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봉
아침 첫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출장을 다녀오느라 한 달 동안 병원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 한 달 동안 그는 진통소염제를 스스로 챙겨 먹으며 버텼지만 밤마다 허리와 엉덩이가 욱신거려 잠을 설쳤다고 했다.
그는 강직성척추염 환자였다. 증상은 이미 충분히 심했고, 생물학적 제제를 시작해야 할 때가 분명했다. 하지만 제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이번에 시작할 수 있나요?"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묻어 있었다.
나는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결국, 제도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한 달 동안 병원에 못 오셨잖아요. 그 공백 때문에 이전 기록이 다 끊겼습니다. 다시 진통소염제를 3개월 '연속' 복용한 기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의 눈빛이 서서히 굳어졌다.
"다시… 세 달이라고요?"
목소리가 낮았지만, 그 안에 울음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말도 결국 변명일 뿐이니까.
그가 진료실을 나간 뒤, 나는 또 다른 환자를 떠올렸다.
혈청음성 류마티스관절염 환자. 그 환자도 생물학적 제제를 꼭 써야 하지만 산정특례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
같은 약을 쓰고, 같은 통증을 겪고 있지만 혈액검사 한 줄의 결과로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누군가는 그 문턱조차 밟지 못한다.
같은 병, 같은 약, 같은 통증. 그러나 제도는 그들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취급한다.
진료실은 두 개의 세계로 갈라져 있었다.
환자의 절박한 세계와
제도의 냉혹한 세계.
나는 그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제도의 심부름꾼이었다.
환자의 말은 내 귀를 스쳐 지나가고, 내 입에서는 제도의 말만 흘러나왔다.
"규정이 그렇습니다."
"승인을 받으려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제도가 내 입을 빌려 한 말이었다.
나는 단지 그 말을 전할 뿐이었다.
카프카의 「법 앞에서」가 떠올랐다.
시골 사람은 법의 문 앞에서 평생을 기다리다 죽는다. 문지기는 끝까지 그를 들여보내지 않는다. 죽어가는 그에게 문지기가 말한다. "이 문은 오직 너만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문지기였다. 환자들의 문 앞에 서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막고 있는.
문틈 사이로 아주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그 빛을 붙잡을 수 없다. 그저 문을 지키는 비운의 꼬봉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문을 닫아버리면, 저 문을 두드리는 환자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 있다. 제도와 환자 사이, 그 좁은 틈에 끼여.
시시포스가 바위를 밀듯 나는 문을 지킨다. 영원히 열리지 않을 문을.
그것이 나의 부조리다. 그것이 나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