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생각
요즘은 해외축구의 팬들이 참 많다. 다들 국내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튼햄, PSG, 뮌헨 같은 팀들은 물론이요, 세계적인 명문 클럽들을 응원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특이하게도 이탈리아 세리아 A의 중상위권의 팀 '피오렌티나'를 아주 오래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한창때인 대학생시절에는 새벽에 하는 경기를 보려고 알람을 3~4개나 맞춰 놓는 생활도 할 정도였다. 이제는 피곤해서 가끔 쉬는 날 시청하거나,
짤막한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는 정도가 되었지만, (나이가 들면 '덕질'도 이렇게 힘들다.) 여전히 나는 이 팀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가끔 다른 해외 축구팬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피오렌티나'를 가장 좋아한다고 얘기를 하면, 꼭 "거기 잘하는 선수 누가 있어요?"라는 물음이 돌아온다. 누구라고 선수 이름을 얘기해 줘도 보통 잘 모른다. 현제 '피오렌티나'는 그 정도의 팀이다. 해외축구팬들조차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그런 팀.
내가 이런 피오렌티나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내가 꼬마였던 시절 친구집에 있는 컴퓨터 축구게임을 하러 자주 놀러 갔었다. 그 당시 선수는 잘 몰라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축구를 잘하는 국가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나는 노란색의 브라질 보단 파란색의 아르헨티나가 더 좋았다. 그리고 그 아르헨티나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갈색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대포알 같이 강한 슈팅을 쏘아붙이며, 기관총을 난사하는 듯한 특유의 골 세리머니를 보여주었었다. 그 선수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그 선수는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멘티스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였고, 그런 그가 속해 있는 클럽이 바로 '피오렌티나'였다. 또한 그 당시 피오렌티나는 바티스투타를 비롯해 여러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명문 클럽이었고, 축구유니폼 치고는 특이한 보라색을 홈 컬러로 사용하며,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의 도시 피렌체를 연고지로, '백합'이라는 별명을 가진 팀이기도 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명품 구두 브랜드 '토즈'의 회장일가인 델라발레 가문이 운영하는 클럽이었다. (현제 구단주는 바뀐 상태이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예술적인가. 이러한 팀의 레전드 스트라이커인 '바티스투타', 그 당시 소년은 이 팀과 이 선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피오렌티나의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바티스투타를 그리 오래 보진 못했다. 팀의 재정 문제로 결국 바티스투타는 팀을 떠나야 했고, 결국 리그경기에서 적으로 만난 바티스투타와 피오렌티나. 바티스투타는 실력에 걸맞게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골을 터뜨렸고, 그는 그날 특유의 '기관총 세리머니'대신 그라운드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가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멘티스트'라고 불리는 결정적인 경기이기도 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와 함께 100경기 이상을 함께 했다고 한다. 그 역시 피오렌티나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 본 유럽축구 경기가 아버지와 함께 관람했던 피오렌티나의 경기였다고 한다.
오늘 길에서 우연찮게 <이한철-바티스투타> 노래를 듣고 반가워서 이런 팬심 가득한 글을 남겨 본다.
여담이지만, 본래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바티스투타의 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티스투타의 이적 소식을 들은 팬들이 몰려가 다 깨부수는 바람에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 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