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 와서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건은 사람의 인생을 크게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반달 손톱을 가졌던 그를 생각해 봅니다. 슬픔과 고독이 넘쳐서 슬픔과 고독을 입은 채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을 만나면서 알았습니다. 당신의 삶에도 낭만과 사랑이 가득하길 바라요. 그를 떠나보낸 날 그에게 했던 나의 마지막 바람이었습니다.
오늘은 휴일이었습니다. 주말 내도록 내린 가을비가 그치자 바람이 조금 차다고 느껴질 만큼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가을 잠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살갗에 맞닿는 면의 보드라움이 마음을 연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해해 보려는 마음의 끝을 의심하게 되는 날이면 날마다 저무는 노을을 생각합니다. 마음의 알량한 깊이가 나를 괴롭히는 까닭은 타인을 사랑하려는 이유가 때론 이기심이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노을을 보러 가야겠다고요.
낭만은 찾는 사람에게 당도하는 일이라고 언젠가 적었던 일기가 떠오릅니다. 어플을 켜 일몰 시간을 확인합니다. 집 근처 작은 산의 정상을 오르면 일몰이 아주 멋지게 보일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사두었던 가을 햇배를 한입 크기로 깎아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었습니다. 혼자 첫가을 소풍을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조금 신이 나기 시작합니다.
오후 다섯 시,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도 해가 쨍하게 밝았지만 땀이 흐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는 바람이 조금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며칠 전 길게 달렸던 탓에 다리의 피로감이 있어 달리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부지런히 등반했습니다. 일몰을 온전히 보기 위해 산을 가는 것은 처음입니다. 나는 무용한 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입니다.
시원해진 날임에도 정상까지 가는 동안 땀이 조금 흘렀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호흡을 고르고 흘린 땀을 산바람에 씻어내려 봅니다. 일몰 시간까지 40여 분이 남은 시각이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벤치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눈을 감아봅니다. 부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 작고 연약한 새소리, 저 멀리서 들리는 차 소리도 들립니다. 나는 한 시절 마음을 주었던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그것들이 나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나의 명상은 기도가 됩니다. 눈을 살며시 떠보니 하늘이 어느새 붉습니다.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산봉우리 사이로 해가 내려갑니다. 구름이 푸른 하늘에 물들었다가 어느새 저무는 태양에 물들어 있습니다.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물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혼자 산을 오르는 사람.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면서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안녕을 했던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하늘의 붉음이 온통입니다. 나의 얼굴도 붉어집니다. 잠시 후 어느새 해는 지고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일까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또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저 멀리 비행기가 뜨는 것을 한참 눈으로 좇았습니다. 가방에서 집에서 싸 온 배를 꺼내 먹어봅니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육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나는 혼자 노을 구경을 합니다. 그리고 달려 내려갑니다. 나는 혼자서 잘 달리게 되었습니다. 혼자 잘 달리게 된 만큼 슬픈 것도 덜어졌습니다. 어디선가 살고 있을 그 사람도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낭만으로 여기고 살기를 바라며 발바닥으로 지면을 차냅니다. 당신의 삶에도 부디, 낭만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언제나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