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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재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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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Apr 26. 2018

죄와 벌

#7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p.122

   "워낙 야릇한 구석이 있으니까. 아니, 그보다는 이런 얘기를 해 주지. 나는 이 빌어먹을 노파를 죽이고 금품을 훔쳐도 장담하지만, 양심에 찔리는 건 전혀 없을 거야." 열을 올리며 대학생이 덧붙였다.

   장교는 다시 껄껄 웃었지만, 라스콜니코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야, 그럼 진지하게 뭐 하나 물어보자." 대학생이 열을 올렸다. "물론 방금 한 얘기는 농담이지만, 한번 봐. 한쪽에 멍청하고 무의미하고 하찮고 못됐고 병든 노파가 있는데, 아무에게도 필요도 없거니와 오히려 모두에게 해만 끼치는 존재,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를뿐더러 내일이라도 저절로 죽을지도 모르는 노파야. 알겠어? 알겠냐고?"

   "뭐, 알겠어." 장교가 열을 올리는 친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계속 들어 봐. 다른 한쪽에는 지원을 받지 못해 허무하게 스러져 가는 젊고 싱싱한 힘들이 있어, 그것도 수천씩 지천에 널려 있어! 수도원에 들어갈 노파의 돈만 있으면 백 개, 천 개의 선한 일과 기획을 추진하고 손볼 수 있단 말이야! 어쩌면 수백, 수천의 존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도 있겠지. 수십 개의 가정을 가난과 해체와 파멸과 방탕과 성병 병원에서 구해 낼 수도 있어. 이 모든 것을 그녀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ㅇ라, 그리고 그 돈의 도움으로 나중에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헌신하라. 네 생각은 어때,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체에서 구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성명을 서로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게다가 저울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폐병쟁이에 멍청하고 못된 노파의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이나 바퀴벌레의 목숨, 아니, 그만도 못한 목숨이야. 남의 목숨을 좀먹고 있거든. 얼마 전에도 홧김에 리자베타의 손가락을 깨물었는데,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려 나갈 뻔했지!"

   "물론 노파는 살 가치가 없지." 장교가 지적했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잖아."

   "에이, 이봐, 그러니까 자연을 수정하고 방향을 틀어 주는건데, 그러지 않았다면 편견 속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단 한 명의 위인도 나오지 못했을 테고. 말로는 '의무다, 양심이다.' 하고 떠들어 대지만 -의무와 양심에 토를 달 생각은 나도 전혀 없지만- 사실 우리가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지? 잠깐만, 하나만 더 물어보자. 들어 봐!"

   "아니, 너야말로 잠깐만 있어 봐. 내가 뭐 하나 물어보자. 들어 봐!"

   "해 봐!"

   "지금 너는 일장연설에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말이야, 어때, 네가 네 손으로 노파를 죽일 수 있겠어?"

   "당연히 아니지! 나는 그냥 정의 차원에서……. 이 일 자체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지…."

   " 내 생각에는, 네 손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바에는 정의는 무슨, 나발이지! 한 판 더 하러 가자!"

   라스콜니코프는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형식과 주체만 다를 뿐, 아주 평범하고 이미 수차례나 들어온, 아주 흔한 젊은이들 특유의 대화와 생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지금 이런 대화와 이런 생각을 듣게 된 것일까, 그의 머릿속에서도 똑같은 생각이 막 생겨난 지금…? 왜 하필이면 노파에게서 그런 생각의 맹아를 막 얻어 온 지금, 때마침 노파에 관한 대화를 엿듣게 될 것일까…? 이러한 우연의 일치가 항상 이상하게 여겨졌다. 이 하찮은 술집의 대화가 앞으로 일이 진척됨에 따라 그에게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 정말로 여기에는 어떤 숙명이, 계시가 있는 것 같았다…."



P.130

   하지만 이런 것은 그가 아직 생각지도 못한, 더욱이 그럴 겨를도 없는 사소한 문제였다. 그는 주된 것만 생각하고 사소한 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확신하게 될 때까지 미루어 두었다. 하지만 도무지 확신이 설 것 같지가 않았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되었다. 가령, 언젠가 자기가 생각하는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냥 그곳으로 가리라고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최근의 시험(즉, 최종적으로 현장을 둘러 보기 위한 사전 답사)도 그야말로 시험 삼아 해 본 것일 뿐, 진짜 그럴 마음이 있었던 아니고 그냥 '자, 어디 한번 가서 시험이나 해 볼까, 몽상만 하면 뭐 하나!' 하는 식이었을 뿐인데, 당장에 참지를 못해 침을 뱉고 스스로에게 격분하며 도망치지 않았던가. 실상 문제의 도덕적인 해결의 측면에서라면 모든 분석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그 나름으로 자신의 논리를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갈아 놓았기 때문에 이미 내적으로는 어떤 의식적인 반론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고 자기 자신을 마냥 믿지는 못해, 누구의 강요에 따라 끌려다니는 것처럼 사방팔방을 더듬으며 노예처럼 우직하게 반론을 찾아 헤맸다. 한데 최후의 날은 그토록 예기치 못하게 찾아와 모든 것을 단번에 결정해 버렸으며, 그에 따라 그는 거의 완전히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누가 그의 손을 잡고 뿌리칠 수도 없도록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며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고 그를 질질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꼭 옷자락이 기계 바퀴에 휘말려 그도 함께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은 형국이었다.

   처음에는 -하긴 이미 오랜전부터 그랬지만- 한 가지 의문에 골몰해 있었다. 즉, 거의 모든 범죄가 왜 그토록 쉽게 발각되고 폭로되는 것이며, 또 거의 모든 범죄자의 흔적이 왜 그토록 뚜렷이 남게 되는 것일까? 그는 점차 다양하고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의 견해에 따르면, 가장 주된 원인은 범죄를 물리적으로 은폐할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범죄자 자신에게 있다. 범죄자는 거의 너 나 할 것 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순간, 더욱이 이성과 신중함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의지와 이성의 활동은 저하되는 반면 어린아이처럼 희한할 만큼 경솔하게 굴게 된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이런 이성의 혼미와 의지력의 저하가 인간을 병마처럼 사로잡아 점차 진전에 지전을 거듭한 뒤 범행 직전에는 최고의 극점에 다다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가 범행의 순간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후에도 몇 시간은 족히 더 지속된다. 그러고 나면 모든 병과 다름없이 그냥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문제인즉 이렇다. 병이 범죄를 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범죄가 그 특유의 본질상 어떻게든 항상 병과 같은 무엇을 동반하는 것일까? 그는 아직은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힘이 없음을 느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그는 자기만큼은, 자기의 일에서는 이와 같은 병적인 격동이 있을 수 없다고, 이성과 의지는 계획한 일을 실행에 옮기는 내내 자기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는데, 그 유일한 이유인즉 자기가 계획한 일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가 최후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겪은 일련의 과정은 생략하도록 하자. 안 그래도 얘기를 너무 앞질러 버렸으니까…. 그저 일의 실질적이고 순전히 물리적인 난관은 대체로 그의 머릿속에서 가장 부차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만 덧붙이자. '그런 것은, 그것을 지배할 의지와 이성만 똑바로 유지하면, 때가 되면, 일의 세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알게 될 때 전부 저절로 정복될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시작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최종적인 결단을 그 무엇보다도 더 믿지 못했고, 정작 시간이 닥치자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식, 어딘가 우연스럽고 심지어 거의 뜻밖의 형국이 돼 버렸다.



p.200

   갑자기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롭고도 굉장히 단순한 질문이 떠올라, 일시에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참혹할 정도로 경악하고 말았다.

   '만약 이 모든 일을 정말로 바보 같은 방식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만약 정말로 너에게 특정하고 확고한 목적이 있었다면, 대체 어째서 여태껏 지갑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며 네가 손에 넣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단 말이가, 그 때문에 온갖 고통을 감수하고 그토록 비열하고 더럽고 천박한 일도 의식적으로 감행했건만? 실상 너는 그것을, 그러니까 그 지갑을 지금 물속에 던져 버리려고 했잖은가, 역시나 네가 아직 보지도 않은 모든 물과 함께…. 이건 대체 뭔가?'

   그렇다, 정말 그렇다. 저말 전부 그렇지 않은가. 하긴 이것은 전에도 알았던 만큼 그에게 전혀 새로운 의문은 아니었다. 간밤에 물속에 던져 버리기로 결정됐을 때도 어떤 망설임도, 반발심도 없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달리 수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결정됐다…. 그렇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알고 또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미 어제, 트렁크를 붙들고 앉아 케이스를 꺼내던 바로 그 순간에 그렇게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몸이 너무 안좋아서 이런 거다.' 마침내 그가 음울하게 결론을 내렸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무슨 짓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면서…. 어제도, 그저께도, 요 근래 계속 나 자신을 못살게 괴롭혔다…. 몸이 좋아지면… 이렇게 스스로를 못살게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전혀 좋아지지 않으면 어쩐다지? 맙소사! 이따위 것들, 죄다 넌덜머리난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어떻게든 모든 것을 훌훌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뿌리치기 힘든 새로운 감각 하나가 거의 시시각각 더욱더 강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P.208

   지금 어딘가 깊은 곳,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저 아래쪽 발밑 어딘가에서 지나가 버린 옛날의 모든 것이, 옛날의 상념들, 옛날의 과제들, 옛날의 주제들, 옛날의 인상들, 그리고 그 모든 파노라마와 그 자신과 모든 것, 모든 것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 자신은 어디론가 위로 날아가고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무심결에 한 손을 움직이다가 갑자기 주먹 안에 꼭 쥐고 있던 20코페이카짜리 은화의 감촉을 느꼈다. 그는 주먹을 풀고 동전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팔을 치켜들어 물속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순간 그는 가위를 들고 제 손으로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싹둑 잘라 낸 기분이었다.



p.232

   "하느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전능하신 그분의 도움을 바라세요." 사제가 말을 꺼냈다.

   "어휴! 어지간히 자비로우시겠지만, 우리한테 신경 써 주실 겨를은 없으시죠!"

   "죄받을, 죄받을 소리입니다, 부인." 사제가 고개를 내저으며 한마디 했다.
   "이건 죄받을 짓이 아닌가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죽어 가는 자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야 그럴 수 있지만, 본의 아니게 원인을 제공한 분들이 부인에게 부상을 해 줄 겁니다, 하다못해 손해 본 수입이라도…."

   "제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군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짜증스럽게 소리친 뒤 한 손을 내저었다. "아니, 뭘 보상해 준다는 거가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양반은 술이 떡이 돼서 제 발로 말 밑으로 기어 들어갔을걸요! 또, 수입이라고요? 이 양반이 갖다 준 건 수입이 아니라 고생바가지였어요. 이 주정뱅이는 뭐 하나 남기지 않고 죄다 퍼마셔 버렸죠. 우리 돈을 탈탈 털어 술집으로 가져갔고 저 애들의 인생도, 내 인생도 술집에서 모조리 바닥내고 말았어요! 이렇게 죽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손실이 적어질 테니까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환자 주변을 부지런히 오가며 물을 먹이고 머리의 땀과 피를 닦아 주고 베개를 바로잡아 주고, 이렇게 일을 하는 사이사이에 간간이 사제 쪽으로 몸을 돌려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갑지기 거의 광란 상태가 되어 그에게 달려들었다.

   "어휴, 신부님! 입에 발린 말 좀 그만하세요! 용서라뇨! 이렇게 마차에 치이지 않았으면 오늘도 술에 취한 채로 돌아와 완전히 닳아 빠진 루바쉬카 한 장만, 그나마도 누더기나 다름 없는 걸 달랑 걸치고 나자빠져 쿨쿨 곯아떨어졌을 테고, 나는 날이 밝기 전까지 물을 튀기며 이 양반의 누더기와 아이들의 넝마를 빨고 그러고 나면 또 창문 밖에다 널어 말리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앉아서 옷을 깁거나 했을  테죠. 바로 이게 내가 밤마다 하는 짓이란 말이에요…! 이런 마당에 용서하고 자시고 할 게 어디 있어요! 용서야 벌써 했죠!"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무서운 기침이 다시 그녀의 말을 끊어 놓았다. 그녀는 손수건에 가래를 뱉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사제 앞으로 쑥 내밀어 보여 주었다. 손수건은 완전히 피범벅이었다….

   사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412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난처해하며 말을 꺼냈다. "그건 말이야, 실은 여길 오는 동안 내내 기차에 앉아,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만날까, 그간의 모든 일을 어떻게 서로에게 알려 주고 있을까, 하는 꿈에 젖었는데… 어찌나 행복했는지, 길도 안 보이더구나! 지금 내가 무슨 망발을 하는 거냐! 지금도 행복한걸…. 두냐, 너는 괜한 소리를! 나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다, 로쟈…."

   "이제 그만하세요, 엄마."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곤혹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 "얘기할 시간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는 갑자기 당황하며 창백해졌다. 또다시 아까 느꼈던 감각 하나가 죽음의 냉기처럼 그의 영혼을 훑고 지나갔다. 또다시, 갑자기 그야말로 또렷하고도 분명히, 자기가 방금 끔찍한 거짓말을 했음을, 이제는 얘기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기는커녕 이미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더 이상, 결코 그 누구와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이 고통스러운 생각에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그는 한순간 거의 완전히 정신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아무도 보지 않고 방에서 썩 나가 버릴 기세였다.



p.466

   "아니, 아니야, 완전히 그 때문이라는 것도 아니야." 포르피리가 대답했다. "핵심이 뭐냐면, 이분의 논문에서는 모든 사람이 어찌어찌하여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돼. 평범한 사람은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반면, 비범한 사람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식으로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비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오독을 한 것이 아니라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럴 수는 없지!" 의혹에 사로잡혀 라주미힌이 중얼거렸다.

   라스콜니코프는 또다시 피식 웃었다.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자기를 어디로 몰아붙이려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자신의 논문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제 논문의 내용이 완전히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진솔하고 겸손하게 말을 시작했다. "하긴, 솔직히 말해, 당신은 내용을 거의 정확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달까요….(그는 더할 나위 없이 정확했음을 인정해주는 것이 유쾌한 모양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오로지, 저는 당신의 말씀처럼 비범한 사람은 항상 온갖 무법 행위를 자행해야 되고 반드시 그럴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제 생각으론 그런 논문이라면 아예 발표도 못하게 했을 것 같군요. 저는 그저 '비범한 사람'이 모종의 권리를 갖는다고… 다시 말해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그 스스로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 어떤 장애물을 뛰어넘을 권리를 갖는다고 암시했을 따름이며, 더욱이 오로지 자신의 사상(때로는 전 인류에게 구원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요.)을 실행하는 데 그것이 요구될 경우에만 그렇다는 겁니다. 제 논문이 불분명하다가고 말씀하시는데요, 가능한 한 명확히 정리해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저의 어림짐작으로는 당신도 그러길 바라시는 것 같으니, 예, 좋습니다. 제 생각에, 케플러나 뉴턴의 발견이 어떤 복잡한 요인 때문에 그 발견에 방해가 되거나 그 여정에 장애물처럼 서 있는 사람, 한 명이든 열 명이든 백 명이든 하여간 그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는 것이라면, 뉴턴은 자신의 발견을 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 이 열 명 혹은 백 명을… 제거할 권리가 있으며 심지어 그럴 의무마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뉴턴이 이놈 저놈 아무나 내키는 대로 죽이거나 시장에서 매일 도둑질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나아가, 제 기억으로, 제가 그 논문에서 개진하는 바에 따르면, 모든… 뭐, 예컨대, 아주 고대부터 리쿠르고수,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입법자나 제정자라 할지라도 모두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범죄자였다, 새로운 법률을 내놓고 그럼으로써 사회에서 신성시되고 자자손손 대대로 전해져 온 오랜 법률을 파괴하고, 유혈 사태가(때로는 오랜 법률을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아무 죄 없이, 떳떳하게 행해진 유혈 사태도 있지만)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물론 그 피 앞에서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범죄자였다, 라는 겁니다. 이런 인류의 은인과 제정자들 대부분이 유달리 소름끼치는 살인마였다는 사실은 실로 주목할 만하죠. 한마디로, 저의 결론인즉, 위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궤도에서 조금이라도 일탈할 사람들, 즉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말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그 본성상 반드시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쨌거나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는 궤도에서 일탈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궤도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 본성상 동의할 수 없고, 제 생각으론, 동의하지 않을 의무마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보시다시피, 지금까지는 여기에 특별히 새로운 건 전혀 없습니다. 이런 내용은 천 번은 족히 쓰였고 또 읽혔지요.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한 것에 관한 한, 다소간 자의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실 제가 정확한 수치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저는 다만 저의 주된 사상을 믿을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급 부류(평범한 사람들), 즉 오로지 자신과 비슷한 자신들을 생산하는 데만 기여하는, 말하자면 재료이며,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사람들, 즉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세분하자면 물론 끝도 없겠지만,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특징은 상당히 명확합니다.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적으로 말해, 그 본성상 보수적이고 점잖은 데다가 순종하며 살고 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들은 순종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며 그런다고 굴욕감을 느낄 이유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전부 법률을 넘어서는 자들, 그 능력에 따라 파괴자이거나 그런 경향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며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극히 다양한 성명을 통해 보다 더 나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하길 요구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녀을 위해 시체라도, 피라도 뛰어넘어야 한다면 그는, 제 생각으로는, 내면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에게 피를 뛰어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되 그건 어디까지나 이념과 그것의 규모에 따른 것이라는 점 -이 점을 유념하십시오. 오직 이런 의미로 저는 제 논문에서 범죄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논하는 겁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우리의 논의는 법률적인 문제에서 시작됐잖습니까.) 그래도 많이 불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대중은 그들의 이러한 권리를 거의 절대로 인정하지 않은 채 그들을 처형하고 목매달고(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요.) 그로써, 완전히 옳은 일인데, 자신의 보수적인 사명을 이행하는 반면, 다음 세대에 가서는 바로 그 대중이 처형된 자들을 단상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경배하는 겁니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요.) 첫 번째 부류는 항상 현재의 주인이며 두 번째 부류는 미래의 주인입니다. 전자는 세계를 보존하고 수적으로 증대시킵니다. 후자는 세계를 움직이고 목표를 향해 이끌고 갑니다. 이쪽저쪽 다 존재할 권리를 완전히 똑같이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 논문에서는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며 vive la guerre eternelle(영원한 투쟁 만세)라고 할 만하죠, 물론 새 예루살렘이 도래할 때까지만!" 



p.471

   "고맙습니다. 하지만 또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대체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죠? 태어날 때 무슨 표식이라도 있는 겁니까, 예? 제 말인즉, 이 경우에는 아무래도 정확한 특징이, 말하자면 보다 더 외적으로 명확한 특징이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실제적이고 호의적인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이런 불안을 갖는 점, 좀 양해해 주시고요, 어쨌거나 이 경우에는 예컨대 특수한 옷을 마련해 준다거나 뭐 저어기 무슨 낙인을 찍어 준다거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인정하시겠지만, 혹시 몽땅 뒤죽박죽돼서 한쪽 부류의 사람이 자기는 다른 쪽 부류에 속한다고 상상하여, 당신이 극히 적절히 표현하신 대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기 시작하면 그 경우에는 그야말로…."

   "오, 그거야말로 극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죠! 당신의 그 지적은 방금 전보다 더 예리한데요…."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런 실수는 오직 첫 번째 부류, 즉 '평범한 사람' 부류에서만 일어날 수 있음을 고려해 주십시오. 그들은 타고 나길 순종적인 경향을 띠지만 그럼에도, 암소도 더러 보이는 자연의 장난기로 인해 그들 중 극히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선각자로, '파괴자'로 상상하길, '새로운 말'을 내뱉으려 안달하길 좋아합니다, 더군다나 그야말로 진심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작 새로운 자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사고방식이 비굴한 구닥다리로 취급하며 경멸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 경우에 그다지 큰 위험이 있을 리도 없고 사실 당신이 걱정하실 건 전혀 없는데요, 그들은 절대 멀리 나가지 못하거든요. 그들이 지나치게 몰입하면 자기 분수를 알라고 더러 채찍질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숫제 집행자도 필요 없습니다. 워낙에 착실한 자들이라, 그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할 테니까요. 어떤 자들은 서로를 위해 이 수고를 덜어 줄 것이고, 또 어떤 자들은 자기 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할 테고요….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여러 방식으로 회개하기 때문에 결국 아름답고 교훈적인 결과가 나오고, 한마디로, 당신이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것도 그 나름의 법칙이죠."

   "그럼, 적어도 그쪽으론 저도 얼마간은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또 큰 문제가 있군요. 저어기 말이죠, 다른 사람들을 찔러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 즉 저 '비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저야 물론 얼마든지 경배할 용의가 있지만, 사실 그런 자들이 아주 많으면 기분이 상당히 더럽지 않을까요, 그렇잖습니까, 예?"

   "오, 그 점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똑같은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대체로 새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 심지어 뭐든 조금이나마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례적일 만큼 적게 태어납니다, 심지어 이상할 정도로 적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부류와 세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태어나는 질서가 필경 어떤 자연법칙에 따라 극히 확실하고 정확하게 규정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물론 지금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는 그것이 분명히 존재하며 나중에는 밝혀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거대한 인간 집단, 즉 재료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마침내 어떤 노력을 통해, 또 지금도 신비에 싸인 어떤 과정, 즉 종족과 이족의 교배같은 것을 통해 열심히 애를 써서 뭐, 천 명에 한 명이라도 다소나마 자주적인 인간을 낳기 위해서입니다. 보다 폭넓은 자주성을 갖춘 자는 아마 만 명에 한 명쯤(일목요연하도록 대충 예를 들어 말하는 겁니다.) 태어날까 말까겠지요. 천재적인 사람은 백만 명에 한 명쯤, 위대한 천재나 인류의 완수자는 아마 지구상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거쳐 간 다음에야 한 명쯤 나올까 싶군요. 한마디로, 이 모든 작용이 일어나는 증류기 속을 제가 직접 들여다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정한 법칙은 반드시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이 경우,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p.475

   "그렇습니다, 그렇지요." 포르피리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이제는 당신이 범죄를 어떤 시각으로 보시는지 거의 분명히 알겠습니다만… 이렇게 끈덕지게 굴어서 죄송한데(왜 이렇게 폐를 끼치는지, 원, 저 스스로도 창피하군요!) 아시다시피, 아까 두 부류가 실수로 그만 뒤섞일 경우에 관해서는 덕분에 저도 몹시 안심이 됐지만… 여기서 이런저런 실제적인 경우들이 여전히 또 마음에 걸리는군요! 뭐, 어떤 사내 녀석이나 젊은 녀석이 자기가 리쿠르고스나 마호메트라고 -물론 미래에 그리 될 거라고- 상상하여… 그렇게 되기 위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자는 식으로 나오면… 머나먼 원정이 임박했고 그 원정에는 돈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뭐, 원정을 위해 이것저것 손에 넣기 시작할 테고… 아시겠죠?"

   한구석에 앉아 있던 자묘토프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라스콜니코프는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 역시 동의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런 경우가 정말 분명히 있을 겁니다. 어리석고 허영심 많은 자들이라면 특히나 더 그런 술수에 잘 걸려들죠. 젊은 층은 특히나 더."

   "거 보십시오. 그럼 어떡합니까?"

   "그냥 그런 거죠." 라스콜니코프가 피식 웃었다. "그게 제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냥 그런 거고 항상 그럴 겁니다. 방금 이 녀석은(그는 라주미힌을 향해 고갯질을 했다.) 제가 피를 허용한다고 말했잖습니까. 아니, 그래서 뭐요? 사회에는 유형이니 감옥이니 예심판사니 강제 노동이니 징역이니 하는 것이 얼마든지 갖춰져 있는데, 걱정할 게 뭐 있습니까? 그냥 도둑이나 찾아보시죠…!"

   "그래서 찾아낸다면?"

   "그쪽이 그자의 길이죠."

   "참 논리적이시군요. 그럼, 그의 양심은?"

   "아니,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뭐, 그냥, 인도적인 차원에서 물어보는 겁니다."

   " 양심이 있는 자는, 자신의 오류를 의식한다면, 괴로워하겠죠. 이게 그에겐 벌입니다, 징역과는 별개로."

   "그럼, 정말로 천재적인 자들은" 하고 라주미힌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남을 찔러 죽여도 되는 권리를 부여받은 자들, 그자들은 자기가 초래한 유혈에 대해서도 전혀 괴로워하지 말아야 된단 말이야?"

   "대체 왜 여기에 말이야 된다라는 말이 들어가지? 여기에는 허용도, 금지도 없어. 희생양이 불쌍하던 괴로워하라 그래…. 폭넓은 의식과 심오한 마음의 소유자라면 고뇌와 고통은 항상 필수적인 법이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이라면, 내 생각으로는, 세상의 위대한 슬픔을 느끼지 않으면 안돼." 그는 갑자기 생각에 잠긴 듯 이렇게 덧붙였는데, 심지어 대화를 나누는 어조도 아니었다.



p.494

   그러자 그는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더러웠다.

   '이럴 줄 알아야 했다.' 그는 씁쓸한 냉소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나 자신을 알면서도, 나 자신을 예감하면서도 감히 도끼를 들고 손에 피를 묻히다니! 기필코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에잇! 실은 미리 알지 않았던가…!' 그는 절망에 사로잡혀 이렇게 속삭였다.

   때때로 그는 어떤 생각 앞에서 꼼짝없 이 멈칫하곤 했다.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진짜 통치자는 툴롱을 격멸하고 파리에서 대학살을 자행하고 이집트에서 군대를 방치하고 모스크바 원정에서 오십만 명을 낭비하고 빌나아에서 말장난 하나로 일을 마무리한다. 그런 그를 위해 사후에 우상을 세워 주는 것이며, 고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들은 몸이 아니라 청동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 하나가 뜬금없이 떠올라, 갑자기 거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폴레옹, 피라미드, 워털루, 그리고 비쩍 마르고 추악한, 14등관의 미망인이자 고리대금업자에, 침대 밑에 붉은 궤짝이나 감춰 놓는 노파라니 -자, 제 아무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라도 이런 걸 어떻게 소화해 낼 수 있겠어…! 누군들 어떻게 하겠냐고…! 미학이 방해를 할 텐데. 나폴레옹이 '노파'의 침대 밑으로 기어드나, 라고 할 테지! 에잇, 병신 같은 짓이야…!'

   수시로 그는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열병에 걸린 양 황홀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노파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격정에 휩싸이며 열렬히 생각했다. '노파는 실수였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노파가 아니다! 노파는 그저 병에 불과했고… 나는 차라리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원칙을 죽인 것이다! 원칙은 죽였지만 정작 넘어서는 건 아예 넘어서질 못하고 이편에 남게 됐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이는 것뿐이었지. 하긴 그러고 보니 그것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셈이다…. 원칙? 저 멍청한 라주미힌은 아까 무엇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을 욕했을까? 근면 성실하고 장사에 능한 족속인걸. '보편적인 행복'에 종사하지 않는가…. 아니다, 나에게 삶은 한 번 주어지는 것이지, 더 이상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마냥 '공동의 행복'을 기다리기는 싫다. 나도 살고 싶다, 그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살지 않는 편이 낫다. 아니, 그래서? 나는 다만, 호주머니 속에 1루블을 꼭 거머쥔 채 '공동의 행복'이나 기다리며 굶주린 어머니 옆을 그냥 지나치는 짓은 하기 싫었던 것이다. "공등의 행복을 위해 벽돌 한 장을 나르고 그로써 마음의 평온을 느낀다.", 이런 말씀. 하-하! 너희들은 나를 왜 그냥  통과시켰는가? 나 역시 한 번뿐인 삶을 살고 있고, 나 역시 살고 싶단 말이다…. 에잇, 나란 놈은 미학적인 이(蝨)에 불과할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으며 덧붙였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이다.' 그는 계속 생각에 잠겨 심술궂은 쾌감을 느끼고 그 생각에 들러붙어 그것을 헤적이고 갖고 놀면서도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 첫째, 지금 내가 이라는 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생각한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둘째, 한 달 내도록 자비로운 신을 괴롭혀 가며 증인을 내세워서는 나 자신의 육신과 육욕을 위해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유쾌한 목적을 염두에 둔 것임을 봐 달라고 했다. -하하! 그리고 셋째 실행에 있어 가능한 한 공정을 기하기로, 즉 무게와 정도와 수학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러고는 모든 이 중에서 제일 쓸모없는 이를 골라 죽이고 그럼으로써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더도 덜도 말고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또, 또, 내가 결정적으로 이인 이유는' 하고 이를 갈며 덧붙였다. '나 자신이 살해된 이보다 훨씬 더 추악하고 더러운 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죽이고 난 이후에 나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것임을 미리부터 예감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처럼 소름끼치는 공포에 비길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오, 비루해라! 오, 비열해라…! 오, 사벨을 차고 말을 탄 '예언자'를 정말 잘 이해하겠다. 알라가 명하노니 '떨고 있는' 피조물은 복종하라! 옳다, 어디에 훌-륭-한 포병대를 세워 놓고 길을 가로막은 다음 올바른 자든, 죄 있는 자든 할 것 없이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전부 휩쓸어 버릴 때 그 '예언자'는 옳은 것이다, 옳고말고! 복종하라, 떨고 있는 피조물이여, 그리고 바라지 말라, 그건 네 일이 아니니까…! 오, 어떤 일이,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노파를 용서하지 못하겠다!'



p.86

   갑자기 그는 재빨리 온몸을 숙여 마룻바닥에 엎드리더니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소냐는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미친 사람을 피하듯 뒤로 움찔 물러났다. 정말로 그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대체 이게 무슨, 무슨 짓이에요? 나 같은 사람에게!"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채 이렇게 중얼거렸는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도 아프게 죄어 왔다.

   그는 당장 일어났다.

   "나는 당신에게 절을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고통 앞에 절을 한 거야." 그는 어쩐지 기괴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고는 창문 쪽으로 물러났다. "들어 봐." 곧 되돌아온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는 아까 나를 모욕한 어떤 놈한테 말해 줬어, 당신의 새끼손가락만 한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 또 오늘 내 여동생에게 당신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했다고." (중략)

   "당신을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치욕과 죄악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그 크나큰 고통 때문이야. 당신이 죄 많은 여자라는 건, 그건 그렇지." 그가 거의 열광하며 덧붙였다. "당신이 죄인인 것은 무엇보다도 아무 쓸모없이 스스로를 죽이고 배반했기 때문이야. 이거야말로 끔찍한 일 아닐까! 자기가 그토록 증오하는 진흙탕 속에 살면서 동시에 (눈만 똑바로 뜬다면) 그래본들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당신이 더 잘 아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니냔 말이야! 그리고 끝으로 말이야." 하고 그가 거의 미친 듯 흥분하여 말했다. "이따위 치욕과 천함이 당신의 내부에서 어떻게 정반대되는 다른 성스러운 감정들과 공존할 수 있는 거지? 차라리 곧장 물속에 몸을 던져 단번에 끝장을 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것이 천배는 더 정의롭고 더 이성적이지 않을까 말이야!" (중략)

   그는 그녀의 시선만으로 모든 것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그녀에게도 이미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 절망에 빠진 나머지 단번에 끝장을 내 버리자고 수도 없이, 또 진지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을 것이며,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에 지금 그의 제안에 거의 놀라지도 않은 것이리라. 그의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의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신세를 생각할 때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기괴할 정도로 큰 고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음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즉, 대체 무엇, 무엇 때문에 그녀는 단번에 끝장을 내 버리자는 결의를 여태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까? 그러자 비로소 저 불쌍한 어린 고아들과 반쯤 미쳐 버린, 벽에다 머리를 찧어 대는 저 가엾은 폐병환자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소냐가 타고난 성품에 덧붙여 어쨌거나 교육도 받은 만큼 어떤 경우에도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리라는 것도 분명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물속에 물을 던질 힘은 없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이런 상태로 있으면서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그는 소냐의 처지가 불행히도 그녀 혼자만 겪는 예외적인 현상은 아닐지라도 어떻든 이 사회에서 우연한 현상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 우연성과 이 얼마간의 교육과 그 전까지의 삶 때문에 그녀는 이 혐오스러운 길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 단번에 죽어 버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무엇이 그녀를 지탱해 주었던 것일까? 설마 음탕은 아니었을 테지? 이 모든 치욕은 분명히 그녀를 기계적으로만 건드렸을 뿐, 진짜 음탕은 아직 그녀의 마음속에 단 한 방울도 스며들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생시에 이렇게 그 앞에 서 있지 않는가….

   '그녀에게는 세 가지 길이 있다.' 그는 생각했다. '운하에 몸을 던지거나 정신병원에 떨어지거나 혹은… 혹은, 끝으로, 정신을 혼탁하게 하고 가슴을 돌처럼 굳게 하는 음탕에 몸을 던지거나.' 마지막 생각이 그는 제일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이미 회의주의자였고, 젊고 추상적이고 그렇깅 잔인했으며, 따라서 마지막 출구, 즉 음탕이야말로 제일 그럴듯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사실일까.' 그는 속으로 외쳤다. '과연 아직까지 순결한 정신을 간직한 이 존재도 결국 이 더럽고 구린내 나는 수렁 속에 의식적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인가? 아니, 벌써 그러기 시작했고 정녕 죄악이 그녀에겐 이미 별로 혐오스럽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오직 그 때문에 지금까지 참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아니다, 그럴 리 없다! ' 그는 좀 전의 소냐처럼 울부짖었다. '아니다, 지금까지 운하에 몸을 던지지 못하도록 그녀를 붙들어 준 것은 죄에 대한 생각 때문이며 저들, 저자들 때문이다…. 그녀가 아직까지 미치지 않았다면 그것도…. 하지만 누가 그녀가 아직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던가? 아니, 그녀가 지금 멀쩡한 정신인가? 아니, 멀쩡한 사람이 그녀처럼 말할 수 있을까? 멀쩡한 사람이 그녀처럼 판단할 수 있을까? 아니, 파멸 속에, 벌써 그녀를 빨아들인 구린내 나는 수렁 속에 들어앉아, 위험하다는 말이 들려오는 데도 두 손을 내젓고 귀를 틀어막을 수 있을까? 아니, 설마 그녀는 기적을 기다리는 것일까? 분명히 그럴 것이다. 과연 이 모든 것이야말로 정신이상의 징후가 아닐까?



p.99

   "지금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어." 그가 덧붙였다. "함께 가는 거야…. 그래서 난 당신을 찾아온 거야. 우리는 모두 저주받은 몸이니까, 함께 가는 거야!"

   그의 눈이 번득였다. '반쯤 미친 사람 같아!' 소냐는 자기대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디를 가자는 거예요?" 그녀가 두려움에 떨며 이렇게 묻더니 저도 모르게 뒤로 움찔 물러섰다.

   "난들 어떻게 알겠어? 내가 아는 건 오직 우리의 길이 같다는 것뿐이야, 이 점은 확실히 알고 있지, 그뿐이야. 목적지가 같다는 것!"

   그녀는 그를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그가 끔찍이, 더없이 불행하다는 것만을 이해했을 뿐이다.

   "당신이 저들에게 말해도 저들 중 누구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가 계속했다. "그런데 나는 깨달았어. 나에겐 당신이 필요해, 그래서 이렇게 당신을 찾아온 거야."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소냐가 중얼거렸다.

   "나중에 이해하게 될 거야. 결국 당신도 똑같은 짓을 한 셈이잖아? 당신도 역시 넘어섰으니까… 넘어설 수 있었으니까. 당신은 자살을 한 거나 다름없어, 삶을… 당신 자신의 삶을 파멸시켰으니까.(이거나 저거나 매한가지야!) 맑은 정신과 이성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으련만, 결국 센나야 광장에서 끝장을 보게 되겠지…. 하지만 당신은 견딜 수 없을 테고, 혼자 남게 되면 나처럼 미쳐 버리고 말 거야. 당신은 지금도 정신이 나간 여자 같아. 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가야 해, 같은 길을! 가자!"

   "대체 왜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소냐가 그의 말을 이상하고도 격렬하게 흥분하며 말했다.

   "왜냐고? 어쨌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바로 그 때문이야! 끝으로, 진지하고 직접적으로 판단해야 해, 하느님이 용납하지 않을 거라며 어린애처럼 울고불고 소리를 지를 게 아니라! 자, 정말로 내일이라도 당신이 병원에 실려 가면, 어떻게 되겠어? 저쪽은 제정신도 아닌 데다가 폐병쟁이라서 곧 죽을 텐데, 그럼 아이들은? 과연 폴레치카가 파멸하지 않을 것 같아? 정말로 여기 골목골목마다 애 엄마들이 내보내서 구걸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어? 나는 그들의 엄마들이 어디 살고 어떤 처지인지도 알아봤어. 그런 곳에서는 아이가 아이로 지낼 수도 없어. 거기서는 일곱 살만 해도 음탕에 절고 도둑이 되거든. 사실 아이야말로 그리스도의 형상인데. '하늘나라는 그들의 것이다.' 그분은 아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라고 명령했지, 그들이 미래의 인류라고…."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소냐가 히스테릭하게 울고 두 손을 비비며 되뇌었다.

   "어떻게 하냐고? 부숴야 할 것을 단번에 영원히 부숴야지, 그뿐이야. 그리고 고통은 혼자 짊어지는 거야! 어때? 이해가 안 돼? 나중에 이해하게 될 거야…. 자유와 권력을, 무엇보다도 권력을! 벌벌 떨고 있는 모든 피조물과 모든 개미집에 대한 권력을…! 바로 이게 목적이야! 이걸 기억해 둬! 이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나의 송별사야! 어쩌면 당신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내가 내일 오지 ㅇ낳고 당신 스스로 모든 얘기를 듣게 된다면, 그때 지금의 이 말을 기억해 줘. 나중에 세월이 좀 흐르면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될 거야. 만약 내가 내일 또 온다면 누가 리자베타를 죽였는지 말해 주겠어. 잘 있어!"



p.118

   "하지만 그럼에도, 로지온 로마노비치 선생, 눈 여겨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보편적인 경우, 즉, 모든 법률적 형식과 규칙을 측정하고 계산하여 책에 기록하도록 해 줄만한 보편적인 경우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이유인즉 어떤 사건이든, 가령 범죄만 해도 전부 그렇지만, 그것이 실제로 발생하기가 무섭게 즉시 완전히 특수한 경우로 바뀌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때로는 어떠냐면, 예전 경우와는 조금도 닮지 않는 경우로 바뀐다는 말이지요. 때로는 이런 유로 무척 희극적인 경우도 생기고요 만약 제가 어떤 양반을 완전히 혼자 내버려 둔다고 칩시다. 체포하지도, 괴롭히지도 않되 대신 이쪽에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밤낮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잠도 자지 않고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매 시각, 매 순간 알도록, 적어도 그런 의심을 품도록 한다면, 즉 그가 의식적으로 저의 영원한 의심과 공포의 덫에 걸려 있다면 아닌 게 아니라 빙빙 맴돌다가 제 발로 찾아올뿐더러 아마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을 겁니다. 이건 이미 2×2 같은 것, 말하자면 수학적인 양상을 띠게 될 테니 -통쾌한 일이기도 하지요. 이런 일이 산골 무지렁이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들, 식자연하는 현대인들, 더욱이 어떤 방면으로는 남달리 발달된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선생, 그 사람이 어떤 방면으로 발달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그야말로 관건이란 말입니다. 한데 신경, 신경, 이걸 선생은 까맣게 잊으셨군요! 요즘은 이 모든 것이 병적이고 나쁘고 신경질적이지 않습니까…! 또 다른 발끈, 발끈하는 일을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사실 이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일종의 광맥입니다! 그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도시를 활보한들 제가 왜 불안하겠습니까! 뭐, 어떻습니까, 일단 좀 놀라고 내버려 주는 거죠. 어차피 저는 그가 저의 제물임을, 저를 피해 아무 데로도 도망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는걸요! 아니,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헤-헤! 외국으로요, 예? 폴란드인이라면 외국으로 도망칠까, 그는 아니며, 더욱이 제가 예의 주시하고 있고 조치도 취해 놓았습니다. 그럼 국내의 어디 벽지로 도망칠까요, 예? 그런 곳에는 농부들, 진짜 러시아 농부들, 무지렁이들이 살고 있지요. 이러니 지적으로 발달된 현대인이라면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우리네 농부들과 같이 살 바에는 차라리 감옥을 선호할 겁니다, 헤-헤! 하긴 이런 건 전부 시시껄렁하고 표피적인 얘기입니다. 도망친다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이건 형식적인 것일 뿐,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도망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그가 저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심리적으로 제 손아귀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겁니다, 헤-헤! 표현 한번 멋지죠! 자연의 법칙상 그는 제 손아귀에서 도망치지 못하며, 설령 어디 도망칠 데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촛불 앞을 맴도는 나방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자, 그는 바로 그렇게 촛불 주위를 맴돌듯 계속, 계속 제 주위를 맴돌 겁니다. 자유도 달갑지 않고 생각도 많아져 갎를 잡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그물 같은 것으로 꽁꽁 옭아매면서 죽도록 불안하게 만들 테죠…! 그뿐이겠습니까. 그 스스로 2×2와 같은 무슨 수학적인 증거까지 마련해 줄걸요, 제가 막간 휴식 시간만 좀 넉넉히 준다면…. 그러면 그는 제 주위에서 계속, 계속 원을 그리며 계속, 계속 반경을 좁히고 그러다가 탁 걸렸다! 곧장 제 입으로 날아들 테고 저는 꿀꺽 삼키면 되니까, 몹시 통쾌한 일 아닙니까, 헤-헤-헤! 믿기지 않으십니까?"




p.255

   "한데 그게 당신과 무슨, 무슨 상관일까." 잠시 후 그는 어떤 절망마저 보이며 이렇게 외쳤다. "그래, 내가 지금 당장 고약한 짓을 저질렀노라고 자백한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를 상대로 그런 바보 같은 승리를 거둔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아후, 소냐, 내가 지금 이러자고 당신을 찾아온 걸까!"

   소냐는 또다시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어제 당신더러 함께 가자고 한 건 나에게는 당신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야."

   "어딜 가자는 거지?" 소냐가 겁먹은 듯 물었다.

   "도둑질을 하자는 것도, 살인을 하자는 것도 아니니까 염려 하지 마, 그런일 때문은 아니야." 그가 신랄한 조소를 머금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이니까…. 그런데 소냐,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어제 당신더러 어디를 함께 가자고 한 것인지 깨달았어. 어제 그렇게 권유할 때만 해도 나도 어디인지는 잘 몰랐거든. 함께 가자고 한 것도, 그렇게 다녀갔던 것도 목적은 하나야.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거지. 버리지 않을 테지, 소냐?"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왜, 대체 왜 이 여자에게 말해 버렸을까, 왜 모조리 털어놓은 걸까!" 잠시 후 그는 무한한 고통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이제 나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군, 소냐,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 나도 알아. 한데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한담? 사실 당신은 이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마냥 괴로워하기만 할 텐데… 나 때문에 말이야! 이봐, 또 울면서 나를 끌어안잖아, 아니, 무엇 때문에 나를 끌어안는 거지? 내가 스스로 견뎌 내지 못해 '너도 괴로워해라, 그럼 나는 좀 홀가분해지겠지!' 하며 다른 사람에게 짐을 떠넘기러 왔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야비한 놈을 사랑할 수 있겠어?"

   "당신도 괴로워하고 있잖아?" 소냐가 소리쳤다.

   예의 그 감정이 또다시 파도처럼 그의 영혼 속으로 밀려와 또다시 일순간에 그것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

   "소냐, 나는 마음이 못됐어, 당신도 유념해 둬. 이걸로 다른 것도 설명할 수 있지. 내가 이렇게 온 것도 못됐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이라면 오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나는 겁쟁이에… 야비한 놈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아니, 이건 아니야…. 이제는 말해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는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에-에잇, 우리는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이야!" 그가 또다시 소리쳤다. "서로 어울릴 상대가 아니라고. 한데 왜, 대체 왜 왔을까! 이런 나를 절대 용서하지 못하겠어!"

   "아니, 아니, 이렇게 와 준 건 잘한 일이야!" 소냐가 소리쳤다. "내가 알긴 잘했어! 이러는 편이 훨씬 더 나아!"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어떻게 됐느냐 하면!" 그는 생각을 굳혔는지 이렇게 말했다. "실은 이랬던 거야! 그러니까 나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때문에 사람을 죽였어…. 자, 이제 이해가 돼?"

   "아-아니." 소냐가 순진하게, 소심하게 속삭였다. "그래도… 말해 줘, 말해 줘! 어떻든 이해할 거야, 마음속으론 전부 이해할 거야!" 그녀가 그에게 강청했다.



p.261

   "나는 그때 깨달았어, 소냐." 그가 황홀해하며 말을 이어 갔다. "권력이란 오직 감행하는 자, 즉 그것에 마음을 두고 쟁취하려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여기에는 하나, 오직 하나만 있으면 돼. 오직 감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때 내 평생 처음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나 이전에는 아무도 결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 아무도! 갑자기 내 눈앞에 태양처럼 선명하게 떠오른 생각이란, 어떻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이 모든 터무니없는 현상을 지나칠 때 그냥 그것의 꼬리라도 붙잡아 내동댕이치지 못했을까, 어떻게 지금도 그러지 못할까, 하는 거야! 나는… 나는 감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그저 감행하고 싶었을 따름이야, 소냐, 바로 이게 이유의 전부야!"

   "오, 아무 말 말아요, 아무 말도!" 소냐가 손뼉을 탁 치며 소리쳤다. "당신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어요,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악마에게 넘겨진 사람이에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소냐, 내가 어둠 속에 드러누워 줄 곧 뭔가에 골몰했을 때 그거야말로 악마가 나를 홀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까요! 비웃지도 말아요, 신성모독이나 일삼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오, 주님! 이 사람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아무 말하지 마, 소냐, 비웃다니, 악마의 꾐에 빠졌다는 것 쯤은 나도 알아. 아무 말 하지 마, 소냐, 아무 말도!" 그는 음울하고 집요하게 되뇌었다. "전부 알고 있어. 이 모든 것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계속 속삭였지, 그때 어둠 속에 드러누워서…. 이 모든 것을 두고 제일 사소한 점까지 나 자신과 논쟁에 논쟁을 거듭했으니까 전부, 전부 알아! 그래서 신물이 났어, 그때 이 모든 잡념에 정말 신물이 났어!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어, 소냐, 이따위 잡념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설마 내가 바보처럼 무턱대고 나섰다고 생각해? 나는 영리한 놈으로 나섰고 바로 그 때문에 망하고 말았어! 설마 당신은 내가 가령 나 스스로에게, 내가 권력을 가질 권리가 있을까, 하고 물어보고 또 추궁하기 시작했다면, 고로 내가 권력을 가질 권리가 없다는 뜻임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해? 혹은, 인간이 이(蝨)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고로 나에게는 인간은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짇 않고 무슨 질문을 던질 것도 없이 곧장 제 갈 길을 가는 자에게는 이라는 사실을…. 내가 그토록 많은 날들을, 나폴레옹이라면 나섰을까 아닐까, 하는 문제로 괴로워했다면, 실은 내가 나폴레옹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렷이 느꼈다는 뜻이야…. 이 모든 잡념이 주는 고통을 나는 모조리, 모조리 견뎌 냈고, 소냐, 그 고통을 모조리 어깨에서 떨쳐 버리고 싶었어, 나를 위해, 나 하나만을 위해 죽이고 싶었던 거야! 이 점을 나 자신에게까지 거짓말로 덮어 두고 싶지는 않았어! 어머니를 돕기 위해 죽인 것이 아니야, 허튼소리지! 비용과 권력을 얻기 위해, 인류의 은인이 되기 위해 죽인 것도 아니야, 허튼소리!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을 위해, 나 하나만을 위해 죽인 거야 행여 내가 누구의 은인이 되든, 아니면 한 평생 거미처럼 모두를 거미줄에 꽁꽁 옭아매고 그 모두의 싱싱한 즙을 빨아먹든 그 순간 나로서는 아무 상관없었을 거야, 틀림없이…! 무엇보다도, 소냐, 살인을 했을 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어. 돈이 필요했다기보다는 뭔가 다른 것이…. 나는 dㅣ제야 이 모든 것을 알겠어…. 나를 이해해 줘. 만약 똑같은 길을 간다고 해도, 절대 두 번 다시 살인은 하지 않을 거야. 그때는 다른 것을 알아야만 했어, 다른 것이 내 겨드랑이를 콕콕 찔렀거든. 나는 그때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이에 불과한지, 아니면 인간인지를 알아야만 했어, 그것도 그럴 수 없는지를! 감히 몸을 숙여 취할 수 있을까, 아닐까? 벌벌 떨기만 하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를 갖고 있는가….

   "죽일 권리? 죽일 권리를 갖는단 말이에요?" 소냐가 손뼉을 탁 쳤다.

   "에-에잇, 소냐!" 그가 짜증 난다는 듯 소리를 치며 그녀에게 뭐라고 반박하려고 했지만, 경멸스럽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내 말 좀 끊지마, 소냐! 내가 당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딱 하나야. 그때 악마는 나를 꾀었지만 나중에 설명해 주더군,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이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갈 권리를 갖지 못했노라고! 그 녀석은 나를 우롱했고, 그 때문에 나는 지금 당신을 찾아온 거야! 손님을 맞아 주시라! 만약 내가 이가 아니라면 당신을 찾아왔겠어? 들어 봐. 내가 그때 노파에게 간 것은 그저 시험하기 위해 들렀던 것일 뿐이야…. 그렇게 알아 둬!"

   "그러고는 죽였군요! 죽였어요!"

   "죽였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과연 사람을 그런 식으로 죽이나? 사람을 죽이러 갈 때 과연 그때 내가 한 것처럼 할까 말이야! 언제 당신에게 이야기해 주지, 내가 어떤 식으로 갔는지…. 내가 과연 노파를 죽인 걸까? 나는 나 자신을 죽인 거야, 노파가 아니라! 어쨌거나 그로써 나 자신을 작살낸거야, 단번에 영원토록…! 그 노파를 죽인 것은 악마지, 내가 아니야…. 됐어, 됐어, 소냐, 됐다고! 나를 내버려 둬." 그는 경련이 일만큼 비탄에 잠기며 갑자기 소리쳤다. "그냥 내버려 둬!"

   그는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두 손바닥으로 머리를 펜치처럼 꽉 움켜쥐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소냐의 입에서 괴로움에 찬 절규가 터져 나왔다.



p.304

   라스콜니코프는 그녀(소냐)의 손을 꼭 쥐어 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너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어디론가 떠나 완전히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설령 평생 그래야 할지라도 그는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 들어 거의 항상 혼자였음에도 결코 자기가 혼자라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교외로 나가거나 큰길로 나가는 일도 더러 있었고 한 번은 무슨 숲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장소가 외지면 외질수록 누군가가 가까이 불안스레 함께 있는 것 같은, 무섭다기보다는 어쩐지 몹시 짜증스러운 의식이 더 강해졌으며, 그 때문에 어서 빨리 도시로 돌아와 사람들 틈에 섞이고 음식점이나 술집으로 들어가거나 톨쿠치 시장이나 센나야 광장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그런 곳이 더 편하고 더 외진 것도 같았다. 어느 싸구려 음식점에서 저녁을 앞두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그 노래를 듣느라 꼬박 한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었는데, 심지어 몹시 유쾌했던 것으로 기억됐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갑자기 또 불안해졌다.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앉아서 노래나 듣고 있다니, 과연 이래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이것만은 아님을 이내 알아챘다. 뭔가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버렸다.



p.445

   "늦었어, 그만 가 봐야지. 나는 지금 자수하러 간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자수하는지 모르겠어."

   굵은 눈물방울이 그녀의 빰을 따라  흘러내렸다.

   "우는구나, 두냐, 그럼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도 있을까?

   '그걸 말이라고 해?"

   그녀는 그를 꼭 껴안았다.

   "고통받으러 간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의 절반은 씻는 셈 아닐까?" 그녀는 이렇게 외치며 그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죄라고? 무슨 죄?" 갑자기 그가 어떤 느닷없는 광분에 휩싸이며 소리쳤다. "저 추잡하고 해로운 이(蝨)를, 가난한 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 죄악은 용서받을 텐데, 그것이 죄라고?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죄를 씻을 생각도 없어. 그런데 왜 다들 사방에서 나에게 '죄야, 죄!' 하며 손가락질을 하느냔 말이야. 다만, 내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옹졸했다는 것쯤은 이제 톡톡히 알겠고, 그래서 이제 저 불필요한 수치를 감내하러 갈 결심을 한 거야! 그저 나의 천함과 무능함 때문에 이런 결심을 한 것이지, 저어기… 저 포르피리가 제안한 것처럼 무슨 이익 때문은 아니야…!"

   "오빠, 오빠,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어쨌거나 오빠는 남의 피를 흘렸잖아!" 두냐가 절망에 차서 소리쳤다.

   "다들 흘려 놓는 그 남의 피 말이지." 그가 거의 미친 듯 흥분하며 말을 받았다. "이 세상에 언제나 폭포처럼 넘쳐 났고 지금도 넘쳐 나는 피, 삼페인처럼 넘쳐흐르는 피, 그 피 덕분에 카피톨리누스 신전에서 월계관을 씌우고 나중에는 인류의 은인이라는 칭호도 주었지. 자, 제발 눈을 똑바로 뜩 유심히 잘 살펴봐! 나도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한 가지 멍청한 짓, 아니, 숫제 멍청한 짓도 아니고 그냥 어설픈 짓 대신에 수백, 수천 가지의 좋은 일을 했을지도 모르거니와 사실 이 사상 자체는 지금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멍청한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 실패하는 바람에….(실패할 경우에는 전부 멍청해 보이지!) 이 멍청한 짓을 통해 자립할 기반을 마련하고 첫걸음을 내딛고 그 수단을 손에 넣고 싶었을 따름이고, 그랬다면 상대적으로 말해 무한한 이익을 통해 모든 것이 깨끗이 상쇄됐을 텐데…. 하지만 난 그 첫걸음도 견대 내지 못했어, 비열한 놈이니까! 바로 이게 문제의 핵심이야! 어쨌거나 너희들과 같은 시각을 갖지는 않겠어. 만약 성공했더라면 나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었겠지만 이제는 꼼짝없이 올가미다!"



p.486

   한데 어떤가? 그는 소냐 앞에서도 수치스러워했고 그 때문에 그녀를 경멸하듯 거칠게 대하며 괴롭혔다. 삭발한 머리와 족쇄가 수치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병이 났던 것이다. 오, 만약 스스로 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모든 것을, 수치와 치욕마저도 견뎌 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자신을 아무리 엄중하게 심판하고 양심을 모질게 다져봐도 지난 일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외에는 유달리 끔찍한 죄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수치스러워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즉 라스콜니코프라는 인간이 운명의 어떤 맹목적인 선고에 따라 그토록 맹목적이고 허망하고 먹먹하고 어리석게 파멸했으며 만약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마음이 있다면 저 무슨 선고의 '어처구니없음'과 타협하고 그것에 굴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중략)

   '그래, 나의 행동이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그토록 추악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그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것이 악행이기 때문에? '악행'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나의 양심은 평온하다. 물론, 형사상의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법조항이 파괴됐고 피를 보았으니, 뭐 그렇다면 법조항에 대한 대가로 내 머리를 가져가시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그런 경우라면 권력을 세습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쟁취한 인류의 은인들 대다수가 최초의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처형됐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그자들은 그 걸음을 견뎌 냈고 그랬기에 그들은 옳았던 반면 나는 견뎌 내지 못했고 그랬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그 걸음을 허용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 즉 그것을 견뎌 내지 못하고 자수했다는 점에서만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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