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우리와 함께 런던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버나드가 물었다. 이것은 이 젊은 야만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이 작은 집에서 깨닫고 난 다음 은밀히 다져온 전략에 따른 싸움의 개시였다.
"가고 싶은가?"
존의 얼굴에 환한 빛이 감돌았다.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허가만 얻을 수 있다면 가능하지."
"린다도 함께?"
"글쎄……." 버나드는 다시 주저했다. 그 구역질나는 여자를! 그건 불가능했다. 만일, 만일…… 그때 갑자기 그녀의 추한 몰골 자체가 굉장한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이 갈 수 있지!" 버나드는 외쳤다. 이렇게 요란하게 친절한 말투는 애당초 자신의 머뭇거리던 태도를 보상하고도 남았다.
존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실현된다고 생각하니…… 이건 내가 평생 동안 꿈에 그리던 것입니다. 미란다(<템페스트>의 여주인공)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미란다가 누구지?"
그러나 존은 버나드의 질문을 분명히 듣지 않은 것 같았다.
"오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존이 말했다.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났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훌륭한 피조물이 여기에 있는가!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피조물인가!" 그의 홍조는 갑자기 더욱 깊어졌다. 그는 레니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한 초록색 인조견 옷을 입고 피부는 젊음과 영양크림으로 윤기 있고, 포동포동하고 자애롭게 미소짓는 천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음성이 더듬거리고 있었다.
"오오, 멋진 신세계(<템페스트> 5막 1장 중에서)여!"
그는 시작하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의 볼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당신은 그 여자와 결혼한 사이입니까?" 존이 물었다.
"내가 뭘했다고?"
"결혼 말입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인디언 말로 '영원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결코 깨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맙소사! 천만에!" 버나드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존 역시 웃었다. 그러나 이유는 달랐다. 순수한 기쁨에서 웃었던 것이다.
"오오 멋진 신세계여! 그러한 인간들을 담고 있는 멋진 신세계여! 즉시 떠납시다!" 하고 존이 거듭 말했다.
"자네는 때로 매우 이상한 표현법을 사용하는군" 버나드는 혼란과 놀라움에 사로잡힌 그 젊은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여하튼 신세계를 신제로 눈으로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 사람은 자기가 맡은 일은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헨리는 위선적인 관용을 가장하며 한마디 던졌다.
(소장)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더 엄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 거야. 그의 지적 탁월성은 그것에 합당한 도덕적 책임을 수반해야 되는 거야. 사람의 재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곁길로 이탈할 가능성도 커지는 법이다. 많은 사람이 타락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희생하는 것이 더 나은 법이야. 포스터 군, 이 일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어떤 행위도 이단적인 행위보다 더 가증스럽지는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걸세. 살인행위는 다만 개인을 말살시킬 뿐이야-하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이란 무엇이지?"
그는 의기양양한 몸짓으로 현미경, 실험관, 부화기의 대열을 가리켰다.
"우리는 식은 죽 먹듯 새로운 개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일세. 우리가 원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이단적 행위는 단순한 개인의 생명 이상의 것을 위협하거든. 다시 말해서 그것은 사회 자체에 타격을 주는 것이지. 바로 사회 자체에게" 하고 그는 반복했다.
<생물학의 신이론>이라는 것이 무스타파 몬드가 방금 다 읽은 논문의 표제였다. 그는 잠시 명상하듯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있다가 이윽고 펜을 들고 속표지를 펼치고 썼다.
'목적개념에 대한 필자의 수학적 검토는 참신하고 극히 독창적이지만 이단적이다. 현재의 사회질서에 관한 한 그것은 위험하고 해로운 요소가 잠재되어 있음. 출판불허.' 그는 출판불허라는 말에다 밑줄을 그었다.
'이 필자를 감시하기 바람. 세인트 헬레나 섬의 해양생물학 연구소로 전보발령을 내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명을 하면서 가엾게 되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걸작이다. 하지만 일단 목적론적 해석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그것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확고한 사상을 지니지 못한 자들이 받은 조건반사 교육을 백지로 돌릴 가능성이 있는 사상이다. 자고의 선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상실케 하고 그 대신 인간의 최종목적이 어느 피안에 있다고 믿게 할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최종목적이란 현재의 인간 영역 밖에 있으며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의 유지가 아니라 의식의 강화와 세련이며 지식의 확대라는 믿음을 심어줄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사실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총통은 생가갷ㅆ다. 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다. 그는 다시 펜을 들어 출판불허라는 단어 밑에다 두번째 글을 그었다. 먼저 그었던 줄보다 더 두껍고 더 진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지었다. '행복에 대한 사색을 허가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작품(오셀로)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걸세." 총통이 말했다.
"그 까닭은 그것이 정말 <오셀로>와 비슷하면 그것이 아무리 새로운 것일지라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설사 그것이 새로운 것이라 해도 절대 <오셀로>와 비슷하지 않을 테니까."
"왜 그렇죠?"
"왜 비슷한 작품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자유라!" 총통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델타 계급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하다니!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자네답군!"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고 야만인이 말했다. "부화병에서 무엇이나 만들 수 있으면서도 도대체 왜 그런 것들을 제조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제조를 수행할 때 왜 모든 인간을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으로 제조하지 않는 것입니까?"
무스타파 몬드가 웃었다.
"우리의 목이 잘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야" 하고 그가 대답했다.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신봉하네. 알파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세. 알파 노동자로 채워진 공장을 상상해보게 - 다시 말해서 좋은 유전인자를 지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책임을 떠맡는 일이(제한은 있겠지만) 가능하게끔 조건반사적으로 단련된 개별적이고 상호연관이 없는 인간들로 채워진 경우를 상상하란 말일세. 그것을 상상해보란 말일세!" 하고 그는 반복했다.
야만인은 상상하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부조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알파의 병에서 태어나 알파로서 조건반사 훈련을 받은 인간이 엡실론 세미 모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때 미쳐버릴 거야 - 미치든가 아니면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할 거야. 알파도 완전히 사회화되는 것은 가능하겠지 -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알파에게 맞는 임무를 맡길 때에 한해서 가능한 일이야. 엡슬론적 희생은 단지 엡실론에게만 기대할 수 있는 거야. 그들에겐 그것이 희생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런 희생은 최소저항선이야. 엡실론의 조건반사 훈련이 자신이 달릴 궤도를 미리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어쩔 수 없지. 애당초부터 예정된 것이니까. 설령 ㅂㅇ에서 나온 후라 하더라도 엡실론은 여전히 병 속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 유아기와 태아기의 성격적 고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병 속에 들어 있는 거야. 하긴 우리 모두가……." 총통은 명상적으로 말을 계속했다.
"병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 하지만 우리가 우연히 알파로 태어나면 우리의 병은 비교적 큼직한 공간을 제공하지. 보다 좁은 공간에 머물게 되면 우리는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상류계급의 샴페인 대용액을 하층계급의 병 속에 부어넣을 수는 없는 거야. 그것은 이론적으로 명백해. 하지만 실제로도 증명된 사실이야. 사이프러스 섬에서 시행한 실험결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어.
"그게 무슨 실험이었습니까?" 야만인이 물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재투입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실험이지. 그것은 포드 기원 473년에 시작된 것이야. 총통들은 사이프러스 섬의 주민을 모두 추방하고 나서 특별히 이만 이천의 알파 집단을 선정하여 그곳에 거주하도록 했었지. 그들에게 농공업의 모든 설비와 연장을 부여하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도록 자유를 주었었단 말일세. 그 결과는 모든 이론적 예언과 정확히 들어맞았어. 토지는 제대로 경작되지 않았고 모든 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단 말일세. 그 결과는 모든 이론적 예언과 정확히 들어맞았어. 토지는 제대로 경작되지 않았고 모든 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단 말일세. 법률은 무시되고, 명령을 해도 그것에 복종하려 들지 않았지. 이윽고 낮은 계급의 일을 맡은 자들은 모두 높은 계급의 일을 맡기 위해 부단히 음모를 꾸몄고 높은 계급의 일이 맡겨진 자들은 모두 온갖 수단을 다해서 현상 유지를 위해 음모로 반격했었단 말일세. 육 년도 지나기 전에 그들은 치열한 내란을 일으켰던 거야. 이만 이천 명 중에서 일만 구천 명이 살해되었을 때 생존자들은 세계총통들에게 섬의 통치를 다시 맡아 달라고 탄원했던 거야. 그래서 그래서 해주었지.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알파만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사회는 종말을 고한 것이야."
야만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최적의 인구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빙산과 같은 형태를 띠도록 구성되는 것이야 - 구분의 팔은 물 밑에 있고 구분의 일은 물 위에 있어야 되는 거야."
"물 밑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까요?"
"물 위에 있는 것보다 더 행복을 느끼는 법이야. 예컨대 여기 있는 자네 친구보다 더 행복하지." 그가 지적했다.
무스타파 몬드는 과장된 제스처를 지어 보였다. (중략)
"우리는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거든. 모든 변화는 안정을 위협해. 우리가 새로운 발명을 선뜻 적용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순수과학에서의 모든 발견은 유해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거든. 과학도 때로는 적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다루어야 돼. 그렇지. 과학조차도 그렇지." (중략)
"그렇지." 무스타파 몬드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것도 안정을 위해 희생시켜야 할 품목이야. 행복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예술뿐만이 아니야. 과학도 마찬가지야. 과학은 위험한 것이야. 우리는 그것을 용이주도하게 묶어 놓고 재갈을 물려 놓아야 해."
그는 잠시 말을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했다.
"일찍이 포드 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과학의 진보에 대해 기술한 글을 읽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 그때 사람들은 여타의 모든 것에 관계없이 과학이 무한히 발달되도록 허용해도 된다고 상상했던 모양이야. 지식은 지고의 선이었고 진리는 최고의 가치였지. 그 밖의 것은 모두 이차적이고 부수적인 것이었어. 물론 당시에도 사상은 변하고 있었어. 포드 님 자신도 진리와 미로부터 쾌적과 행복으로 중요성을 이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던 것이야. 대량생산이라는 것이 그러한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지. 보편적 행복이 바퀴를 계속 회전시키는 것이니까. 진리와 미는 그럴 힘이 없어. 물론 대중이 정군을 잡을 때마다 중요시되는 것은 지리와 미보다는 행복이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제한의 과학연구가 여전히 허용되고 있었지. 사람들은 여전히 진리와 미가 지고의 선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9년전쟁까지도 그랬단 말일세. 그 전쟁이 인간의 성향과 추세를 바꺼 놓고 말았던 것이지. 비탈저폭탄이 바로 주변에서 윙윙거리며 투하되는 마당에 진리나 미나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과학이 처음으로 통제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였어 - 즉 9년전쟁 직후였지. 그때는 인간의 식욕을 통제한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때였어. 조용한 생활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용납되었던 거야. 그 이후부터 우리는 계속 과학을 통제하고 있는 형편이지. 물론 진리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지. 그러나 행복에게는 매우 유리한 것이었어. 인간에겐 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걸세. 행복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야. 왓슨 군, 자네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야. 자네는 미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불해야 하는 걸세. 나도 과거에는 진리에 너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네. 그래서 나도 그 대가를 지불했던 걸세."
"인간은 늙는다. 따라서 노년에 수반하는 쇠약, 무기력, 불쾌감 같은 어쩔 수 없는 느낌을 자신 속에서 체험하게 된다. 이런 느낌을 느낄 때 인간은 단순히 질병에 걸렸다고 상상하며 이런 고통스러운 상태는 무슨 특별한 원인이 기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공포심을 달래면서 이러한 상태도 질병으로부터 회복되듯 곧 탈피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것은 바보 같은 상상이다! 그 질병은 노령인 것이다. 노령이란 무서운 병이다. 인간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종교를 찾게 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죽은 뒤에 일어날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내 자신의 경험이 안겨 준 확신에 의하면, 그러한 공포나 상상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종교적 감정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저절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는 실체인 것이다. 격정이 진정되고 공상과 감수성이 이전보다 흥분되지 않고 또 자극적인 경향을 잃어감에 따라. 우리의 이성은 그 활동에 있어 참착하게 되고, 전에는 심취되고 말았던 상상이나 욕망이나 기분전환 등에 의해 흐려지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됨에 따라 종교감정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신이 마치 구름 뒷편으로부터 나오듯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모든 빛의 원천을 느끼고 보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모든 빛의 원천을 느끼고 보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이다. 왜냐하면 감각의 세계에다 그 생명과 매력을 주었던 것이 우리로부터 새어나가기 시작하고 현상세계가 이제 내부로부터 그리고 외부로부터 인상에 의해 지탱될 수 없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우리는 영속성이 있는 무엇,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무엇 - 다시 말해서 실체, 절대적이면서 항구적인 진리 같은 어떤 것에 의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신에게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종교적 감정은 성질상 그것을 경험하는 영혼에게는 순수한 것이고 매우 행복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여타의 손실을 우리에게 보상해주는 것이다."
무스타파 몬드는 책을 덮고 의자에 기댔다.
"하늘과 땅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 중에서 이들 철학자들이 꿈도 꾸지 못한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이것이야." 그가 손을 내저었다.
"바로 우리들, 즉 현대 세계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시절에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의 독립은 최후까지 인간을 안전하게 인도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을 대까지 청춘과 번영을 잃지 않게 되었단 말일세. 그 결과가 무엇이냐고? 분명 우리는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될 걸세. '종교적 감정이 모든 손실을 보상해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네만 우리에겐 보상할 손실이란 것이 없는 형편인걸. 종교적 감정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어. 젊음의 욕망이 쇠퇴하지 않는 마당에 왜 구태여 그것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는가? 최후까지 옛날의 모든 바보스러운 유희를 즐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분 전환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나? 우리의 심신이 계속적으로 활동의 기쁨을 누리는 마당에 왜 휴식할 필요가 있겠나? 소마가 있는데 위안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사회의 질서가 있는데 불변부동의 그 무엇이 왜 필요하겠는가?"
"순결은 정열을 의미하며 신경쇠약을 의미하는 거야. 그런데 정열과 신경쇠약은 불안정을 의미해. 그런데 불안정은 문명의 종말을 의미하지. 타락한 쾌락이 풍부하지 않고는 영속적인 문명은 기대할 수 없네."
"하지만 신은 모든 고귀하고 아름답고 비장한 것의 근거가 아닙니까? 만일 신이 있다면……."
"젊은 친구"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문명은 고귀함이나 비장함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세. 그러한 것은 정치적 비능률을 나타내는 징후일 뿐이야. 우리처럼 적절히 조직된 사회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고귀하고 영웅적이 될 기회란 있을 수 없는 걸세. 그러한 계기가 발생하기 전에 여건이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가 되겠지. 전쟁이 일어나거나 어느 쪽에 충성을 맹세할지 모르는 경우이거나 저항해야 할 유혹이 있거나 쟁취하거나 방어할 사랑의 대상이 있는 경우 -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틀림없이 고귀함과 비장함도 어떤 의미를 가질 거야. 그렇지만 오늘날엔 전쟁이 없단 말일세.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최대의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일세. 어느 쪽에 충성을 맹세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고 있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조건반사 훈련이 되어 있단 말일세. 또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대체로 매우 유쾌한 것이며 여러 가지 자연적인 충동은 모두 자유롭게 만족되기 때문에 저항할 유혹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만일 불행한 우연으로 인해 불쾌한 사태가 일어나면 까짓것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도피시켜 줄 소마가 항상 준비되어 있네. 분노를 진정시키고 적과 화해시키고, 인내하고 수난을 참도록 하는 소마가 있다 이 말이야. 옛날에는 대단히 어려운 노력을 거치고 오랜 수양을 쌓아야 겨우 도달되는 미덕이었지. 그러나 이제 반 그램짜리 두 세알만 삼키면 그러한 수양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일세. 이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네. 그러니까 덕성의 반은 적어도 병 속에 지참하고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야.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기독교 정신을 터득하는 것 - 그것이 소마의 본질일세."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친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추슬렀다.
"마음대로 하게" 하고 그가 말했다.
이 대담으로 상징되는 것은, 물질문화, 기계문명의 발달과 인간적 가치라는 것을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거냐 저거냐' 하는 것이 어서 혹시 인간적 가치를 우리가 보존하려 하면 반드시 원시사회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한 현대 문명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진술한 바와 같이 낙천적 진보주의에게 보내는 경고에 그치는 한에서는 타당한 태도이다. 그러한 원시사회 역시 그 자체의 추악과 우둔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헉슬리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양자의 어느 쪽을 선택해도 인류는 행복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논리적으로 파고들 때 헉슬리의 문명관은 비건설적이며 부정적인 염세주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의의는 그러한 논리적 귀결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과학의 진보, 과학기술의 진보, 기계문명의 발달이 전체주의 사상과 밀착된 유대를 가질 때 어떠한 인간적 비극과 노예화가 초래될 것인가, 또한 현대문명에는 자유냐 안정이냐 하는 이율배반적 모순이 내재하고 있어 기계문명의 발달이 이 모순의 해결책으로서 전체주의 체제를 촉진시킬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풍자적ㆍ희화적으로 과장하여 제시한 점에 있다. 재치있는 회화를 통해 현대문명의 심각한 위험성을 과장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문명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