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저녁 6시.
마지막 환자가 나간다.
"선생님, 감사해요."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 묻지 않는다.
나는 가운을 벗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복도를 걸으며 오른쪽 무릎이 뻐근함을 느낀다.
퇴행성 관절염 초기.
의사도 환자가 된다.
나도 누군가 앞에서 "아파요"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약국 앞을 지난다.
진열대에 내가 처방한 약들이 보인다.
메토트렉세이트, 프레드니솔론... 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약들.
오전에 진료한 딸의 엄마는 아픈손으로 딸의 머리를 묶고 있을 것이다.나도 상상만하며 웃는다. 집에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한계는 넘는 게 아니라 안고 가는 거였다.
나는 매일 산을 오른다.
환자들과 함께.
각자의 돌을 밀며.
치유자에서 동행자로,
동행자에서 증인으로,
증인에서 사제로,
사제에서 다시 인간으로.
그것이 의사가 걷는 길이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걷는 길이다.
내일 아침 8시 50분.
나는 다시 옷 소매를 걷어올린다.
손을 씻고, 장갑을 끼고, 첫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한다.
"선생님, 저 아파요."
그리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네, 들려주세요. 오늘은 어떤 돌을 함께 밀까요?"
시시포스는 행복했다고 들었던거 같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돌을 민다.
때로는 바꿔 밀고,
때로는 함께 밀고,
때로는 돌 위에 앉아 쉰다.
그것이 삶이다.
한계를 품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