가 투자 유치국의 (시장의 크기와 성장 같은) 시장 잠재력이고, 다음으로는 노동력과 사회간접자본의 우수성 같은 사항들이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성장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다. 명백한 진실은 규제 체계가 아무리 개방적이라 해도 해당 국가의 경제가 매력적인 시장과 높은 품질의 (노동, 사회간접자본 등의) 생산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외국 기업들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경제 발전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것이다.
외국인 직접투자 정책은 장기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국내 생산자들을 고사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또한 외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선진적인 기수로가 경영 기법들이 최대한도로 국내 기업에 이전되어야 한다.
19세기에 시작된 공산주의 운동이 내걸었던 주요 목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적 소유를 자본주의의 분배 불평등을 빚어내는 궁극적인 원천이자 경제 비효율성의 원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사적 소유가 시장의 '낭비적인' 무정부 상태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경쟁자들의 투자 계획을 알지 못하는 많은 자본가들은 같은 물건의 생산에 지나치게 투자를 하곤 한다. 그래서 과잉 생산이 일어나 관련된 일부 기업들이 파산하면서, 기계들은 고철 더미가 되고 고용 가치가 있는 노동자들은 일손을 놓게 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러 자본가들의 결정이 중앙 집중화된 합리적인 계획을 통해 미리 조정될 수만 있다면 이런 과정에서 빚어지는 낭비는 사라진다. 공산주의 핵심 이론가인 카를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의 기업들은 시장이라는 무정부 상태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계획이라는 섬들이다.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사적 소유를 폐지하면 경제를 단일의 기업처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업의 국가 소유에 기초한 중앙 집중적 계획 경제가 올린 성과는 형편없었다. 통제되지 않는 경쟁이 사회적인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았지만, 완전한 중앙 집중적인 계획과 포괄적인 국유화를 통해 모든 경쟁을 억제하려던 시도는 경제의 역동성을 파괴하여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다. 게다가 공산주의 체제 하의 경쟁 부재와 과도한 하향식 규제는 순응주의, 관료적 형식주의, 그리고 부정부패를 낳았다.
그러나 기업의 국유화에 반대하는 이 세 가지 주장들 (주인-대리인의 문제, 무임승차 문제, 연성 예산 제약 문제)은 마찬가지로 대규모 민간 기업에도 적용된다. 주인-대리인 문제와 무임승차 문제는 많은 대규모 민간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아직도 대주주가 경영하는 (BMW나 푸조 같은) 대규모 기업이 있기는 하지만, 대규모 기업들의 대부분은 주식의 분산 소유로 인해 고용된 경영자에게 경영을 맡긴다. 이렇듯 어떤 민간 기업이 고용된 경영자에 으해 운영되고 수많은 주주들은 그 기업의 아주 작은 일부부만을 소유하고 있다면, 이 기업은 국영 기업과 똑같은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국영 기업에 고용된 경영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민간 기업에 고용된 경영자들 역시 최대한 공을 들일 동기가 없고(주인-대리인 문제), 주주들 개개인 역시 고용된 경영자들을 감독할 만한 동기가 없다.(무임승차 문제)
어느 외국 은행가는 제3세계 외채 위기가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 [월스트리트 저널] 지에 "우리 외국 은행가들은 돈을 벌 것 같을 때는 자유 시장을 지지하고, 돈을 잃을 것 같을 때는 국가를 믿는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싱가포르에서 국영 부분의 규모는 국민생산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면 한국의 두 배이고, 전체 국내 투자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면 한국의 거의 세 배 규모에 이른다. 그 다음 한국의 국영 부문의 규모는 국민소득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면 아르헨티나의 약 두 배, 필리핀의 다섯 배에 이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을 지나치게 비대해진 정부 때문에 실패한 사례로 간주하고, 한국과 싱가포르를 민간 주도 경제 발전의 성공 사례로 칭송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 이론적으로 볼 때도 공기업이 민간 기업보다 우월한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1. 그 중 한 가지 상황은 장기적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있지만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모험적인 사업에 민간 부문의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이다.2. 흔히 생각하듯이 공기업은 자본주의의 폐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발전의 시동을 걸기 위해 사용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3. 정부가 국영 기업을 설립하는 세 번째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서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식 시장의 변동을 고려하여 주식 시장의 조건이 좋을 때 민영화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영화의 시한을 한정해 놓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IMF는 대개 민영화 시한을 못 박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고, 상당수의 정부들 또한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민영화 시한을 정해 놓으면 정부는 시장 조건이 유리하든 불리하든 관계없이 민영화를 강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국영 기업이 부정한 방법을 통해 경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매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영 기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정부패 문제를 자주 들먹이곤 하는데, 얄궂게도 민영화 과정에도 역시 부정부패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가 국영 기업 내의 부정부패를 통제하거나 일소할 능력이 없다면 민영화를 한다 해서 갑자기 부정부패를 막을 능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방 정부의 경우에는 규제력 부재의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최근 들어 세계은행과 선진국 정부들은 정치적 지방 분권화를 추진하고 '서비스 공급자가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는 명목으로 국영 기업을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작은 단위로 세분하고 규제 기능을 지방 정부로 넘기라고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으로는 근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규제력 공백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세금 징수 능력 혹은 규제 능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에는 자연 독점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나 대규모 투자와 높은 위험도를 수반하는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 그리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국영 기업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어떤 국영 기업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성과가 부진한 경우 주식의 분산 판매에 기초한 민영화를 진행하는 방법으로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경제 발전을 위해 선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 수진국으로 지식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은 선진적인 외국 기술의 흡수이다.
유입되는 지식을 잘 흡수하는 나라일수록 선진 경제를 잘 따라잡는다. 뒤집어 생각하면, 핵심 기술의 유출을 잘 통제하는 선진국일수록 기술 주도력을 더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 짝퉁 제조나 북제품 제조는 현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지식의 관점에서 볼 때 후진적이었던 시절에 하나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특허권과 상표권, 저작권을 닥치는 대로 침해했다.
지적소유권 보호 기간 연장은 사회가 새로운 지식에 대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보호 기간 연장이 더 많은 지식을 낳는다면 이 비용은 정당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호 기간 연장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보상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지식이 증가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의 제도상 변화로 인해 지적소유권의 경우 관련 비용은 증폭되고, 수익은 감소하고 있다. 독창성의 기준을 낮추고 특허의 수명을 연장하면, 특허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은 예전보다 많아지는 반면 특허의 평균적인 품질은 예전보다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특허가 가능한 지식 자체가 세분화, 극소화됨에 따라 서로 맞물려 있는 특허 관계의 문제가 심화되며 기술 진보를 늦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사람들을 격려해야 할 필요성과, 지적소유권으로 인한 독점 때문에 빚어지는 손실이 새로운 지식이 가져오는 이익을 넘어서지 않도록 보장해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재 널리 퍼져 있는 지적소유권 보호의 강도를 약화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적소유권 보호 기간을 단축하고, 독창성 기준을 높이고, 강제 인가와 병행 수입의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경제 침체기 동안 회사는 수요가 감소하는 것을 목격하고, 노동자들은 실업과 임금 삭감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위기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별 회사와 노동자들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모든 경제 주체들이 지출을 줄인다면, 이들은 보다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경제 행위가 결합되면 총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모든 경제 추제에 대해 파산과 해고 가능성을 더욱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케인즈는 전체 경제를 운용하는 정부는 개별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행동 계획을 합산한 정책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의도적으로 다른 경제 주체들이 하는 행위와는 상반되는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 침체기에는 민 간 부문의 회사와 노동자가 지출을 줄이려는 경향에 대항하여 지출을 늘려야 하고, 경제 회복기에는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려 수요가 공급을 지나치게 초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대표적인 통화주의자였던 밀턴 프리드먼은 "물가 상승은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부과할 수 있는 유일한 세금"이라고 주장했다.
(1979~1987년) 로널드 레이건 시절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폴 볼커는 "물가 상승률은 잔인한, 아마도 가장 장인한 세금일 것이다. 왜냐하면 물가 상승률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예상찮은 방식으로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특히 고정된 수입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심하게 피해를 입힌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실제로 싸우는 사람이 없다면 경제적 성공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저절로 자라날 수 없다.
경제 일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 그리고 정부 관리 정책에 시장 기능을 확대 도입하면, 부정부패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무역 자유화로 인한 정부 세입의 감소는 공무원의 봉급을 압박하고, 하급 공무원의 사소한 부정부패를 키운다.
기본적인 연장이나 간단한 기계만 가지고 일할 때에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 반면 자동화된 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부자 나라 사람들은 시간 개념에 대한 이런 차이를 게으름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게으르게 지내는 주된 원인은 가난한 나라의 경우 실업 혹은 준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것은 문화가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게으른' 문화를 가진 가난한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 부자 나라로 이주한 뒤에는 현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다시 말해 문화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한다.
어떤 나라가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이다.
경제 발전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 수많은 행동 특성들은 경제 발전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경제 발전으로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은 각국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에 충실할 것을 지시한다. 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가난한 나라들에게 현재 하고 있는 생산성이 낮은 활동을 계속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런 생산성 낮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나라들이 가난한 원인이다. 만일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이 나라들은 시장에 대항하여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보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간 개념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권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 무역을 하게 되면 가난한 나라들은 당장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외국 생산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결국 가난한 나라의 회사들은 새로운 능력을 제대로 익혀 보기도 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방적인 외국인 투자 정책은 장기적으로 볼 때 보다 우월한 외국 회사들이 개발도상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에서 해당 국가의 회사들이 축적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제한한다. 자본 시장 개방은 자본을 경기에 따라 쏠려 다니게 만들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흔들어 놓고, 고금리 정책은 '미래의 가격'을 올려 장기적인 투자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경제 발전을 어렵게 만들고,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능력의 획득을 까다롭게 하는 것이다.
영국 의회에서 조지 1세에게, "공산품을 수출하고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것이야말로 공공복지를 도모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임에 틀림없다"고 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자유 무역 경제학자들이 농업에 집중하라고 권장하고, 탈공업화를 부르짖는 경제 예언가들이 서비스를 개발하라고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제조업은 번영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여기에는 훌륭한 이론적 근거가 있고, 이 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례도 풍부하다. 우리는 스위스, 싱가포르 등 제조업을 기반으로 여전히 번창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서 서비스 경제의 성공 사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스위스와 싱가포르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들의 성공 비결을 알아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자 나라들이 과거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적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 역사적인 시기는 경제적으로도 훌륭한 결과를 낳았다. 개발도상국 세계는 그 이전과 그 이후를 통틀어 경제적으로 가장 높은 성과를 올렸다. 그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