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준생 Jul 12. 2024

"우리 애는 하면 잘하는데, 안 해요." (後)

일상의 생각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는 조금 부끄러운 얘기를 해볼까 한다.


학창 시절 나는 자잘한 말썽을 참 많이 피웠다. 그 덕에 나는 이런저런 벌들을 참 많이도 받았다.

(하지만, 결코 불량하거나 반항 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단지 좀 짓궂고 산만했을 뿐...)

그중 속칭 '깜지'라고 하는 벌이 있다.

교과서를 그대로 베껴 노트에 빼곡하게 적는 벌인데,

나는 학교에서 혼나고는 집에 돌아와 이런 '깜지'를 곳 잘 쓰고는 했다.


그날도 짓궂은 장난으로 '깜지'벌을 받고는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서 열심히

교과서를 베끼고 있었고, 그 교과 과목은 바로 '국어'였다.

국어교과서에 있는 어떤 소설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4~5페이지 정도의 단편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깜지를 빽빽하게 

베끼고는, 실수로 교과서만 챙기고 '깜지'를 내방 책상 위에 펼쳐둔 채 등교를 한 것이다.


그렇게 '깜지'를 집에 두고와 학교에서는 혼이 났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혼나고 벌 받는 일이야, 그 시절 내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쓰다가 펼쳐 놓은 '깜지'를 어머니께서 보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것이 벌인 줄 모르시고,


나의 노트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교과서에 실릴 만큼 대단한 단편 소설을

읽어보시고는 그 글이 내가 지은 글이라고 착각하신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며,

동네 이웃들에게 내 노트를 들고 다니시며 자랑을 하셨던 모양이다.

교과서에 실릴만한 대단한 단편 소설을 학생이, 그것도 본인의 아들이 

지었다고 생각하셨으니, 얼마나 신이 나셨을까...


그리고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귀가한 나를 어머니께서 부르셨다.


"글 쓰는 게 재미있니?"

"(응?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네에? 무슨 글이요?"

"네 책상 위에 네가 쓴 글 엄마가 좀 봤어."

"아, 그거? 아니 그냥 별거 아니에요, 히히,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아냐, 아주 잘 썼던걸, 네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줄 몰랐네..."

"네에??"

"네가 글 쓰고 싶다 하면, 엄마가 도와줄 거야."

"...... 응 그럴게요."


당시 나는 도무시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고, 벌 받은 일을 솔직하게 말씀드려,

어머니께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흐지부지하게 넘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직 그 일을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 어머니는 사건의 '진실'을 모르신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우리 애는 하면 잘하는데, 안 해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었다.


뭐 아들이 대문호가 되는 꿈이라도 꾸셨을까?

그도 그 나름 즐거운 꿈이었을 것 같은데, 나는 조금 짓궂지만, 일을 한 동안 더 비밀로 간직하려 한다.


"어머니, 즐거운 꿈은 꾸셨나요?"

"애석하게도 아들은 대문호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의 진짜 글들을 보여 드릴게요"

"그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라요."

작가의 이전글 "우리 애는 하면 잘하는데, 안 해요." (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