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
성벽이 숨을 쉰다.
회반죽이 심장처럼 수축한다. 철갑은 뼈와 맞닿아 있고, 망토는 혈관처럼 뒤로 늘어진다.
지평선이 끓는다. 검은 금속의 파도, 발걸음이 지진계의 바늘을 흔든다.
“발사!” — 성대가 아니라 갑옷이 외친다.
화살은 꽃이 되고, 꽃은 다시 일어나 걷는다.
쿵. 쿵. 쿵.
성문은 늑골처럼 진동한다. 돌덩이가 부딪칠 때마다 흉곽이 갈라진다.
부관의 얼굴이 내 얼굴이다. 계단이 나를 삼키며 나이를 빼앗는다.
검은 기사들의 원. 내가 아는 검법.
첫 번째—먹물이 터지고, 두 번째—거울이 쏟아지고, 세 번째—스스로 붕괴한다.
“멈춰라.”
공간이 비어 사람 모양을 이룬다. 투구를 벗자 내 얼굴.
“우린 같은 왕의 장기말.”
칼끝이 맞닿는다. 금속음이 아니라 뼈의 충돌.
갑옷은 끝없이 벗겨지나 안에는 또 갑옷.
마지막 일격, 두 검이 동시에 가슴을 관통한다. 공기만이 흐른다.
쓰러지며 본다. 모든 기사가 내 얼굴이다.
웃는 나, 우는 나, 잠든 나.
성벽은 약알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남는 건 텅 빈 평원, 주인 없는 갑옷들의 울음.
6시. 약통이 먼저다. 13년째 같은 맛.
남편은 면도 중, 전기면도기 소리가 곤충 날개짓 같다.
아이들의 아침은 전쟁이고, 병원 예약은 숫자로 목을 조른다.
“평생이요.” 환자에게 건넨 단어가 나에게도 무겁다.
심평원의 전화, 삭감 통지. 컵라면. 제약사 미팅.
48명의 환자와의 하루, 그리고 저녁 자리.
“가끔은 그만두고 싶어?” 남편이 묻는다.
“나도.”
경계 노트
우리는 매일, 벗을 수 없는 갑옷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