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계단이 파도처럼 들썩인다.
뛰지 않고 미끄러진다. 손잡이는 금속인데 피부처럼 따뜻하고, 표면의 볼록한 글자들이 손금 사이로 스며든다. 위로, 설명, 청구가 점자처럼 돋았다가 내 체온에 녹아 사라진다.
말이 손으로 들어오는 기분.
복도는 스프링처럼 감겨 있고 문들은 서로의 등짝에 겹쳐 달린다. 하나를 열면 바람이 통과하고, 다음 문은 모래시계 속으로 열리고, 그다음 문은 어젯밤의 내 호흡으로 열린다.
길이 꺾이는 순간 도시가 뒤집힌다. 자동차는 천장을 달리고, 보도블록은 별자리로 이어진다. 내 그림자는 네 갈래로 갈라져 서로를 앞지르고, 그중 하나가 뒤돌아 나를 본다.
"누가 먼저였지?"
먼지처럼 가벼운 비가 내린다. 물이 아니라 빛의 알갱이. 혀끝에 닿으면 쇠 맛이 난다.
내가 주머니를 뒤집어 하늘로 털자, 별들이 한꺼번에 업데이트된다.
지평선이 열리고 검은 말이 계단을 오른다. 갈기는 기차처럼 끝이 없고, 칸마다 새벽의 내가 하나씩 앉아 있다. 하나는 책을 읽고, 하나는 울고, 하나는 구두를 닦는다.
맨 끝 칸의 내가 창문을 열자 바깥은 극지방의 하늘, 오로라가 내 이름을 세로로 썼다 지운다.
물속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각자 투명한 상자를 탁자 위에 놓는다. 상자마다 밤이 들어 있다.
내 상자를 열자 동그란 것이 툭 튀어나온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손바닥에서 아주 작게 깜빡이는 원형.
달일 수도, 단추일 수도, 눈동자일 수도.
그 사이로 한 아이가 뛰어와 내 손에 작은 돌을 쥐여 준다. 돌은 속이 비어 있고, 빈 곳에서 파도가 잔잔히 돌아간다. 귀에 대고 들으면 아주 느리게 말한다.
"괜—찮—아."
끝났다고 생각하는 찰나 시작점이 다시 나타난다. 계단은 또다시 파도처럼 출렁인다. 이번에는 가만히 서 있어 본다.
파도가 나를 지나가고, 발바닥에는 모래가, 손바닥에는 원형의 감촉만 남는다.
7시. 알람이 울린다.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믹스커피 두 봉지를 머그잔에 털어 넣는다. 뜨거운 물을 붓고 저으면서 약통을 연다.
알약 두 개. 커피와 함께 삼킨다.
화장실. 세수. 양치.
옷장을 연다. 오늘도 똑같은 옷. 흰 셔츠, 검은 바지.
8시 50분. 병원에 도착한다.
대기 환자 명단을 눈으로 쭉 읽으며 이전 차트와 검사 결과를 심호흡 한 번에 몰아낸다. 핸드로션에 향수를 약간 섞어 바른다. 약통에서 알약 두 개를 더 꺼낸다. 삼킨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선생님."
"3번 환자 채혈 먼저 하고요, 7번은 X-ray 먼저 찍고 오라고 하세요."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