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차 생활을 즐기기 앞서 여러 차 도구들이 있겠지만, 당연히 기본 중 기본은 찻잔일 것이다.
사람마다 기호도 성향도 다르겠지만, 내가 처음 친구에게 배운 내용은 차는 세 모금으로 나눠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그러기 위한 세 모금 정도를 마실 수 있는 용량의 찻잔이 적당하다고,
차생활을 조금해 본 지금의 나는 이 세 모금의 내용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너무 식지 않고, 적당히 따뜻함을 유지하며, 적당히 여유롭게 마실 수 있는 용량 세 모금.
며칠 전 어느 주말 친구가 뜬금없이 내방을 찾아와서는, 여자친구와 도자기 거리를 갔다 왔다며,
내 생각이 나서 샀다고, 꼬깃꼬깃 종이 포장지에 싸인 것을 내게 들이밀었다. 포장지를 풀고 보니,
그것은 한쌍의 찻잔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차를 대접한 적도,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친구가 선물해 준 찻잔은 공교롭게도 지금 내가 쓰는 찻잔과 거의 동일한 디자인에 조금 더 큰 찻잔들
이었다. 마치 같은 세트라고 해도 믿을 만큼 똑 닮은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선물 받은 찻잔을 씻으며 이리저리 둘러보니, 나의 찻잔보다 훨씬 많이 컸다.
지금 쓰는 찻잔의 얼추 2배 정도 되는 크기였다. 그렇다고 일반 물컵으로 쓰자니, 그러기엔 또
아깝기도 하고, 너무 작은 용량이다. 참으로 애매한 사이즈의 찻잔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나는 선물 받은 입장에서 선물을 갖고 트집 잡을 만큼 눈치 없고 메마른 인간은 아니다.
친구에게는 충분히 감사를 전했고, 또 정말이지 찻잔의 생김새는 마음에 들었다.
"오! 찻잔이네, 잘 쓸게, 고마워! 근데 왜 두 개야?"
"응 한 개는 나중에 여자친구 드려, 올해는 연애도 좀 하고!"
"... 응 나 갑자기 우울해졌어, 너 이제 집에 가라."
"큭큭, 나 여자친구 퇴근할 때까지 여기 있을 꺼야"
"나가, 당장 나가!"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서 아직 이 찻잔을 사용해 보진 않았다.
여전히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떻게 쓸까 고민 중에 있으며, 사이즈가 적당히 큰 것이 여름이 되면
차 한잔에 사각의 얼음 한 덩이를 띄우기 딱 좋은 사이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종의 위스키의 온 더락 같은 느낌이려나?' 제법 재미있고 흥미로운 발상이라고 생각하니,
스스로 조금 뿌듯해졌다.
여름이 되면 꼭 시원하게 온 더락으로 차 한잔을 즐겨 보리라 다짐했다.
또 누군가에게 차 한잔을 온 더락으로 대접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대단히 즐거운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근데 얼음을 넣으려면 평소 보다 더 진하게 우려야 할까? 얼음이 녹으면서 중탕이 될 테니 말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여름이 되어 직접 체험해 보면서 알아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