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 중 "우리 애는 하면 잘하는데, 안 해요."라는 말이 있다.
물론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으며,
조금은 원인재공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학창 시절에
이 얘기는 조금 귀 따가운 얘기이기도 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부끄러운 이야기고 하나는 제법 자랑거리인 이야기 이기도 한데,
오늘은 자랑거리 같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부끄러운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해볼까 한다.)
때는 내가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때의 일이다.
나는 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갖고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당연
성적도 좋지 못한, 어딜 가나 있는 공부 못하고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돌리셨지만, 성적이 올라가기보다는
친구수만 늘려가는 그런 흔한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학원에서 우리 학교 전교 2등 친구와 친해졌다.
이 친구는 지금 생각해도 공부에 대한 자부심과 승부욕도 굉장히 강한 친구였다.
머리숱이 너무 많아 스포츠머리로 깎아도 두피가 새파랗게 보일만큼 빼곡하다고 하여
별명은 '파란 대가리'였다. 이 친구는 운동을 못했다. 그래서 늘 전교 1등을 못한다고
생각했으며, 전교 1등 친구를 장난반 진심반으로 시기하고, 미워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놀 때 혼자 체육 실기를 연습하고 있을 만큼
공부에 진지 했던 친구이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2학기 마지막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그렇게 나의 친구 '파란 대가리'는 학번도 전교 1등을 못해 봤다고,
이렇게 중학교 시절을 마무리할 수 없다며, 나에게 울분을 자주 토했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전교 1등 친구는 과학고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수학/과학 과목만이라도 앞질러서 백분율을 떨어뜨려 곤란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친구의 얘기는 나에게 제법 흥미롭게 들리기 시작했고,
그 길로 나는 '파란 대가리'의 도움을 받아 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수학만큼은 그 당시 나에게는 그나마 제법 괜찮은 성적의 과목이었다.
순수한 악의와 장난기로 가득 찬 10대 시절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 면모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전혀 부정행위 없이,
그렇게 나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수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아직도 내 친구 '파란 대가리'가 내 수학 성적을 보며 기뻐 방방 뛰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이 일은 내 생각보다 훨씬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었다.
뭐, 불행 중 다행이라면, 커닝이나 부정행위는 애당초 성적에 미련이 있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기 때문이기에, 평소의 나의 행실을 익히 다들 아시고 계셔서 인지,
선생님들이 나를 의심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어떻게 아셨는지, 수학과목 선생님만이 나를 참으로 못살게 굴며, 공부시키시려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의 성적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여전히 몇십 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가끔 그때 일을 회상하시며,
나를 확실히 잡아 공부를 시켰어야 했다고 말씀하시고는 한다.
원인재공자 입장에서는 이 일에 대해 그다지 할 말은 없다.
지금생각해 보면 살면서 언제 만점이라는 것을 받아 보겠나?,
재밌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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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인 것은, 내 만점과 관계없이, 당시 전교 1등 친구는 과학고에 무사히 입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