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발걸음 걷기 (느림) 걸음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이래저래 약속도 큰 행사도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연말이 오기 전에 꼭 참석해야 했던 약속과 행사들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고, 그 사이에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연말 약속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현제,

이런 밀물과 썰물 같은 약속과 행사들 사이,

잠깐의 텀이 생겨 예전부터 생각만 하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예전부터 걷는 것은 자신 있었다.

등산도 좋아할 뿐 아니라

나름 운동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기에

최대한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걸어서 여행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 나의 생각이 심각한 오판이었다고,

한 낱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만심이었다고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명 족히 빠른 걸음으로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그런 곳을 장작 2시간이 가까워서야 도착했다.

여행지에서의 1시간은 참으로 아깝기 그지없다.

이런저런 풍경을 눈에 담고 기억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며,

추후 일정까지 모두 늦춰지며, 최악의 경우 몇몇 일정을 취소해야 될 수도 있다.

물론 길을 몰라 조금 헤맨 것도 있지만,


그래도 1시간이나...


여행지에서는 헤매는 일 또한 나름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계획하지 않았던 풍경을 마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시간씩이나...

그 덕분에 시간은 물론이요, 가뜩이나 두껍게 입어 다소 부대꼈던 나의 옷들이 땀으로 젖어 찝찝해졌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찝찝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옷을 갈아입겠노라고 숙소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찝찝함을 참으며 움직이기로 한다. 어차피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는 이곳, 이 여행지에서 뭐 조금 땀냄새가 난들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혹시나 만약에. 라도 진짜 땀냄새가 난다면, 조금은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 찝찝함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긴다.


핸드폰에 지도를 보며, 다음 행선지까지

택시라도 탈까 고민하는 사이,

내 발걸음은 이미 다음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걷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예전보다는 조금 느려졌을지 모르지만...


'일정 몇 개 내일로 미루지 뭐...'


그저 지금은 부디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

내일 아니, 바라건대 내 여행기간 동안은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좋든 싫든, 빠르던, 늦던 걸을 수 없으니,

부디 내일도 이렇게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헤매더라도 조금만 헤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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