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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Feb 17. 2018

여덟 단어

#60 박웅현 [여덟 단어]


우리는 나의 '자존'을 찾는 것보다는 바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메멘토 모리와 아모르 파티. '죽음을 기억하라'와 '운명을 사랑하라'는 죽음과 삶이라는 상반된 의미의 조합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니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 네가 처한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이죠.


어느 대학교수는 이런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차이를 이질문화와 동질문화라는 말로 해석한다. 미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너와 나는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객관적인 정보를 준다. 반면, 우리는 '너와 내가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내가 "저어-기"라고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도 "응. 저기를 이야기하는구나!"라고 알아들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틀 속에 산다는 것은 틀 밖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닐까?


결국 그(서도호씨)는 미국 교육은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면 한국 교육은 '네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이에요.


Ever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HERMES-


Idea First Media Follow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어요. 그냥 내 몫을 꾸준히 했죠. 언젠가 집사람이 묻더군요. 창피하지 않냐고, 어떻게 견디냐고요. 그때 제가 대답했어요. "잘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땀을 흘리려고 하는 거니까."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다 본질이냐? 고스톱이나 애니팡 같은 게임을 진짜 잘하는데 그럼 이게 내 본질일까?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복잡한 사물의 핵심이 무엇인지 보려는 노력, 어떤 것을 보고 달려가느냐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커다란 무기입니다. 기타를 만든다고 했던 클래식 기타 회사는 다 망했고, 음을 만든다고 했던 클래식 기타회사는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심부재언 시이불결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그 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유교 경전 중 <대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존 러스킨이라는 영국의 시인은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려라"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뭘 봤니?"라고 물었을 때 그저 "풀"이라고 대답하지 말고, 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고, 잎이 몇 개 있었는데 길이는 어느 정도였고, 햇살은 어떻게 받고 있었으며 앞과 뒤의 색깔은 어땠고, 줄기와 잎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등 자세하고 소상히 그림 그리듯 말하라는 것이었죠. 이것은 즉, 들여다보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게 인생이더라.


딸 아이의 반응에 앙드레 지드처럼 강하게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온 세상이 태어나는 것처럼 일출을 보고 온 세상이 무너지듯 일몰을 봐라!"라고. 하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했다가 괜히 핀잔만 더 들을 것 같아서 말을 바꿨습니다.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


호학심사,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선택을 하고 나면 답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니면 없습니다. 


개들은 잘 때 죽은 듯 잡니다. 눈을 뜨면 해가 떠 있는 사실에 놀라요. 밥을 먹을 때에는 '세상에나! 나에게 밥이 있다니!' 하고 먹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온 세상을 가진 듯 뛰어다녀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자요. 그리고 다시 눈을 뜨죠. '우와, 해가 떠 있어!' 다시 놀라는 겁니다. 그 원형의 시간 속에서 행복을 보는 겁니다. 순간에 집중하면서 사는 개. 개처럼 살자. 'Seize the Moment, Carpe diem(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의 박웅현 식 표현이자, 제 삶의 목표입니다.


다른 책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을 보면 어느 선사에게 누가 묻습니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밥 먹을 때 걱정하지 말고 밥만 먹고, 잠잘 때 계획 세우지 말고 잠만 자라는 거죠.


그러니 완벽한 선택이란 없습니다. 옳은 선택은 없는 겁니다. 선택을 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萬物 皆備於我矣 만물 개비어아의

反身而誠 樂莫大焉 반신이성 낙막대언

<맹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중략) 해석을 해보면 이런 의미입니다.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돌아보고 지금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한다면 그 즐거움이 더없이 클 것이다.'


인생에 있어 어떤 중요한 역이 아닌, 그저 간이역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호텔 방에 들어서면서 연이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연아, 우리 여기가 종착역이라고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너와의 이 일주일을 잘 보내기 위해 살아온 거야. 마치 내가 감옥에 있다가 이 일주일을 위해 휴가를 받아서 나온 거지. 너도 저 감옥에 있다가 휴가를 받아 나온 거고. 우리 여기 있는 동안 이 일주일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지내자."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행복은 삶이 끝나갈 때쯤에나 찾게 될 겁니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들의 합이 될 테니까요. 만약 삶은 순간의 합이라는 말에 동의하신다면, 찬란한 순간을 잡으세요.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드세요. 여러분의 현재를 믿으세요.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면 내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겁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바깥의 권위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기자가 비틀즈 멤버들 중 폴 매카트니에게 질문했어요. "당신에게는 엄청난 유산이 있다. 그 유산에 주눅들지 않느냐?"라고요. 이 물음에 폴 매카트니가 이렇게 답했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압니다. 나는 그래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매카트니라는 스타 입장에서도 그리고 '나'라는 입장에서도. 매카트니는 자기 이름을 딴 별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대중적인 스타와 나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어요. 사람들은 그걸 잘 못하는데, 나는 나를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스타로서의 업적에 대해서는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때로는 감격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서 "난 내 이름을 딴 행성도 있지"라고 하지는 않죠. 난 여전히 리버풀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빅이슈> 6월호, 폴 매카트니 인터뷰 중에서

그는 매카트니라는 스타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분리시켜 말했습니다. 매카트니라는 대중적인 스타는 자기 이름을 이렇게 분리시켜 말했습니다. 매카트니라는 대중적인 스타는 자기 이름을 딴 별도 가진 사림이지만, 일상의 폴 매카트니는 평범한 사람이죠. 사람들은 그걸 분리 못 하고 자기 자신의 신화를 믿기 시작해요.


여러분도 동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회는, 기득권 세력은 고분고분한 사람을 원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죠.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발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때문에 권위를 보이면서 복종하고 따라오라고 무언의 협박을 하죠. 우리는 그런 가짜 권위들을 검증하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올랜드 블룸이 주인공 '빌리안'입니다. 그는 원래 대장장이였지만 전쟁에서 훌륭한 전사로 싸웠어요. 전쟁이 끝나고 다시 자신의 삶을 향해 돌아가죠. 그런데 국왕이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길에 그를 찾아와 '예루살렘을 지켰던 빌리안'을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전사 빌리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그 말에 빌리안은 자신은 대장장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왕은 다시 말합니다. "나는 영국의 왕이다." 빌리안이 뭐라고 답했을까요? 상대가 왕이니 무릎을 꿇었을까요? 아니요. 그는 곧은 시선으로 왕을 보고 대답합니다.

"…전 대장장이입니다."


아이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종종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있어요. 저는 아이 시험 때면 밤에 아이 옆에 같이 있어줬습니다. 시험 기간에 새벽까지 공부하겠다고 방에 들어가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거든요. 아마 다들 알 겁니다. 모든 엄마 아빠가 시험 기간을 거쳤을 것이고, 그때 자신들도 책상 앞에서 쏟아지는 잠에 내려앉는 눈꺼풀을 어쩌지 못해서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시험을 망쳐봤잖아요? 그런데 마치 그런 건 모르는 사람들처럼 아이들이 알아서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가 책을 펼친 지 30분 만에 잠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 옆에서 책을 읽거나 수학문제를 같이 풀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준 것이죠. 내 경험에 빗대 아이의 입장을 생각했던 겁니다. 그걸 딸아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이야기해주니 고마운 일이고, 그런 일련의 경험들이 지금 우리 부녀 관계에 소통에 아주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엄마들은 아이가 1등이 되길 원하고 우등생이 되기를 원하는데 본인은 그랬나요? 엄마 본인은 그러지 못했으면서 왜 아이한테는 강요를 하는 걸까요?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사랑이 아니에요. 집착일 뿐이죠. 아이 입장이 돼서 봐줘야 해요.


"당신은 온유함의 미덕을 믿지 않습니까?

"온유함이 세계 평화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나에게 공을 가져오진 않습니다."

-NBA 대표팀과 유고슬라비아 친선경기 이후 바클리 인터뷰 중에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너무 안달복달하지 않는 태도가 정말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는 나와 먼 이야기고, 불행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내 뜻대로 일이 풀릴 거라는 전제하에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실패하면 하늘이 무너진 듯 좌절하죠. 아쉽게도 인생은 종종 내 뜻과 무관하게 실패와 마주하게 됩니다. 때문에 실패를 기본 조건으로 놓고 살면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보왕삼매론>


많은 후배들이, 학생들이, 젊은이들이 정답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말씀드렸죠. 인생은 전인미답이잖아요. 어찌 알겠어요. 그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할지 아닐지 아무도 모릅니다. 답을 찾지 마세요.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선택한 다음에 그걸 정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걸 선택하고 후회하면서 오답으로 만들죠. 후회는 또 다른 잘못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잊고 말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선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을 신중하게 하고 그다음에 셔터를 내리세요. 그 셔터는 열 수 있는 문이 아니고 벽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광고인이 되고 3년 후 쯤 차차선의 선택이 아쉬워서 이직을 생각했다가 잘되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저는 셔터를 내렸어요. 옆을 보지 않았죠.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광고인으로 살았습니다.


집사람이 말하기를, "아마 당신은 다른 직업을 선택했어도 똑같은 소리를 들었을걸?" 그러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처럼 사는 게, 즉 선택하지 않은 답은 이미 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맞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답은 여기 있다. 아니면 없다'가 아니라 '답은 여기 없다. 어쩌면 저기에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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