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창고에 민들레 홀씨를 숨겨 심은 적이 있어요
언젠가 바람이 불면 나 대신 날아갈 무엇이기를 바라서
누군가의 길어지는 밤을 상상하다가
상대성이론이라는 과학을 공부해 봤어요
나는 뼛속까지 문과라서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런 것도 어지러워해서 당신도 몰랐나 머리 나쁜 나를 탓해요
나는 묵음 속에 숨겨진 소리를 듣고
괄호 안의 말들이 더 궁금하죠
지는 태양이 좋아요 종종
자외선은 오래 쐬면 안 좋다는데
기미와 주근깨는 모르고 당신처럼 어서 늙고 싶어요
유기견 센터에 가서 내일이나 모레나 당장
안락사를 할 위기에 처한 늙은 개를 구해올래요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은 개나 사람이나 다 알죠
나는 누군가가 언제든지 마음껏 아플 수 있는 안락을 주고 싶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생채기를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숨겨둔 화분을 후벼파요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결투를 신청하고
안아주면서도 칼집을 잊은 칼을 차고 있어요
그렇게 모과가 익어가는 한 여름을 지나죠
우리는 생을 부지런히 잊으려고 아이를 낳고
파란 하늘을 날아가고 싶지 않으려고 복권을 사요
복권은 당첨자 발표를 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갑이고요
가령 그런 일들이 태반이라서
모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저예산 영화나 만들까 고민되는 날이면
나는 등장인물 A, B, C와 심지어 Z-1까지 좋아해 버리죠
그건 불치병인가 싶어 돌고 돌아 어떤 이의 하얗게 새어버린 눈썹도 좋아요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한낮이에요
시큼하게 과발효된 술을 찾아 마셔볼까요
무엇이든 취하면 아름다워 보인다는 속설이 있다던데요
목련은 지고 버스는 급하게 출발하지요
누구는 여기서 잘만 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