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관절
“하는 일이 없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진료실은 또 하나의 해부실이 된다.
이번에 올라오는 것은 몸이 아니라 사회가 오래 써 온 문장이다.
아이를 키우고 어른을 돌보고 집의 리듬과 감정의 온도를 맞추며 하루를 버텨온 삶.
그 삶이 어느새 “없는 일”이 되어버린 언어.
손가락 관절이 휘어진 방향을 본다.
빨래를 짜던 손, 행주를 쥐고 수도꼭지와 싱크대를 닦던 손.
그 손가락은 진단명보다 먼저 반복된 시간을 말해준다.
어깨 통증의 좌우가 다르게 아플 때,
문진표에는 적히지 않는 한 줄을 떠올린다.
아이를 안았던 쪽, 잠든 몸을 들쳐 옮기고 넘어지지 않게 받쳐 들던 쪽.
무릎 연골이 닳은 모양에서도 부엌의 시간이 보인다.
쪼그려 앉아 채소를 다듬고 바닥을 닦고
낮고 좁은 공간에서 하루를 견디던 자세의 기록.
돈을 받지 않는 일은 일로 불리지 않는다.
대신할 수 없는 일은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 규범이 너무 깊어 사람은 결국 스스로 말한다.
“요즘 어디가 제일 힘드세요?”
허리, 무릎, 손목을 말하다가 곧바로 덧붙인다.
“다음주에 김장을 해야되는데....”
몸은 신호를 보내는데 의식은 그 신호를 가사 목록에 넣어 정리한다.
아픔보다 해야 할 일이 먼저 온다.
“제가 안 하면 누가 해요.” 진료실에 앉은 여성들의 말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래서 “아프다”는 말이 들릴 때, 나는 그것을 증상으로만 듣지 않는다.
이제야 꺼낸 늦은 허락처럼 들린다.
류마티스나 퇴행성 질환 통증과 만성 피로 뒤에는 오래 지속된 돌봄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그늘이 된 노동. 안쓰러운 것은 아픈 몸만이 아니다.
자신이 해온 일을 하찮게 말하도록 배워온 시간이다.
그래서 환자의 손을 볼 때 통증만 보이질 않는다.
휘어진 관절과 닳아버린 연골과 비대칭이 된 어깨 너머로,
그 손이 떠받쳐 온 집과 관계, 계절과 시간을 함께 본다.
진료란 병을 고치는 기술이면서, 이 한 문장을 조용히 돌려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은
“하는 일 없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해왔다고.
오늘은 처방약은
'쉼' TID * 365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