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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요 Nov 20. 2024

주인공 달리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모란이 지면 모란이 진다고 우는 것도 우는 마음이 좋아서 울었어요. 부드러운 것만 사랑하던 나는 수분이 쫙 말라버린 건어물처럼 팍팍하고 다시 촉촉해지려면 오래 걸리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흠뻑 적셔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기분이라고, 내일이라도 당장 달려올 사고 같은 마음을 온몸으로 부딪쳐 내는 용기라고, 달리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는 오늘도 달리고 오늘도 젖어요. 마음이 안된다면 몸이라도 흠뻑 적셔 보겠다는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친구가 나한테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강인하게 사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했습니다. 농담을 붙이길, 야인 같다고도 했습니다. 산을 뛰어다니는 야인 같으니까 권투 선수처럼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산을 달려보라고요.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며 키득키득 친구는 웃었습니다.      

친구의 말을 생각하면서 산을 숙숙 내려와 봅니다. 산을 뛰어오르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려오는 일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늘 쉽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실은 너무나 약한 사람이라서 늘 내가 불만입니다. 어디에도 동요하지 않고 잘만 살아가고 싶은데 나는 자주 넘어지고 엎어지고 혼자 많이 웁니다. 그런 내가 징그러울 정도로 싫어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현실의 나는 앞으로 가지 못해도 달리기를 하고 있으면 조금은 내가 나은 사람 같기도 했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나이 서른을 훌쩍 넘은 내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자꾸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날 또 괴롭히지는 않을지 무서워지면 나가서 달렸습니다. 평지 달리기와 달리 산에서 뛰는 일은 스스로를 벌주는 것 같기도 해서 좋았습니다. 변태라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종종 해보았습니다. 길고 긴 오르막을 뛰고 있으면 숨이 턱까지 찹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습니다. 속으로 ‘이깟것도 못 뛰어 내고 어떻게 살 거야.’ 하고 이를 악뭅니다. 정말로 산에서 뛰는 날 본 사람이 있다면 제가 입술을 앙다물고 뛰곤 한다는 것을 봤을 수도 있을 겁니다.      


매일 그렇게 산에서 달리기에 매진하는 내가 다들 대단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는 싫은 일은 단 하루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싫은 일을 하면 나는 팝콘처럼 튑니다. 팡팡 튀다가 내가 나를 내팽개쳐버리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는 몸에 안 좋은 불량식품 같은 일들을 저지르고 싶어 져요. 내가 생각하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싫은 일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너졌을 때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조용히 혼자서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사람이라고도요. 나는 둘 다 못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산을 가서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지만 때로는 내가 시시프스인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산의 정상을 향해 달리면서 내가 나에게 주는 형벌 같은 짓을 왜 또 하고 있는 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 감옥수 같은 마음이 드는 날에는 버팁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고 뛰어오릅니다.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삶은 그리 녹록지 않는다고 혼자서 별 생각을 다하면서 올라가 봅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셀프로 극기 훈련을 하고 있다고 늘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시시프스의 신화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만 할 뿐인 인간 삶의 무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거대한 돌을 굴려 올리는 시시프스는 신이 주신 형벌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무의미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자로 해석되기도 한다고요. 나는 시시프스 인가 고민해 봅니다. 나는 왜 매일 달리기를 하고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요가를 할까요. 잘그랑 잘그랑 나의 빈 마음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작은 마음 하나가 계속 돌아다닙니다. 그 소리를 듣느라 나는 매일 바쁘지요.     



그래도 무의미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은 고약하고 청개구리 같아서 아주 간절히 기도할 때는 벼락같이 나쁜 일만 주지만 그래도 종종 살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그랬구나.’하는 기분이 드는 에피소드들도 주기도 하지요. 엔딩이 모호한 연극을 계속 혼자 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렇지만 나는 극 중의 주인공이니까요. 주인공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즐겁다고 생각도 듭니다. 나는 어떤 긴 플롯의 주인공이고 주인공이 멋진 엔딩을 맞이하기 위해선 시련, 고난, 역경 이런 뻔한 클리셰들이 많이 필요하니까. 나는 주인공 정신으로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혼자 멀리서 신이든 감독이든 나를 찍고 있다는 듯이. 기꺼이 시시프스가 되어요. 능동적인 시시프스가 된 나는 조금 멋있는 것도 같아요. 하루아침에 성장하는 영웅은 없으니까, 두려워 말고 좌절도 적극적으로 해볼래요. 어느 날 갑자기, 막이 내리면 내 이름이 제일 크게 제일 처음으로 등장하는 날도 오지 않겠느냐고. 나의 달리기는 제1막,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이 드는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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