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엄마
나는 어렸을 적부터 누가 쓴 쪽지를 버러지 못한다.
나에게 쓴 내용이라면
그리고 그 내용이 너무나 사소하다고 하여도.
그깟 종이쪼가리이지만 나에겐 큰 선물이 되고
그 선물은 곧 추억이 된다.
설 명절에 미국을 다녀온 나에게
제주도에서 세뱃돈이 날아왔다.
봉투 겉에 꾹꾹 눌러쓴 할머니의 글씨만 보아도
그 마음의 크기를 난 알 수 있다.
그 안에는 30만 원이 들어있었고
감사한 마음으로 ATM기에 바로 달려간 나는
역시나 저 봉투를 버리지 못한다.
사실 처음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봤지만
할머니의 글씨체 때문이었을까.
저 짧은 말 한마디를 쓰시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간다.
그 모습이 연상돼서일까.
내가 어릴 때 엄마와 아빠는 출장이 잦으셨다.
그래서 난 사실 어릴 적 엄마아빠와의 기억이 거의 없다.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과의 추억이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어린아이에겐 너무나도 양이 많았던 밥 한 공기는
가혹함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하던 말씀은
잔소리가 아닌 걱정이었다.
엄마 대신 나에게 한글과 구구단을 가르쳐 준 이모.
살 건 없지만 일단 가보자는 말 한마디만으로
문방구에 나를 데려가 장난감을 사준 삼촌.
어쩌면
그 모든 기억들이
연상돼서일까.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의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