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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Jan 31. 2024

한 겨울의 벌레 지옥

일상의 생각

차를 마시는 것 외에도 나는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감상이나 게임 같은 누구나 즐기는 취미 외에도, 독서, 오래된 레트로 제품들을 수집하는 취미와 다육이를 키우는 취미가 있다. 다육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점은 키운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알아서 잘 큰다. 너무 커지면 화분갈이를 해주거나, 적당히 뚝 잘라 빈 화분에 옮겨 심으면 또 빈 화분에서도 잘 자란다. 물도 한 달에 한번 정도 주면 되는데, 이마저도 비가 자주 오면 생략해도 된다. 그나마 주의사항이라면, 너무 뜨거운 직사광을 피하거나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 정도.


물론 전문적으로 다육이를 키우시는 분들이 본다면, 혀를 내두를지 모르지만, 우리 집의 다육이 들은 이렇게 나의 무관심 속에 잘 자라나고 있다. 내 방은 옥탑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방 밖의 옥상에서 키우고 있다가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 오면 내 방으로 들여놓게 된다. 아무리 강인하게 키웠다고 해도, 역시 겨울철을 버티기는 힘드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몇 해째 겨울철 내방은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이며, 흡사 만물상 같은 분위기까지 풍기기도 한다.


작년까지는 좁다는 것 외에는 다육이와 생활하는 것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아마도 지난가을쯤 이름 모를 벌레가 다육이나 화분의 흙에 알을 낳아 놓았었던 모양이다.

아직 봄도 아닌데, 내 방이 아무래도 실외보다는 따뜻하다 보니, 작은 벌레들이 봄을 착각하고 알에서 깨어난 듯하다. 1mm 정도 되는 작고 시커먼 날벌레들이 내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나는 상당히 무던하고 귀찮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날파리 한두 마리 정도는 특별히 귀찮게 하지 않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이 녀석들은 다르다. 알에서 막 깨어 나와 세상 무서운 것을 모르는 것인지, 내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티브이에 다닥다닥 붙어 기어 다니며, 중요한 장면에 주인공 얼굴에 붙어 몰입을 방해하는가 하면, 차를 마시려고 차를 우리고 있으면 차속으로 돌진, 입수하는 경우도 있다. 도무지 참을 수 없다. 한 겨울에 창문을 닫고 에프킬라를 뿌릴 순 없는 노릇이니, 벌래 퇴치에 도움이 된다는 인센스 향도 피워 봤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보이는 족족 손가락으로 눌러서 잡고는 있는데, 이것 역시 한도 끝도 없다.


이렇게 손가락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일사마 잡다 보면 족히 하루에 10마리 이상을 잡고 있다고 봐도 크게 과장된 것은 아니다. 하다못해 수많은 화분 중에 어디에서 나오는지나 알면 그 화분을 조치를 할 텐데, 출처조차 아직 추적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름 모를 작은 벌레가 어떠한 성채로 성장할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벌레로 성장할까 봐 두려울 때도 있다. 하루빨리 따뜻한 봄이 와 화분을 내놓고 싶다. 올해 처럼 이렇게 다른 의미로 봄을 애타게 기다린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내년에는 방안에 들이기 전에 꼭 살충제 작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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