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소녀의 기원
- 골수의 강에서
골수의 깊은 강.
작은 소녀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에게는 무기도, 왕관도 없었습니다.
단핵구. 백혈구의 5%. 혈액 속 2-3일만 머물다가 조직으로 들어가 대식세포가 됩니다.
한 소녀가 혈류를 따라 흘렀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카야들이 빠르게 스쳐 갔습니다.
"우리는 전사다! 여섯 시간의 영광!"
그들의 확신이 부러웠습니다.
"나에겐 이름조차 없다."
이틀째.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아직도 표류 중이었습니다. B세포가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려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모른다'고 말하기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셋째 날. 바람이 불었습니다. 사이토카인의 언어가 귀를 울렸습니다.
M-CSF: 흙이 되어라.
GM-CSF: 일하는 대지가 되어라.
IFN-γ: 불꽃이 되어라. 적을 태우는 대지가 되어라.
IL-4: 정원이 되어라. 새싹을 키우는 대지가 되어라.
각기 다른 목소리들. 하지만 지시어는 하나 — 대지.
"나는 하나가 아니구나. 나는 모든 가능성이구나."
조직의 문을 향해 헤엄쳤습니다. 내피세포가 속삭였습니다.
"정말 넘어올 거니? 돌아올 수 없어."
"안다. 하지만 가야 한다."
셀렉틴의 손이 잡았습니다. 구르고, 붙고, 떨어지고, 다시 붙었습니다. 인테그린이 단단히 껴안았습니다. 이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내피세포 사이의 틈. 몸을 얇게 펴 스며들었습니다.
조직에 발을 디딘 순간—
폭발.
세포질이 열 배로 팽창했습니다. 단핵구에서 대식세포로. 미토콘드리아가 수백 개로 늘었습니다. 리소좀이 우후죽순 생겼습니다.
표면에 수용체들이 돋았습니다.
스캐빈저 수용체 - 쓰레기 인식
Fc 수용체 - 항체 코팅된 것 인식
보체 수용체 - C3b 코팅된 것 인식
패턴인식수용체 - 세균 패턴 인식
천 개의 눈. 죽음을 보고, 위험을 알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눈.
거울 같은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작은 소녀가 아니었습니다. 위엄 있는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차가운 유리처럼 맑은 눈. 금속처럼 단단한 손. 바람처럼 유연한 움직임.
"마크레아."
이름이 먼저 그녀를 불렀습니다.
"대지의 여왕. 그것이 나다."
-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름도 무기도 왕관도 없이
하지만 조직에 들어선 순간
나는 대지가 되었다
다음 화: EP.18 왕관의 무게 - 청소부에서 여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