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준생 Jan 26. 2024

돌아온 내 친구 '샹나'

일상의 생각

오늘은 오랜만에 아주 반가운 친구를 만나고 왔다.

'샹나'는 5년 전 어느 날이고 갑자기 안면도에서 마카롱을 만들겠노라며, 

잘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훌쩍 떠났다. 며칠뒤 오픈했다며 보내준 바다가 보이는 카페는 몹시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샹나와 내가 처음 만난 건 아마 고등학교시절 화실에서였다. 나는 당시 미대입시를 준비한답시고, 

겉멋만 잔뜩 들어 동네 화실을 기웃거리던 중, 옆 미술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회식 자리의 셀러리맨처럼 반쯤 풀어헤친 교복 넥타이, 유독 학구적인 안경, 그림을 그리는 건지 뭔가를 때려 부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과격한 몸짓, 다부진 어깨와 푸짐한 복부, 동나이로 생각되지 않는 얼굴.

종합적으로 절대 예술개통과는 무관할 것 같아 보이는 모습. 그것이 '샹나'였다.


그가 샹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의 입버릇 때문이다.

'썅! 나도 -하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문제는 그가 이 말을 문자로 옮겼을 때,

'샹나도-하고 싶다!'라고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샹나가 누군데?'라고 놀리던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그는 '샹나'라고 불리운다.

 

유독 자판기 커피를 입에 달고 살던 고등학생 '샹나'

이 친구의 재밌는 점을 서술하라면 A4용지 양면 3장은 족히 쓸 자신이 있지만, 이쯤 하도록 하고

 샹나와 나는 이유 없이 그냥 친했다. '친해졌다'라고 하기도 애매할 만큼 처음부터 친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가 안면도로 가던 날까지 우리에겐 모든 일이 서로의 놀림거리였으며, 

모든 비밀이 웃음거리였다. 너의 가족이 나의 가족이기도 했다.


그런 나의 형제와 같은 친구는 안면도라는 안면도 없는 땅에서 홀로 쓰디쓴 인생의 쓴맛을 맛보고 

돌아온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을 하던 중 멀리서 샹나가 왔다. 

백수 주제에 서울에 오자마자 눈썹문신을 하고 왔다고, 머쓱해하며 웃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입에서 그간 잊고 살았던 온갖 육두문자들이 폭소와 함께 튀어나왔다.

 

우리는 그간 쌓였던 이야기를 작은 술잔 가득 풀어냈다.

그가 그곳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와 돈얘기, 빚얘기, 개인회생 얘기, 사업얘기... 무거운 듯하나, 

이 또한 우리에겐 그저 한 낯 놀림 꺼리며, 웃음거리였다.


나 : "내 요즘 차를 좀 우려 마시거든, 언제 한 번 집에 들르라, 내 네게 차 한잔 대접 하마!"

샹나 : "네놈 치고는 제법 고상한 취미다"

나 : "네가 안면도에 기어 들어가, 과자 굽는 건 안 고상하고??"

샹나 : "큭큭.. 내 그래서 돌아왔잖아~"


인생이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고들 하지만, 그사이에 반가운 재회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머쓱하여 얘기 못했지만, '잘 돌아왔다 나의 형제여, 나는 퍽이나 너와 나누는 대화가 그리웠단다.'

작가의 이전글 샐러드 대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