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철학과 이론은 몇 가지 큰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체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국가주의 국가론의 논리체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운 인물은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였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에서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를 거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까지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이론이다. 섯째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창안한 이 이론은 150여 년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을 끌어당겼지만 이젠 그 위력을 상실했다. 넷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과 이리스토텔레스가 펼쳤던 이론이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전협정 이후 긴 세월이 흘렀고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국민들이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이후 최대 사건으로 꼽는 것은 단연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 이전의 사건들은 크건 작건 모두 전쟁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이후 정치와 사회, 외교도 모두 이 전쟁의 테두리 안에 놓였다. 이것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학국(북한)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며 북한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그 결과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나 독재국가라는 말보다 병영국가(兵營國家, garrison state)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피바람을 마시면서 성장했다. 국가기구가 급속하게 팽창했고 반공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 체제에 편입됨으로써 가까스로 국가의 안정을 확보했다. 10만 남짓하던 군대는 전쟁을 거치면서 60만이 넘는 대군으로 성장했고 경찰의 규모도 단기간에 5만 명을 넘겼다.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지나친 규모였으며 이것이 전쟁 이후 정치의 틀을 결정했다. 1961년 군사쿠데타와 뒤이은 30년간의 군부독재는 분단과 전쟁이 아니고는 그 유래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나긴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적 분화를 거치면서 상비군과 관료제가 발전하고 국가제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에 불과했던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졌다. 우리의 국가는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의 도전을 파괴하면서 밖에서 주어진 다음 급팽창하는 형태로 구축되었다.
인간의 보편적 이성은 서로 다른 생각과 경쟁을 통해 자기를 실현한다. 역사는 서로 다른 사상과 아이디어들 사이의 살아남기 경쟁이 추동하는 이성의 자기 발현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사상도 완전하지 않으며 삶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한 시기에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사상은 조만간 새로운 사상의 도전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대의 교체는 언제나 사상과 이념의 교체를 동반한다. 정치철학과 국가이론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스미스가 쓴 표현으로는 이렇게 된다. 개인이 저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한다면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이 최대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애국심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한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진실로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고 싶다면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자의적인 간섭과 규제를 철폐하라는 이야기다.
이 이론은 당시 유럽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세속의 신'으로 여겼던 국가를 특별한 성질을 지닌 일개 경제주체의 지위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국가의 의무를 세 가지로 한정했다. (중략) 셋째, 국가는 사회 전체에 큰 이익을 주지만 거기서 나오는 이윤이 비용을 보상해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개인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없는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한다. (중략) "사회 전체에 큰 이익을 주지만 시장에서 공급자가 나타나지 않는 사업과 기구"는 무엇일까?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공공재(public goods)라고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공공재 공급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거기서 나오는 이윤이 그 비용을 보상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스미스가 국가에 부여한 세 가지 의무는 사실 하나로 합쳐도 된다. 국방과 치안은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와 정부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국가와 정부는 정말 다른가?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국가와 정부의 구별은 이론적인 문제일 뿐이다. 현실에서 국가의 행위는 모두 정부의 행위이며, 정부가 있어야 국가의 의지가 효력을 얻을 수 있다. 행동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정책을 결정할 권능을 얻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발간한 철학교과서들은 거의 예외 없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 서문을 토대로 만든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교조를 공식화했다. 사람들은 생산 활동에 참여할 때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에 편입된다. 이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실제적인 토대를 이루고 그 위에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조성되며, 또 거기에 여러 형태의 사회적 의식이 만들어진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과정 전반을 제약한다. 사람들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현존하는 여러 생산관계 또는 재산소유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관계가 생산력 발전에 족쇄가 될 때 사회혁명이 찾아든다. 경제적 기반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또는 급격히 전복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토대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임금노동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이다. 국가는 이 생산관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형성한 법률적, 정치적 상부구조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주기적인 산업공항과 노동대중의 궁핍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사회혁명,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계급의 존재와 적대적인 계급대립 그 자체를 철폐하는 마지막 사회혁명이 다가오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혁명의 주체는 자본주의 체제의 피억압 대중인 프롤레타리아트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르크스 자신의 계급적 호불호와 무관한, 역사 법칙에 따른 필연적 사회혁명이다.
포퍼의 해석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의 방법론이 아니라 순수한 역사이론이다. 경제와 권력정치의 발전과정, 특히 미래 혁명의 진행과정을 예측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마르큿는 어떻게 하면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 국가 권력을 탈취한 이후 어떻게 사회를 재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직후 레닌이 깨달은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는 실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그런 문제를 다룰 줄 아는 사회주의자는 찾기 힘들었다. 마르크스의 책에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사회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배분하는 사회로"라는, 아무 소용없는 슬로건 말고는 사회주의 경제에 관한 말이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집권 직후 실시했던 소위 신경제정책(NEP)과 5개년 계획은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과 아무 관계가 없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심각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정치 무용론과 정치적 냉소주의다.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변화'가 중요하다.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변화'가 중요하다. 정권교체, 법률개정, 국가재정구조와 조세제도 변경 등을 둘러싼 현실의 정치적 대립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계급착취의 현실을 수용하는 가운데 벌이는 '부르주아 정치세력들 사이의 권력다툼'에 불과하다. 대중이 부르주아 정치집단 사이의 권력투쟁에 휩쓸려 들어가고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혁명적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교육과 언론, 미디어를 모두 장악한 지배계급이 대중의 계급적 각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비난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과 강점은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을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마음껏 저지르지는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범위 안에서 합법적 수단으로만 통치하도록 하는 법치주의, 언론ㆍ출판ㆍ사상ㆍ표현ㆍ집회ㆍ시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은 법률로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한 헌법, 입법부와 사법부를 행정부와 분리하여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삼권분립, 감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가권력의 오ㆍ남용을 예방하고 시정하는 일을 주된 임무로 하는 독립적 국가기관 설치, 복수정당제와 같은 제도화된 권력분산과 상호견제 장치가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이 된 것은 모두 이런 목적을 이루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왜곡되어 있으면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타락할 위험이 커진다.
인간은 어떤 외적인 기준의 강요로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딘가에 귀속될 수 있다.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니다. 인간의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 민족이라고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한다. 이 도덕적 양심이 공동체를 위해서 바친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할 때 민족은 정당하게 존재할 권리가 있다.
-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국가권력의 토대가 군대와 경찰로 표현되는 물리적 폭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가 폭력만으로 인민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폭력행사 그 자체가 국가의 목적을 실현하는 필수적인 수단인 것 또한 아니다. 폭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국가의 지배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만약 인민이 국가의 폭력에 복종하느니 차라리 대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국가폭력은 독점적 지위를 잃어버린다. 뒤집어 말하면, 국가가 인민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폭력에 기댈 필요는 없다. 현대 국가는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가 아니다. 부르주아지가 오로지 국가폭력의 힘만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점진적 공학이란 어떤 것인가? 포퍼의 표현에 따르면 '민주적 간섭주의'다. 포퍼는 19세기 유럽 자본주의 체제를 '방만한 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이것이 정의롭지 못하며 비인간적이라는 점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극심한 궁핍과 제한 없는 장시간 노동, 폭행과 인권유린, 유아노동 같은 사회악이 창궐한 것은 '자유의 역설' 때문이다. 여기서 포퍼는 마르크스와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자멸한다."
무제한의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여 약자의 자유를 강탈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이 만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범위만큼 국가는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이 단순한 형식적 자유, 민주주의, 정부를 심판하고 갈아치울 인민의 권리, 이것이 정치권력의 남용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원리상 피지배자에 의한 지 배자의 통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힘은 경제적인 힘을 통제할 수 있다. 경제권력은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협하는 힘이다. 피지배자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정치적 지배자를 통제할 수 있고, 그 통제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경제권력도 통제할 수 있다.
개량과 혁명에 대한 포퍼의 견해를 요약해보자. 유토피아적 공학인 사회혁명은 사회 전체의 근본적 재구성을 추구하지만 경험과 지식의 제약 때문에 더 큰 악을 불러들일 위험이 있다.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최고의 추상적인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긴급하고 구체적인 악과 싸우는 점진적 공학이다. 점진적 공학긔 필수조건은 피통치자가 통제자를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정치제도이며, 독재가 이 가능성을 차단할 때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폭력혁명도 정당하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통해서 어떤 선을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을지는 선험적으로 예단할 수 없다. 그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포퍼에게 물어보자. 기원전 73년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해 로마제국의 군대에 맞섰던 스파르타쿠스에게 노예제도라는 '최악의 긴급한 악'을 제거할 수 있는 그 어떤 '점진적 공학'이 있었을까? 1894년 조선왕조를 붕괴 위기에 몰아넣었던 갑오농민전쟁의 지도자 전봉준에게는 엄격한 신분제도에 기초를 둔 봉건제도를 타파할 그 어떤 '점진적 공학'이 있었을까?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했던 파리 시민들에게 부르봉 왕가의 전제정치를 무너뜨릴 그 어떤 '점진적 공학'이 있었을까? 1905년 황제에게 고통을 하소연하려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광장에 모였다가 총탄 세례를 받았던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차르의 압제를 이겨낼 그 어떤 '점진적 공학'이 있었을까? 모두가 불가능한 이야기다. '점진적 공학'은 사회혁명의 불벼락이 국가권력을 덮치기 전에 이미 권력 내부에 들어와 있었던 사람들의 몫일뿐이다. '최악의 긴급한 악'으로 인해 숨이 넘어가기 직전 상황에 몰려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오로지 사회혁명의 길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민중이 뚜렷하게 자각한 요구를 지니고 있을 때, 사회의 지배층이 '점진적 공학'에 입각한 사회적 개량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 기존의 국가권력이 동원하는 폭력적 수단과 혁명 운동이 동반하는 폭력적 수단의 충돌이 크고 격렬해질수록, 그 혁명은 정치혁명을 넘어 사회혁명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주의 정치혁명과 급진적 사회혁명 중 하나를 좋아할 자유는 허용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누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사상의 생명은 서로 다른 지식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다양한 개인들의 상호작용이다. 이성은 그와 같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성장한다.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어떤 견해가 이성의 성장을 도울 것인지 여부를 우리는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지금 가진 어떤 견해를 절대적을 옳다고 생각해 모두에게 강요하면 이성은 성장할 수 없다. 집단주의 사상은 이성을 숭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출발했지만 이성이 성장하는 과정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이성을 파괴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소련과 중동부 유럽, 중국, 루마니아, 북한의 사례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이에크의 견해를 반박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가진 지식을 토대로 사회의 최종 목표를 설계하고, 설계에 들어 있지 않거나 충돌하는 다른 견해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이성의 성장과 정신적 발전이 멈추게 된다.
베블런의 이론에 따르면 생활환경의 변화에 강하게 노출되는 사람이 먼저 새로운 사유습성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생활환경의 변화가 몰고 온 충격이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전달되지는 않는다. 어떤 환경의 변화를 긴급한 상황으로 인식한 사람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신속하게 받아들인다.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의 여집합이다.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지배적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보수주의가 기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이다.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며 상당한 정신적 노력을 요구한다. 변화된 환경이 무엇인지, 나의 정신적 태도가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르 ㄹ생각하고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데 대한 본능적 저항감을 극복하려면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한다. 지배적 생활양식에 순종하면서 일상적 생존투쟁을 견뎌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홉스의 국가는 좁은 의미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생존의 방편이었다.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봉하는 '이념형 보수'에게는 여전히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로크와 밀, 스미스, 루소의 국가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유주의 국가론을 따르면 '시장형 보수'에게는 자유와 이를 통해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다는 물질적 부의 증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주의와 시장형 보수가 손을 잡으면, 우리가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직접 경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국가들이 시도했으며, 최근 세계 최고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중국에서 그 나름 성공적으로 안착한 '개발독재'가 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려고 할 경우 "생산력의 엄청난 황폐화, 무의미한 실험들, 목적 없는 폭력행위 등과 같은 것만을 빚어낼 것이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배는 사실상 혁명가 클럽의 폭력적 독재에 의해서 지탱되는 혁명적 중앙권력의 독재형태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베른슈타인의 예측은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국가의 현실이 되었다. 혁명가 클럽 내부의 권력다툼이 혁명에 대한 철학과 이론의 차이로 표출되면서 어제의 혁명동지를 무더기로 학살하는 '대숙청'의 명분이 되었다. 권력을 장악해 비밀정보조직을 강화한 스탈린은 국가 그 자체를 '혁명가 클럽의 폭력적 독재' 아래 종속시켰다. 그리고 볼셰비키 혁명 이후 반세기가 겨우 지난 1990년 무렵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는 모두 무너져버렸다.
정치인 베른슈타인이 마르크스와 근본적으로 엇갈렸던 지점은 국가를 보는 관점이었다.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존재 그 자체가 악이었다. 민주주의 선거는 부르주아지들끼리 벌이는 계급 내부의 권력투쟁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는 국가의 성격을 바꾸지 못하며 사회혁명을 일으키지도 막지도 못한다. 국가는 오로지 소멸됨으로써만 인간의 자유와 해방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른슈타인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에게 국가는 선한 일을 할 수도 있는 도구였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달리 베른슈타인은 자유를 부르주아지의 전유물로 보지 않았고 자유주의를 경멸하지도 않았다.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는 자유주의를 내포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차이였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론가로 남았지만, 베른슈타인은 정치가로 살았다.
베른슈타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법률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오늘의 다수는 언제든 내일의 소수로 전락할 수 있으며, 따라서 소수를 억압하는 모든 법률은 일시적으로 다수가 된 사람들에게도 결국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어 오래 지속된 나라일수록 소수의 권리를 더 많이 배려하며 당파적 투쟁이 수반하는 증오감이 옅어진다.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주의 국민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그가 사회주의 운동에서 얻은 교훈이며 확신이었다. 이런 확신에 의거해서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 운동가들에게 지성과 사상적 포용력을 요청했다. "노동운동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용감하고 조직적이며 총괄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밀알에서 겨를 가려낼 수 있을 만큼 높은 식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자기 묘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란 식물도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생각이 넓어야 하며, 사회주의 사상의 영역에서 왕이기보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공화주의자여야 할 것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잘못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2007년과 2008년 권력교체기를 거치면서 대선과 총선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주의 세력이 함께 몰락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만약 자유주의 정부의 '이념적 우경화'가 문제였다면 진보세력이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국민은 '올바른 이념'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해줄 가능성이 있는 '능력 있는 정부'를 원했다.
진보의 힘이 '순수'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 진보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힘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이다. 사회의 진보는 인간 이성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다.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성이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정치조직에서도 이성의 힘이 자라기는 어렵다. 다양성을 내포하지 않고서는 정당도 정치도 국가도 인간도 성장하지 못한다. 이념과 정치문화의 '섞임'을 통해 진보의 힘을 키우는 것이 연합정치이다. 연합정치가 지지를 받는 것은 국민들이 그 속에서 정치인의 책임의식을 보기 때문이다. 신념윤리에 투철한 정치인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책임윤리에 투철한 정치인은 믿음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