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박대호, 김연수 외 23명 [기자가 말하는 기자]
(임영주)
언론의 가장 큰 역할 중의 하나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을 대변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라면, 기자는 분명히 사회의 어려움과 힘든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 다른 직업을 갖게 된 또래 친구들보다 사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더 빨리 알게 된다. 한동안은 그것을 빨리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버겁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대호)
이처럼 기사의 방향과 내용을 일단 혼자 결정해야 하고, 다수의 영혼과 혼자 교류해야 하고, 유혹도 혼자 견뎌 내야 하고, 사회적인 의미도 찾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기자는 외로운 게 정상적이다. 취재에서도 여러 사람과 만나야 하지만 좋은 기사를 위해서는 혼자 탐구하고 혼자 결정하는 것, 이런 것들에 '기자 고독'의 묘미가 있다.
(존 메릴)
"기사란 게 뭔가? 독자들에게 팩트만 덜렁 던져주는 게 기사는 아니지 않은가? 그 팩트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짚어 주는 것이 진짜 제대로 된 기사가 아닌가?
(지정남)
한국기자들은 대체로 '뉴스를 전달하는 직업인'으로 기자를 규정하면서도, 한편 자신들이 독자를 계도, 계몽해야 할 책임도 아울러 가졌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반면 외신 기자들은 '뉴스를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 차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외신 기자가 철저하게 직업인이라면 한국 기자들은 일종의 특권 의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특권 의식을 갖고 있으면 기사에 의견이 들어가기 쉽다. 국내 언론의 보도와 외신 보도 사이의 차이는 대부분 이러한 직업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이종만)
기자를 열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지만, 대부분은 중앙 언론 매체에 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고, 현직 기사는 나 혼자였다. 강의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왜 기자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해 수강생들은 나름의 답을 찾고 있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며 약자를 대변하는 기자가 되겠다는 사명감도 있겠지만, 기자가 갖는 사회적 특권에 대한 동경이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수강ㅎ생 모두 부인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크고 영향력있는 매체일수록 기자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기사를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경력이 쌓일수록 신문이라는 상품을 만드는 거 대한 공장의 나사쯤으로 전략하기 쉽다."는 강사의 말에 좌절하면서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다짐하던 생각도 난다.
(최상훈)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불에 덴 사람이 불의 무서움을 잊어버리면 또다시 화상을 입기 쉽듯이 기억상실증은 결국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시킨다. 그리고 이 기억상실증에 분명 한몫을 한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한 저널리스트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상기해야 할 것이 비단 한국전쟁만을 아닐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 그 많은 상처와 흠집들을 낱낱이 기억해야만 더 이상 어리석음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고 마침내 비극의 역사는 끝날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할 때 광주의 비극 역시 끝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중략) 광주민중항쟁이 한 지역의 아픔이 아닌, 진실로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또다시 이런 어둠의 시대를 맞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박대호)
하나, 기자는 일반 기업의 종업원처럼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당하지 않고, 일하면서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책임진다. 둘, 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셋,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오래 전 정리한 이 세 가지는 기자를 하면 좋은 점에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자 생활을 꽤나 오래한 지금, 앞음 세 가지말고도 좋은 이유가 몇 개 생겼다.
우선, 이론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혹은 일)를 할 수 있다.
둘째, 정보 접근성에서 최고다.
셋째, 좋은 인맥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다.
넷째, 조직 관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다섯째, 기자 생활을 제대로 한다면 비교적 깨꿋하게 늙어 갈 수 있다.
여섯째, 기자는 자신의 이익은 챙기지 못해도 남을 도울 수는 있다.
일곱째,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따.
여덟째, 기자는 신문사 안에서도 자유인이다.
아홉째, 좋은 선후배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천세익)
직업의 관점에서 보면 '기자'는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 사람의 관심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세상 변화에 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기자 직업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공자 술이편
"나는 맨손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려 하는 사람과는 일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어떤 일에 임할 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일을 성공하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물을 직시하고, 행동은 소와 같이 신중하게 한다."
-지눌스님의 탑비
(함경욱)
뉴스는 발굴(탐사보도)하기도 하지만 창조(인터뷰)하기도 한다.
신문 기사 무섭다는 표현에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펜의 위력을 극명하게 나타낸 것이다. 펜 하면 기자, 기자하면 펜으로, 펜은 기자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때문에 펜이 꺾이면 자유도 보장 받을 수 없고 펜이 꺾이면 민주주의도 그늘로 숨어 버린다 하지 않았던가?
신문 기자에게 은근과 끈기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비판 능력이 요구된다면 방송 기자에게는 발랄하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언행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희용)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당당하되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다."는 말은 비단 기자에게만 국한된 경구가 아니지만 반드시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한다.
대쪽같으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서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