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이후, 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소설 이후.

by 이지선

내게, 왜 교수가 못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논문'을 못썼으니까 라고 답할 것이다.

여타의 ENTP처럼 계획이 있으나 말이다.


나는 47년간, 혹시라도 글을 쓸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글은 기록이나 설명, 혹은 환자에게 전하는 안내문 같은 것이었다.

진료실에서 쓰는 문장은 정확해야 했고, 단정해야 했다.

거기에는 마음은 주가 아닌 부였던것 같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늘 마음속에서만 부유했다.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

빛이 닿지 않는 곳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것들은 낌새조차 내지 않았지만 나를 추처럼 달아 매고 있었고,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어느 날, 그 깊은 곳을 한 편의 글로 꺼냈다.


시도는 몇차례 했지만

그렇게 앉아 시작한다는 자체도,

혹시 꾸미기라도 하려면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 같았고,

무너질까봐라도

시작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써냈다.

그 글은 깊은 심해에 웅크린 나 자신같이 눅눅했다.


쓰고 난 뒤, 나는 알았다.

숨을 쉬듯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숨이, 나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을.

그 이후 글이 멈추지 않았다.


짧은 이야기로, 시로, 산문으로 계속 흘러나왔다.

어떤 글은 모퉁이를 돌던 한 사람의 이야기였고,

어떤 글은 누군가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주는 시였다.

진료실에서의 하루를 담기도 했고,

꿈에서 본 장면들을 붙잡아 두기도 했다.

그 모든 글은 서로 닮지 않았지만,

내 안의 깊은 곳에서 같은 숨으로 올라왔다.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씩 떠올랐다.

글은 나를 떠오르게 하는 부력이 되었고,

무너질 듯 휘청이는 날에도

다시 서게 하는 작은 근육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완벽하게 글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내 안의 어둠과 빛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숨을 쉬듯,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그 숨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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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전 내놓지 못하는 아버지의 부재에 관한 [심해] 라는 자전적인 글을 썼습니다.

제게는 그래도 작은 세레모니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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