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충성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by 송유성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을 때마다 글을 쓰니 버린 펜만 세 자루가 넘어요. 그 사람을 만날 때부터 썼던 글들이 한 권의 이별 산문집이 된 것 같아요. 이별 전문 작가를 해도 좋지 않았나 싶어요.


옛 어른들 말에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사람 만나란 말이 있잖아요. 그래야 많이 사랑을 줄 수 있다면서요. 전 그 말이 싫었어요. 저도 되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것만은 아니어서 반발심이 생겼어요. 난 이렇게나 사랑이 많은데요. 너무 많아서 자꾸 수습이 안 되는데. 수습이 되질 않아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고 옛말에 졌어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사랑은 필요 없었어요. 필요한 정도도 자신이 정해줬어요. 저는 그 사람이 주먹만큼만 달라고 하면 주먹만큼 주려다 와르르 쏟아버리고는 자꾸 눈치를 봤어요. 그러면 며칠 혼자 내버려둬요. 그럼 또 심심해지거나 주먹만큼만 필요하면 날 사랑해 줬어요. 그럼 전 또 쪼르르 달려가 안겼어요.


근데 전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자꾸 넘쳤어요. 불 조절을 못해서 항상 넘쳐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사랑을 주면서도 미안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 알았어요. 서로 좋아해도 속도가 다르면 누군가는 항상 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저는 맨날 미안한 사람이었지요.

혼자가 편한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려요. 외딴섬에 버려진 진돗개처럼 사는 사람 같았어요. 언젠가 배를 타고 가버린 주인을 기다리다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먼 바다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진돗개 같았어요. 나는 그의 곁에 앉아서 종종 뒤를 돌아보길 바랐나. 그리고 어쩌면 그것도 욕심 같아서 저린 마음만 가지고 사랑했던 것도 같아요.


하루는 그가 몸이 안 좋대요. 죽과 약을 사가겠다 호들갑을 떨었더니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그 사람이 그랬어요. ‘혼자가 편해요.’ 라고요.

근데 전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힘들고 아프면 신세 지기도 기대기도 하고 또 상대방이 그러면 의지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사람이 삶을 혼자 살아가는 방법은 사랑을 푸대자루에 가득 넣고 대기 중인 제 어깨만 상하게 했어요. 상처는 날로 곪아가고 내가 아프다는 것을 눈치챈 그 사람은 단번에 안녕했어요. 웃음으로 숨길 때는 있어 줬는데 혼자가 편한 그는 자신 때문에 누군가 아파하는 일도 못 견뎠거든요.


그 사람이 가고 생각해보면 참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지를 그렇게 사랑해서 피 철철 흘리면서 기다렸는데, 그렇게 가다니요. 헤어질 때 주먹으로 그 사람 가슴을 퍽퍽 때렸어요. ‘누구나 그렇게 불편한 것을 사랑이 있으면 오답 같아도 계속 수정하고 사는 거예요’하면서 울며 막 때렸어요. 가슴 운동 열심히 한 그 사람보다 내 손이 더 아팠지요.


가슴처럼 마음도 딱딱하니까 잘 살 거예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일상을 살지도 몰라요. 전 살이 빠지고 이별하고 매일 한 운동으로 근육이 늘었어요. 고통은 성장을 동반한다니까 나도 단단한 가슴 근육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음도 근육이 차서 단단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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