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오년째 되는 사십대 엄마.
"손가락이 아파서... 딸 머리를 못 땋아줘요."
검사 수치를 보려던 손이 멈춘다.
"애가 유치원에서 다른 애들은 엄마가 예쁘게 묶어준다고..."
그녀의 '아파요'는 관절의 염증이 아니다.
엄마라는 정체성의 균열이다.
나는 처방전을 내려놓는다.
"더 들려주세요." 반 시간이 지난다.
다음 환자들이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듣는다.
젓가락질이 어려워진 날,
김치를 담그지 못한 날,
아이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날.
그녀의 부서진 서사를 듣는다.
"선생님, 저 이상한 환자죠? 병원 와서 이런 얘기나 하고..."
"아뇨. 이게 진짜 진료예요."
그날 처방전엔 약 이름 외에 다른 것을 적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오후 5시. 이야기 반시간.' [우선 대기가 없을때 오시도록]
보험 코드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처방이다.
나는 치유자에서 증인이 되었다.
부서진 삶의 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