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조은수 [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그걸 보고 있던 오넷이 내게 물었다.
"넌 엄마 보고 싶지 않아? 집 떠난 지 꽤 됐다며."
"……."
나는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내 몫의 잔을 들이켰다. 내가 한국을 떠난 뒤 첫 안부전화를 건 것은 여행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날은 오빠의 기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단 한 통의 전화도 걸지 않았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나는 컵 표면을 흘러내리는 술 한 방울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내가 가는 곳이 집이지 뭐, 호넷."
취기가 오른 내가 머쓱하게 웃었다.
"…… 나니랑 비슷한 처지라고 해야 하나."
"제발 평범하게 좀 살자."
엄마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좋은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을 갖는 것? 아니면 좋은 남편을 만나 시집가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잘나되 그 속에서 튀지 않으려 애를 쓰다 그렇게 80년쯤 흘려 보내는 것?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참을 수가 없어져 신발을 신었다.
"오늘은 들어올 거지?"
울먹임과 체념이 뒤섞인 물음에 나는 성의 없이 "응" 하고는 현관을 나섰다. 그런 삶을 위해 그동안 나는 그리도 발버둥 쳤던 걸까.
하지만 텟다를 떠나면 히룻이 끓여주는 기가 막힌 커피는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고, 하늘이 빽빽해지도록 별과 은하수가 뜬 장관 아래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먹는 저녁, 내 무릎에 폴싹 올라앉아 음식을 먹여달라고 조르는 미타, 비가 내리는 추운 밤이면 식구들과 옹기종기 붙어 앉아 나누던 체온도 전부 지나간 추억이 되어버릴 것이었다.
"…… 하지만 우리 엄마도 내가 오늘 뭘 봤는지 알았더라면 부러워했을걸요."
나는 심술궂게 웃었다.
"분명 그러셨을 거야. 고래는 정말 대단했거든."
노르딘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노르딘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가 서글퍼지고 말았다. 나는 지금 행복한데, 엄마는 지금 행복할까.
"노르딘, 나 있잖아요."
내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나는 앞으로도 부모님께 지고 들어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거든요. 내 인생이잖아요."
노르딘은 온화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다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뭐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요."
차가운 밤공기에 뒷덜미가 서늘해지며 털이 삐죽 곤두섰다. 나일강 다리 위에서 난간에 걸터앉아 발을 동동거리며 꿈속 모험의 세계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부 내 착각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은 단 한번도 현실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잿빛이기만 했던 풍경이 사막으로, 바다로, 초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세계는 내가 평생동안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 속에서 평생 동안 해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온갖 짓들은 전부 저지르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으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 살아나기만 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동물처럼 예민하고 날카롭게 살아나서, 내 몸에서 절절 끓고 있는 피가 절망스러울만치 몸의 세포 하나하나로 느껴졌다. 나는 여지껏 살아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려워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