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심해
일요일 오후 네 시.
남편은 자전거를 타러 나갔고, 큰아들은 소파에서 휴대폰을 뒤적인다. 숙제는 내일부터란다. 둘째는 일렉기타를 몇 번 튕기더니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두 마리 강아지는 천천히 온도를 낮추며 낮잠을 즐긴다.
나는 거실의 큰 책상에 앉아 오후 햇살을 통째로 받아낸다. 남서향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길고 따뜻하다. 노트북, 투명한 연필꽂이, 이중 유리컵에 담긴 라테. 이 물건들이 만드는 경계와 균형을 오늘 처음 본다. 가습기에서 나온 습기가 햇살과 만나 잠시 보인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빛 속에서 제 모양을 드러내는 시간.
어떤 소리도 날카롭지 않고, 어떤 숨도 무겁지 않다.
라테 잔의 거품이 가라앉으며 층위를 만들어내듯 내 안의 숨도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는다. 가라앉는다는 것이 꼭 부서지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한때 심해는 늘 위험의 장소였다. 한 번 내려가면 다시 떠오르기 힘든 곳. 빛이 닿지 않고, 자기 자신조차 보이지 않는 수심. 그곳에는 너무 오래된 것이 가라앉아 있었다. 되돌아보면 가슴이 저미는, 그래서 들추지 않기로 한 것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빛과 어둠이 얇게 겹치는 이 깊이에서, 나는 잠시 머물러도 괜찮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이 반음계 같은 수심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호흡을 의식한다. 이곳은 파괴의 바닥이 아니라, 나를 조용히 떠받치는 내면의 수조다.
올해 7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오래 묵은 심해의 물을 퍼내는 줄 알았다. 묵은 것들을 덜어내면 가벼워질 거라고, 바닥이 드러나면 하나의 끝이 나타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글은 물을 덜어낸 것이 아니라 그 깊이를 버티는 새로운 폐를 만들어주었다.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숨 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깊이로 내려가도 숨이 막히지 않는 몸, 심연을 견디는 호흡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그때부터 나는 가벼워졌다. 가라앉으면서도 떠오를 수 있는 몸. 내 삶의 비밀은 수면 위가 아니라 이 왕복 운동 속에 있었다.
문득, 이 오후의 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각자의 섬이 같은 바다에 떠 있다.
남편이 달리는 도로, 큰아들이 스크롤하는 화면 속 세계, 둘째가 풀어가는 문제들, 강아지들이 꾸는 낮잠의 꿈, 그리고 내가 헤엄치는 이 조용한 심해.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려 하지 않는 예의와, 들어오라 강요하지 않는 배려 사이에서 각자의 섬은 저마다의 물결을 가진 채 떠 있다.
그러나 완전히 흩어져 있지도 않다. 같은 집을 공유하고, 같은 햇살이 기울고, 같은 시계가 움직이는 이 오후의 바닥에서 우리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서로의 맘속 피곤함은 들추지 않으면서 간식장은 함께 채우는 사이.
이 평화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일시적이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낀다.
오늘 오후의 깊이는 이제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어둠이다. 누군가 말했다. 심연을 바라볼 때 심연도 우리를 바라본다고. 한때 그 시선이 무서웠다. 들여다보면 삼켜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안다. 심연은 피할수록 강해지고, 마주할수록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그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다만 약간 떨리는 숨으로, 끝까지 마주 서본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 속에서 나는 그 조용한 심해를 천천히 헤엄친다.
떠오를 가라앉음.
가벼운 침잠.
일요일 오후 네 시, 아쉬울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