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를 애써 시켜 먹지 않는 치킨처럼 대했을 것 같아요
오늘은 카페에 와서 대학원 논문을 썼어요. 논문을 쓰면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 나오는 올드팝들을 들었죠. 그런 경험 다들 있을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을 때의 아무도 모르고 나만 이 공간 속에서 차오르는 벅참을 느끼는 경험. 오늘 이어폰에서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을 들으면서 저는 벅찼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그가 없는 세상은 조금 슬프지만 나만의 색으로 행복하구나 하고요.
저도 그도 혼자 살았어요. 우리 집에는 작은 텔레비전이, 그의 집에서 대형 텔레비전이 있었죠. 그래서 그의 집에 큰 화면이 있다는 핑계로 자꾸 그의 집에 가서 영화를 봤어요. 사실 영화 선택의 권리는 저에게 있어서, 아니 그는 취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영화는 항상 제가 골랐어요. 저는 책도, 영화도, 미술도, 음악도, 전시회도 좋아하거든요. 아무튼 그가 관심 없는 건 다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는 제가 생각했을 때 당연히 봤을 법한 영화 대부분을 안 봤어요. 그 사실을 알고 저는 흥분이 되었죠. 왜, 그렇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신이 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잖아요. 내 세상을 그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요. 그래서 그와 많은 영화를 봤어요. 그의 집에서도 보고 영화관에서도 보고 예술 영화는 영화의 전당에 가서도 봤어요.
저는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제멋대로 해석해도 머리를 쥐어 짜내서 감상을 말해보고 그대는 어떠한지를 물어봐요. 때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갓 나온 군고구마처럼 그때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감상들을 아뜨아뜨 하면서 내놓을 때도 많아요. 하지만 데여도 그때가 맛있는 거잖아요. 그에게도 자주 물어봤는데, 사실 감상이 몇 줄 가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제 고구마는 차갑게 식어서 맛이 없어져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오래도록 온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막을 수 없는 마음 같아요. 그는 별로 맛있게 먹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저는 좋아하는 치킨의 특징이 따로 있어요. 옛날 통닭 스타일이에요. 튀김옷은 두껍지 않고 후추 맛이 아주 많이 나고 짭짤한 치킨이 좋아요. 저는 튀김 옷이 두껍거나 많은 양념이 발라져 있으면 느끼해서 많이 못 먹어요. 그런 치킨들은 애써 따로 시켜 먹지는 않죠. 그가 bhc의 뿌링클 치킨을 많이 좋아했어요. 두꺼운 튀김 옷에 인공 치즈로 만든 시즈닝이 잔뜩 뿌려진 치킨이에요. 사실 저는 그런 치킨 안 좋아해요. 근데 그가 좋아해서, 치킨을 먹는 날에는 일부러 뿌링클 치킨이 먹고 싶은 척을 했어요. ‘오늘은 뿌링클이 땡기네.’ 하면서요. 제 뜻인 것처럼 뿌링클을 시켜서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맛은 있었는데요, 옛날 치킨이 더 좋아요 저는. 근데 그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뿌링클도 옛날 치킨만큼 맛있게 느껴지긴 했어요.
그 사람이랑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그는 제가 애인에게 바라는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었어요. 시시콜콜한 정서의 공유, 다정함, 안정적인 태도, 유머 등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하나만 있으면 됐었어요. 사랑이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해 주면 그것으로 다른 건 필요 없었거든요. 저도 제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그를 만났던 것 같아요. 사랑이 아니었으면 애써 시켜 먹지 않는 치킨처럼 그를 대했을 거예요.
그가 떠나고 뿌링클은 이제 먹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 전 제가 먹고 싶은 치킨을 내 마음대로 시켜 먹고 살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뭐, 가끔 먹는 뿌링클도 맛있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치킨은 사랑이고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치킨은 사랑 더하기 사랑이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특식일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