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이 작품이 될 때
나는 여기서 멎기로 합니다
힘껏 참은 것을 그냥 놓아주기로 합니다
오지 않아서 괜찮다고 말하니
정말 괜찮은 것 같아서
뒷걸음질 치다 정답을 발견합니다
가끔 생이 남아있어서 다행힙니다
물속에 잠겨야 피는 꽃도 있고
말라 죽어야 피는 꽃도 있다면
나는 후자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선인장의 후손인가 손바닥의 가시를 찾습니다
그래도 종종 따순 것을 먹고 싶어서
싶다는 말이 무섭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더 잘 살 것 같고요
구김이 편해서 구겨진 옷만 입는 사람한테만 반합니다
오랫동안 주름진 것들은 이미
그게 무늬인 줄 모르고 피려다가 나만 집니다
이렇게 지기만 하다가 특기가 되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더 들킬 일도 없는데
안쪽에서 자꾸 자라나는 홀씨가 난감합니다
마음은 먼 곳부터 젖어가는 일인데
줄 것이 없어서 매일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숨겼던 기도를 찾아봅니다
아슬한 것들이 줄을 잘 서기를 바라보고서
나는 오늘도 신은 모르는 기도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