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에 실패하는 사람

사춘기 아들들

by 이지선

HSP(Highly Sensitive Person). 누군가 내 예민함에 'HSP'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여전히 너무 많이 느끼고, 거리두기에 실패하고, 사춘기 아들들의 닫힌 방문 앞에서 서성인다. 귀를 대지 않아도 안쪽의 침묵이 들린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거리다. 나는 그 거리를 줄 수가 없다.


예민한 사람은 공기의 밀도까지 읽어낸다. 아침 식탁에서의 침묵, 방문 닫는 소리의 미묘한 강도 변화, 고개 숙인 각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들이 온몸의 안테나로 수신된다.


어머니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괜찮아? 무슨 일 있어?"

그러면 아들이 말한다. 침착하게, 단호하게.

"엄마,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한다고.


그 말이 가장 아프다. 왜냐하면 그 말이 맞으니까. 아이는 정말로 알아서 할 것이다. 알아서 해야 한다. 나는 물러나야 한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물러서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주변의 모든 신호가 들려오는데 어떻게 못 들은 척할 수 있나. 모든 감정이 파동처럼 밀려오는데 어떻게 못 느낀 척할 수 있나. 예민함은 스위치가 아니다. 끄고 켤 수 없다.


요즘 가장 어려운 화두는 이것이다: 어떻게 감각을 둔화시키지 않으면서 거리를 둘 것인가.

느끼되, 개입하지 않기. 알되, 침범하지 않기. 사랑하되, 놓아주기.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말 속에 담긴 것은 거부가 아니라 독립의 선언이다. 하지만 예민한 어머니에게 그 둘은 구분이 안 된다. 아이가 멀어지는 것과 아이가 자라는 것의 차이를. 상실과 성장의 경계를.


예민한 내게 누가 이름을 붙여줄 줄이야.

이름이 있어도 나는 여전히 너무 많이 느끼고, 너무 많이 걱정한다. 아들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할 때마다 한 발짝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거리두기.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두기.


그것이 예민한 사람이 평생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느끼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거기 머무르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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