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이름에 대한 푸념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이름, 나의 이름, 나의 친구의 이름, 나의 가족의 이름,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 내가 사는 도시의 이름...

우리나라는 비교적 이름이 단순하다.

절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어쩌면 그저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고 객관적으로 고민해 봤지만,

다시 생각해도 역시 우리나라의 이름은 단순하다.

우리나라 역시 한자 문화권이기에

때로는 한 이름이 여러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은 단순하다.


무척이나 대단하고 멋진 일이다.


뜬금없이 이름 타령을 하는 이유는 최근 읽고 있는 책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도 이 이름 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하며 읽은 책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 역사소설 <대망>이다.

과거 워낙이 <삼국지>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일본 역사 소설 <대망>에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었다.


<대망>역시 <삼국지>가 그러하듯 전쟁이 끊이지 않던 전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세어 보진 않았으나,

채감상 <대망>의 등장인물이 훨씬 많게 느껴지며, 그뿐만 아니라

<삼국지>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한자의 음을 우리나라 식으로 그대로 읽는 방식이기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길어야 4자 이내로 끝난다.

(물론 대망도 이러한 방식으로 쓰여진 버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망>은 아니다.

쉽게 매우 잘 알려진 등장인물들만 살펴봐도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등

발음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려 10자에 가까운 이름들이 빈번하다.

더군다나 <대망>은 <삼국지>와 달리 쇼군의 딸, 즉 공주에 대한 얘기도 중요하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서사 및 관계가 더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게 이게 누군지, 저게 누군지 한참을 책장을 뒤적이며 읽었던,

그렇기에 이 <대망>이라는 소설은 내게 있어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저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대망>을 한 번 다 읽은 것만으로

나 스스로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아마도 그때부터 등장인물들이 많은 타국의 역사소설들을 좀 멀리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대망>의 악몽을 요즘 다시 겪고 있다.

그 시작은 최근 지인으로부터 책한 권을 선물 받게 되면서였다.

이 작품은 중앙 유럽 체코를 비롯한 폴란드, 오스트리아에 관련된 작품이었으며,

정확한 시대적 배경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내용으로 봐서는 대충

1차 세계대전 전후 일 것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그때의 오스트리아가 가장 시끄러웠을 테니...)

책의 한 문장만 예를 들어 보자면,


[게오르크 카프리르시 폰 술라비체는 그 남자를 모이세스 혹은 에이시크라고 불렀다.]


<대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지명만으로 책의 한 줄을 거뜬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령 A 가문의 아들 AA 가 B 가문의 딸 BB와 결혼한다고 치면,

이 단순한 내용만으로도 이미 3~4줄은 거뜬히 넘길 수도 있다.

하물며 이런 등장인물들의 행적까지 기억하며 책을 읽는 것은 굉장히 머리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번 앞장을 들춰 가며 읽어 나아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의 친구들의 이름이 '게오르크 카프리르시 폰 술라비츠'아니라는 것에,

또 나아가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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