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대지의여왕] 대식세포

EP14 왕관의 무게

by 이지선

청소부에서 여왕으로

왕관은 태어날 때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구도 그녀를 여왕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길러지지 않은 자였습니다.


첫 번째 전장


세균과의 전투가 끝났습니다. 카야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이겼다!"

전장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카야의 시신. 터진 세균. 파괴된 조직. 혈액의 웅덩이.

승리자들이 떠났습니다.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생명은, 치운 다음에야 도착합니다.


조롱


마크레아가 왔습니다. 그 참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왜?"

지나가던 T세포가 물었습니다.

"네가 죽인 것도 아닌데."

"누군가는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일지도."

"더러운 일을."

"필요한 일을."

처음엔 비웃음이었습니다.

"시체나 먹는 것."

"청소부."

"전사도 못 된 겁쟁이."

마크레아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지는 말보다 먼저 일합니다.


첫 번째 포식


첫 번째 시신을 품에 안았습니다. 카야였습니다. 여섯 시간을 다 산, 그물을 펼친 채 굳은 전사.

"전사여, 너의 여섯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내가 증명하겠다."

포스파티딜세린의 신호가 보였습니다. 죽은 세포 표면에 나타나는 '나를 치워주세요' 신호.

수용체들이 응답했습니다. 필로포디아가 시신을 감쌌습니다. 조용한 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파괴자가 아니다. 나는 장의사다."


기록의 발견


시신이 세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포식소포 형성. 리소좀이 융합했습니다. pH 4.5의 산성 무덤.

카야는 천천히 풀렸습니다.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지방이 지방산으로. DNA가 뉴클레오티드로.

그런데—

"잠깐. 이것은..."

카야가 품고 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균의 조각.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있던 증거.

"이것이 네가 목숨 바친 이유구나."

그 조각을 꺼냈습니다. MHC II에 올렸습니다. 세포 표면의 '전시대'. 깃발처럼. 기념비처럼.

"카야가 싸운 이유. 카야가 죽은 이유. 내가 기록하겠다."


진정한 즉위


어느 날,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패혈증 직전까지 갔습니다. 시체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독소가 퍼졌습니다.

마크레아가 외쳤습니다.

"형제들이여!"

수백의 단핵구가 왔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보고 변했습니다. 대식세포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일할 시간이다."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시체를 치우고. 독소를 중화시키고. 항염증 신호를 보냈습니다.

IL-10 - 염증이여, 그만.

TGF-β - 폭풍이여, 잠재워라.

VEGF - 혈관이여, 새로 자라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이 돋아났습니다.

그날 밤. 늙은 T세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틀렸다. 그녀는 청소부가 아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여왕이다. 스스로 왕관을 쓴."

마크레아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여왕? 아니다. 저는 여왕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인가?"

"대지입니다 — 모든 것을 품는."


-


높은 왕좌가 아닌 낮은 대지

지배하는 자가 아닌 품는 자

왕관은 빛이 아니라 무게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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