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생각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는 조금 부끄러운 얘기를 해볼까 한다.
학창 시절 나는 자잘한 말썽을 참 많이 피웠다. 그 덕에 나는 이런저런 벌들을 참 많이도 받았다.
(하지만, 결코 불량하거나 반항 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단지 좀 짓궂고 산만했을 뿐...)
그중 속칭 '깜지'라고 하는 벌이 있다.
교과서를 그대로 베껴 노트에 빼곡하게 적는 벌인데,
나는 학교에서 혼나고는 집에 돌아와 이런 '깜지'를 곳 잘 쓰고는 했다.
그날도 짓궂은 장난으로 '깜지'벌을 받고는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서 열심히
교과서를 베끼고 있었고, 그 교과 과목은 바로 '국어'였다.
국어교과서에 있는 어떤 소설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4~5페이지 정도의 단편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깜지를 빽빽하게
베끼고는, 실수로 교과서만 챙기고 '깜지'를 내방 책상 위에 펼쳐둔 채 등교를 한 것이다.
그렇게 '깜지'를 집에 두고와 학교에서는 혼이 났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혼나고 벌 받는 일이야, 그 시절 내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쓰다가 펼쳐 놓은 '깜지'를 어머니께서 보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것이 벌인 줄 모르시고,
나의 노트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교과서에 실릴 만큼 대단한 단편 소설을
읽어보시고는 그 글이 내가 지은 글이라고 착각하신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며,
동네 이웃들에게 내 노트를 들고 다니시며 자랑을 하셨던 모양이다.
교과서에 실릴만한 대단한 단편 소설을 학생이, 그것도 본인의 아들이
지었다고 생각하셨으니, 얼마나 신이 나셨을까...
그리고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귀가한 나를 어머니께서 부르셨다.
"글 쓰는 게 재미있니?"
"(응?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네에? 무슨 글이요?"
"네 책상 위에 네가 쓴 글 엄마가 좀 봤어."
"아, 그거? 아니 그냥 별거 아니에요, 히히,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아냐, 아주 잘 썼던걸, 네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줄 몰랐네..."
"네에??"
"네가 글 쓰고 싶다 하면, 엄마가 도와줄 거야."
"...... 응 그럴게요."
당시 나는 도무시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고, 벌 받은 일을 솔직하게 말씀드려,
어머니께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흐지부지하게 넘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직 그 일을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 어머니는 그 사건의 '진실'을 모르신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우리 애는 하면 잘하는데, 안 해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었다.
뭐 아들이 대문호가 되는 꿈이라도 꾸셨을까?
그도 그 나름 즐거운 꿈이었을 것 같은데, 나는 조금 짓궂지만, 이 일을 한 동안 더 비밀로 간직하려 한다.
"어머니, 즐거운 꿈은 꾸셨나요?"
"애석하게도 아들은 대문호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의 진짜 글들을 보여 드릴게요"
"그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